정도전의 불교비판을 비판한다

고상현 지음 / 푸른역사

얼마 전 인기리에 방영됐던 드라마 ‘정도전’ 덕분에, 삼봉 정도전(1342~1398)은 우리에게 친근한 인물이 됐다. 그는 조선의 개국공신으로 개혁성향을 높이 평가받은 정치인이지만, 사실 불교 입장에서는 호평만 할 수 없는 인물이다.

그의 저술 <불씨잡변(佛氏雜辨)>은 불교교리에 대한 비난의 글로, 조선시대 벽불론(闢佛論)의 교과서와 다름없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간 <불씨잡변>에 대한 사상적 평가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단편적인 논문 몇 편이 나왔을 뿐이다. 특히 불교계에서는 반박할 가치조차 없다며 다뤄지지 않았다.

신간 <정도전의 불교비판을 비판한다>는 불교적 시각에서 정도전의 불교사상을 검토한 책이다. 고상현<사진> 조계종 교육원 행정관은 불교경전에 근거해 정도전의 불교비판을 비판적으로 고찰했다.

그는 “이제까지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던 그의 불교비판에 대해 고찰하고, 고려말 개혁가들이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견강부회한 것은 없었는지를 살펴 균형을 잡겠다”고 말했다. 정도전 불교사상을 평가하는 일은 불교를 제대로 알리는 일과 일맥상통한다.

저자는 “이 책은 정도전을 옹호하거나 비난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며 “정도전의 불교사상의 잘못된 점을 짚어 불교교리를 제대로 설명해주는 개론서나 마찬가지”라고 소개했다.

성리학의 등장은 기존 사회를 압도하던 불교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역사적으로 봐도, 국가가 수용해 공인한 사상은 그 사회에 많은 변화를 가져온다. 삼국시대 불교가 전래된 이래 정치 사회 문화 사상적으로 끼친 영향이나, 고려말 유입된 성리학이 조선시대에 미친 파급도 크다.

정도전의 ‘불씨잡변’…벽불론 교과서

윤회 심성론에 피상적 비판 ‘수두룩’

“고려말 개혁가들, 정당성 확보 위해

불교비판에 견강부회한 것 아닌지

잘못된 불교교리 제대로 짚어줘야…”

전래 후 1000여 년간 한국사회 전반에 지배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불교는 고려 말에 이르러 귀족화 세속화됐다. 불교내부에서도 결사를 통해 정화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는 가운데 불교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더 커졌다.

조선시대에 들어 성리학이 통치체제로 자리 잡으면서 불교의 위상은 갈수록 위축됐다. 유학자들 사이에서 불교를 배척하기 시작했고, 정도전은 그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 특히 그가 말년에 쓴 <불씨잡변>은 유생들의 배불, 벽불 기조에 일조했다.

정도전은 윤회, 인과, 심성, 자비, 지옥, 화복, 걸식, 훼기인륜 등 15항목으로 구분해 불교를 비판했다. 마음과 본성을 분리해서 보는 성리학의 관점에서 마음과 본성을 동일시하는 불교의 심성론을 비판했다. 윤회설에 대한 비판에 많은 양을 할애했다. 그는 불교 윤회설에 존재하지도 않는 일체 유정은 정수가 있어 증감이 없다는 ‘정수윤회설’을 믿고 있다.

또 불교가 사대와 군신, 부자 등 사회와 인륜을 파괴한다고 보았다. 출가가 혼인생활을 버림으로써 자손의 영속을 끊는 것이라는 시각이다. 걸식을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하면서 간사한 백성이라고 비난했다. 사리신앙에 대해서도 유용하지도 않고 실용적이지도 않다고 비판했다.

성리학의 관점에서 편협하게 불교를 비판하는 정도전을 향해 저자는 “이단배척이라는 사명감에 도취돼 불교교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결과”라고 말했다. 사진은 정도전 영정. 사진제공=고상현

저자는 이를 크게 심성설, 윤회인과설, 사회윤리적인 면, 신앙적인 면, 역사적인 면으로 나눠 반박했다. 윤회인과설에 대해서도 “정도전은 불교윤회설의 핵심을 파악한 것으로 보이지만 그것이 갖는 의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한 듯 하다”며 “불교의 윤리관은 출가와 재가를 나눠 생각해야 함에도 정도전은 오직 출가자의 경우만을 들어 불교의 윤리관을 비판했다”고 지적했다.

저자는 “경전을 면밀히 살피면 정도전의 불교비판이 피상적이고 소략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며 “이단배척이라는 사명감에 도취돼 성리학적 세계관에 입각해 불교교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비속하고 자질구레한’ 비판이라는 평가를 받게 됐다”고 말했다.

또 “오늘날 한국사회와 같은 다종교사회에서는 올바른 사상적 종교적 가치관으로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하나가 되려는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반면 정도전의 비판 가운데 오늘날까지 유효한 점은 불교는 물론 한국종교계가 모두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거대하고 호화찬란한 종교 건축물 짓기, 종교인들의 재산 다툼, 성직자들의 호의호식, 성직세습, 성범죄 등 당시와 유사한 문제들이 지금 이슈로 쏟아지고 있다”며 “종교계 일부에서 이뤄지고 있지만 스스로 정화하지 않으면 사회악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한편, 고상현 행정관은 경남 남해 출생으로 서강대 사학과와 동국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저서로는 <연등회의 종합적 고찰>(공저) 등이 있으며, <종교페스티벌의 문화콘텐츠화 방안 연구> <고려시대 수륙재 연구> <연등회의 축제문화 연구> 등 논문을 발표했다.

[불교신문3048호/2014년10월1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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