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래의 아시아 불교민속〈35〉 태국 ③

부처님을 모신 법당도, 공양을 올릴 화려한 재단(齋壇)도 없는 사원을 상상할 수 있을까. 게다가 그곳이 하늘과 땅의 기운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숲속이라면 더욱 놀라울 것이다. 수행자들은 저마다 나무아래 앉아 명상에 들고, 스승과 제자가 주고받는 가르침 또한 대자연의 숲속에서 펼쳐진다면 누구든 부처님 당시의 수행모습을 떠올릴 법하다.

태국 남부지역에 있는 수안목(Suan Mok), ‘해탈의 정원’은 이러한 모습을 지닌 사원이다. 이곳에선 설법하는 스승처럼 나무 아래 좌정한 불상을 향해 예불을 올리고, 넓은 숲속 곳곳에는 수행과 배움과 숙식의 공간만 마련되어 있을 따름이다.

태국의 사원은 금빛 찬란한 법당과 불상을 갖추고 불법의 환희로움을 드러내는 장엄한 위용으로 이름 높다. 그런데 수안목에서는 화려하고 장엄한 그 어떤 시설이나 성보를 찾을 수 없어 일반불자의 눈으로 보자면 허허롭기 그지없다.

수안목사원은 선방의 입구에 해골을 세워놓은 것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해골 옆 명패에는 ‘1930년 미스 타일랜드의 실물’이라 적혀 있어 그 뜻을 헤아릴 수 있게 한다. 문을 드나들 때마다, 이 나라 제일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던 여인이 한낱 백골로 서 있는 모습을 보면서 무상과 무아를 사무치게 느끼도록 하기 위함일 것이다.

이곳은 출가자만이 아니라 재가자에게도 활짝 열려 있어 누구든 단기출가로 수행하려는 이라면 남녀노소, 국적, 인종을 불문하고 머물 수 있다. 또한 하나의 수행법을 제시하지 않고 각자 자신에게 맞는 것을 택하여 닦아나간다. 모든 수행자가 선지식(善知識)의 관계에 있다고 보아 한 명의 지도자가 사원을 이끌어나가지 않을 뿐더러 설법 또한 누구든 할 수 있다.

이러한 철학으로 수안목이 세워진 것은 1932년경 ‘아찬 붓다다사’라는 스님에 의해서이다. 그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해하고 실천하기보다 의식집전에만 몰두하는 불교계에 회의를 느끼고 승단을 나와 고향 근처에 도량을 마련하게 된다.

스님의 세수 26세 때였다. 2년간 홀로 수행하면서 “붓다의 가르침은 모든 고통에서 해탈하는 데 있고 누구나 이러한 경지에 이를 수 있다”는 명제를 깊이 체득하고, 이를 실천하기 위한 발걸음을 내딛은 것이다.

수안목사원은 ‘신앙하는 종교’에서 ‘수행하는 종교’로 대중들에게 다가갔다. 이는 “모든 중생에게 불성(佛性)이 있다”고 하면서도 출가승만이 해탈에 이를 수 있다는 상좌부불교에 대한 정면의 반박이기도 했다. 그의 실천성은 수도승에 머물지 않고 사회를 향해서도 끊임없이 외치도록 만들었다.

이에 불교사회주의라는 공동체 개념을 발전시켜, 부(富)는 반드시 자비와 짝을 이루어야함을 설파했다. 자본의 논리에 따르는 심각한 부의 불균형도, 공산주의와 같은 강제적 부의 분배도 반대하면서 자비와 보시의 신념으로 부를 나누도록 한 것이다.

그의 가르침은 모두에게 폭넓은 지지를 받았고, 그는 태국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불교사상가로 우뚝 서기에 이른다. 1993년 열반에 든 그의 장례는 국장으로 치러졌다. 젊은 스님이 숲속에 법당도 없는 사원을 열었을 때 사람들은 한편으로 걱정하고 한편으로 비웃었다.

그러나 스님은 올바른 것에 대한 신념과 그것을 꾸준히 실천하여 이룬 결실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모든 이들에게 분명히 보여주었다.

[불교신문3046호/2014년10월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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