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속 불교이야기 ⑲ 최인호와 ‘길’

“인호가 세상을 떠났다. 나쁜 녀석. 영정 앞에 향불을 피우며 욕을 했다. 내 가슴에 그렇게 큰 구멍을 하나 뚫어놓고 먼저 가버리다니…” 전 문화부 장관 이어령씨는 지난해 9월25일 세상을 하직한 10년 아우 최인호를 향해 이같이 말했다.

‘영원한 문학청년’으로 재치와 유머가 막강한 그는 ‘원고지 위에서 죽고 싶다’는 글귀를 보란듯이 써놓고 정말로 암투병으로 죽기 전까지 원고지에서 씨름했다. 도반이었던 스님에게서 승복을 빼앗아 입고 네온사인 번쩍이는 압구정동 밤거리를 밀짚모자를 쓰고서 걸어다녔던 일화는 유명하다.

그는 가톨릭 신자이면서도 5년간 전국 사찰을 돌면서 경허선사의 삶과 수행을 그린 <길없는 길>을 일간지에 연재해 큰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경허스님의 법어집에서 읽은 선시의 한 구절 ‘일 없음이 오히려 나의 할 일’이라는 문구를 대하는 순간 방망이로 두들겨 맞는 충격을 받았다는 그는 이 한구절을 통해 한국근대불교의 큰 선맥인 경허선사라는 ‘두레박’을 발견한 것이다.

그가 2002년 낸 수상집 <나는 아직도 스님이 되고 싶다>에선 그가 ‘발견’한 불교의 값진 진리가 그만의 언어로 거침없이 묘사돼 있다.

“2000년동안 우리 민족의 정신을 지배하여 마침내 우리민족의 성격을 형성시킨 불교의 정신이야말로 우리 민족의 영혼임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마침내 벼락을 맞아 하느님으로부터 깨닫게 된 진리와 불(佛)의 사상은 결국 너와 나 둘이 아닌 하나의 진리임을 자각하게 만든 것입니다.”

가톨릭 신자가 스님이 되고 싶다니. 그는 당시 이같이 고백했다. “스님이 되어서 염궁문을 거쳐 무념처에 이르러 구름이 일어나고 바람이 부는 것을 한참이나 들여다보다가 석가여래 손가락에 낙서를 하고 돌아섰던 손오공처럼 푸른하늘에 옥인 도장 하나를 찍고 푸른바다에 해인도장 하나를 찍고는 시인 천상병이 노래하였듯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고 하늘로 돌아가고 싶다.”

최인호는 2000년께 의주상인 임상옥의 일대기를 다룬 소설 <상도>를 출간해면서 ‘상업의 길’을 통해 ‘부처가 될 수 있는 길’을 찾았다. 당시 언론에서 대뜸 <금강경>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부처는 금강경에서 과거의 마음도 얻을 수 없고 현재의 마음도 얻을 수 없고 미래의 마음도 얻을 수 없다고 했다. 따라서 이 소설과 소설 속 인물은 어디서 나온 것인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스스로 언제나 ‘길없는 길’에 서 있다고 생각하는 작가 최인호. “내 정신의 아버지가 가톨릭이라면, 내 영혼의 어머니는 불교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나 자신을 불교적 가톨릭 신자라고 부르고 싶다”던 그다. 벌써 1주기가 지났다.

[불교신문3046호/2014년10월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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