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의 비밀

자현스님 지음 / 담앤북스

절에 가면 ‘동물들이 이렇게 많았나’ 할 정도로 수많은 동물을 조각하고 그려놓은 것을 볼 수 있다. 그 중 가장 단골로 등장하는 3인방이 있으니 바로 용과 사자, 물고기다.

동아시아 전통에서 용은 임금을 상징한다. 권문세가들도 마음대로 용 장식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왕 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부처님에게만은 용 장식을 허용했다. 이런 연유로 사찰에는 용이 많다. 사자가 지닌 용맹성 때문에 이 동물은 주로 사찰 입구나 탑의 네 모서리, 설법 좌대 등에 위치해 있다. 재미있는 점은 인도문화에서 사자 조각은 모두 수컷만 사용되지만, 동아시아로 넘어오면서 암수가 반드시 함께 등장한다.

물고기는 목어나 목탁, 처마 밑의 풍경 등에서 볼 수 있다. 사찰에 물고기 형상이 많은 것은 적게 자는 물고기처럼 항상 깨어있으라는 의미다. 잉어가 용이 되듯이 수행을 통해 부처님이 되라는 뜻을 지닌다. 대웅전에 학이 등장하는 경우도 있다.

사찰에 있는 용 사자 학 등

무심코 지나친 사찰 곳곳 의미

익숙하지만 잘 모르는 것

33가지 키워드 친절한 설명

“절은 궁궐보다 귀하고 왕보다 높습니다…”

특히 청학은 도교의 신선이 타고 다니면서 도술을 부리는 새이기 때문에 백학보다 더 중요하다. 따라서 대웅전에 청학을 매달아 놓은 까닭은 이곳이 이상세계임을 표현한 것이다.

저자는 불교학과 동양철학, 미술사학을 전공한 스님. 책은 사찰들이 역사적 문화적 교류를 통해 어떻게 변하고 발전돼 왔는지 살핀다. 저자는 이 책에서 사찰 곳곳에 숨겨진 ‘비밀’을 33개의 키워드를 동원해 독자들에게 설득력 있게 전한다. 불교 교리로만 설명하거나 양식의 변화에만 치중해 설명해 놓은 책들과는 확연히 차별화를 뒀다.

책은 사찰이 기도와 수행공간으로서의 역할만 한 것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옛날 공공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설치한 교통 통신기관인 역참(驛站) 기능도 했다. 장거리 이동자들에게 일정 규모 이상의 사람을 수용할 수 있는 종교시설은 안전하게 머무를 수 있는 공간으로 안성맞춤이었다.

김교각스님과 스님이 중국으로 건너갈 때 데려간 개 선청을 묘사한 지장보살도. 사진제공=담앤북스

이용자들이 늘어나면서 종교시설을 연결하는 길이 만들어지고 이는 국가의 주요 교통로가 되기도 했다. 영남에서 서울로 갈 때 꼭 거쳐야 하는 안동 제비원, 개경에서 남쪽으로 이동하기 위해 거쳐야 했던 파주 혜음원 등이 대표 사례다.

엉뚱하게 알려진 사실이나 잘못된 점은 신랄하게 지적했다. 국보 제20호 불국사 다보탑에는 원래 암수 쌍으로 네 마리의 사자가 네 모서리에 위치해 있었는데 지금은 수컷 한 마리만 남아 있다. 그런데 국립경주박물관이 이 다보탑을 재현하면서 중대한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사자 네 마리를 모두 현존하는 수컷으로 통일시킨 것.

저자는 “우리나라에서 국립중앙박물관 다음으로 대단한 박물관 치고는 상식 이하의 모습을 보이고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고 밝혔다.

신라 왕자 출신으로 중국으로 건너간 김교각스님에게는 ‘선청’이라는 개가 있었다. 용감하고 충직한 선청은 구화산에서 수행하는 스님에게 큰 힘이 됐다. 요즘말로 하면 반려동물인 셈이다. 김교각스님은 출가 후 중생구제를 위해 평생을 헌신해 중국인들로부터 지장보살로 추앙받고 있다.

고려불화 지장보살도에는 김교각 스님과 선청을 묘사한 그림이 두 점 남아있다. 일본 가마쿠라 시의 엔카쿠지 소장 ‘지장보살도’와 베를린 동양미술관에 있는 ‘지장시왕도’가 그것이다. 하지만 간혹 김교각스님과 선청과의 스토리를 모르는 사람들은 ‘설마 개가 고려불화에 있겠느냐’는 편견 때문에 금색 털을 가진 사자라는 ‘금모사자’라고 명명하기도 한다. 스님은 이를 가리켜 “무지가 부른 참극이 아닐 수 없다”고 전했다.

포항 오어사 대웅전 천장에 학과 용이 있는 모습. 이 청학은 사찰 대웅전이 이상세계임을 상징하는 동물이다. 사진제공=담앤북스

저자는 사찰에 있는 이것저것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사전 지식’이나 ‘눈썰미’ 등의 다양한 도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자현스님은 “불교를 신앙하지 않아도 여행이나 답사라면 꼭 들르게 되는 곳이 사찰”이라며 “익숙하지만 잘 모르는 것, 처음이지만 알고 싶은 것, 꼭 알아야 함에도 쉽게 지나쳤던 것들을 한 권으로 엮었다”고 밝혔다.

스님은 “불교는 1600년 이상을 우리와 함께하면서 특유의 어울림으로 우리 전통문화를 커다란 테두리로 감싸 안고 있다”며 “즉 불교문화를 통해 우리는 우리의 전통 문화 전반을 이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스님은 현재 월정사 교무국장, 조계종 교육아사리, 울산 영평선원장, 월정사 부산포교원 원장 등을 맡고 있다. 스님이 2011년에 쓴 <불교미술사상사론>은 2012년 학술원 우수 학술도서에, 2012년 발간한 <100개의 문답으로 풀어낸 사찰의 상징세계>도 문화체육관광부 우수도서에 선정됐다. 

[불교신문3046호/2014년10월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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