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 사용설명서

마크 엡스타인 지음 / 불광출판사

부처님께도 트라우마가 있었다? 정신분석 시각에서 부처님 가르침과 구도기를 재해석한 책이 나와 관심을 끌고 있다. 미국 하버드 의대를 졸업한 정신과 전문의 마크 엡스타인은 정신분석과 불교를 융합해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고통과 외로움, 두려움으로 인한 상처들을 치유하는 방법을 탐구했다.

트라우마는 정신적 외상 혹은 영구적인 정신장애를 남기는 충격을 말한다. 트라우마를 가진 사람 대다수는 그 일이 자신에게만 일어났다는 느낌에 사로잡혀 소통의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 다른 사람과 깊은 간격을 만들고 그 틈에서 동떨어져 고독하고 괴로운 마음에 사로잡히게 된다.

베트남전 참전했던 군인들의 고통을 영화화한 ‘하얀 전쟁’이나 어린 시절 겪었던 가정폭력과 엄마의 불륜으로 상처를 안고 살아야 하는 남녀 주인공을 다룬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는 트라우마가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하버드 의대 출신 저자

정신분석과 불교 융합

일상생활 속 고통 상처…

극복ㆍ치유법 안내서

저자는 “전쟁이나 폭력, 살인 등 극단적인 경험을 한 사람들에게만 트라우마가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불행과 행복을 나누는 기준이 각각이듯, 같은 사건을 경험하고도 어떤 이는 심한 상처를 받는 반면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정도는 다르지만 인간존재는 각양각색의 트라우마를 갖고 산다는 얘기다.

심지어 깨닫기 전 부처님 또한 트라우마를 갖고 있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태어난 지 7일 만에 어머니를 잃은 것이 부처님께 트라우마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그는 영국의 소아과 의사이자 정신분석가 도널드 위니컷의 논지를 따라 “유아기에 경험한 불만족이 인간의 무의식에 트라우마를 심어 놓기도 하고, 일상에서 흔히 겪는 고통과 외로움과 두려움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 마음에 트라우마를 남기는데 누구도 여기서 예외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저자는 마야왕비의 죽음 후 싯다르타 태자를 위한 숫도다나왕의 행보를 엄마의 부재로 아픔을 겪는 아들의 출가를 막기 위한 조치로 해석했다. “엄마의 죽음에 상처를 받을까봐 전전긍긍하는 아빠와 가족들의 두려움은 싯다르타에게 고스란히 전달돼 싯다르타 내면의 공허와 불안을 심화“시켰고 “결국 싯다르타 태자는 성 밖에서 생로병사를 목격하고 출가를 결심”했다는 것이다.

태어난지 7일만에 엄마 잃고

내면의 공허 불안 심화…

부처님의 출가ㆍ고행 영향

한 걸음 더나가 저자는 부처님의 출가를 “가족의 과잉보호에서 생겨난 환상을 깨뜨리고 진실을 대면한 후 자기의 트라우마를 해결하기 위해 길을 떠난 것”으로 해석하고 “부처님의 영적 여행이 트라우마에서 분출되는 원초적 고통의 표현”이라는 독창적인 관점을 선보인다.

저자의 시각에서 트라우마는 감춰야 할 부끄러운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삶을 변화시키는 근원적인 힘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트라우마를 외면하지 않고 직시해야 한다. 그는 “트라우마는 자아를 이해하는 방식이자 자아에서 빠져나오는 출구”라며 “자유로워지고 자기 삶에 친숙해지기 위해서는 난관이 있더라도 자기를 있는 그대로 체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빠져나오는 과정은 결코 친절하지 않다. 출가한 싯다르타는 당대의 뛰어난 스승을 찾아다니며 트라우마에 벗어나기 위해 수행을 시작했다. 6년간 고행했지만 결코 자유로워질 수 없었다. 고행을 끝낸 부처님이 발견한 트라우마 해결법은 다름 아닌 연기법이다.

저자는 “한 존재는 무수히 많은 다른 존재와 그물처럼 얽혀 있음을 깨달은 부처님은 천상에 있는 엄마가 자기 안에 살아 있음을 실감”했다며 “엄마의 부재로 인한 트라우마가 비로소 해결된 것”이라고 말했다.

트라우마는 원인을 파악하기만 한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기억하지 않으려 한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는다. 유일한 방법은 트라우마를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트라우마를 안겨준 경험을 다시 체험해 그것을 자신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것으로 바꿔야 한다.

그저 바라만 보는 마음챙김 명상은 트라우마 해법의 주요 수단이다. 트라우마가 힘겨운 건 트라우마에서 발생한 고통스런 감정 때문인데, 마음챙김 명상을 하면 감정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대신 감정마저 관찰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또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 수많은 존재와 이어져 있음을 깨닫게 된다.

저자는 “트라우마를 받아들이는 과정이 정신의 완성과정”이라고 말했다. 정신의 밑바닥에서 한 인간을 형성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트라우마이기에, 그것을 알아가는 과정 하나하나는 ‘내가 무엇인지’ 알아가는 여정이 된다.

또 “트라우마는 우리를 더욱 인간적이고 자애롭고 지혜로운 삶으로 들게 하는 문”이라고 말했다. 자기라는 존재가 수많은 존재와 이어졌음을 이해한다면 다른 존재의 아픔이 자기의 아픔이고 다른 존재의 기쁨이 자기의 기쁨이라는 이해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트라우마에 파괴당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트라우마를 통해 자신의 관계 맺기 능력과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을 일깨울 수 있다”며 “트라우마는 우리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지만 우리를 더 인간적인 사람으로 더 배려하는 사람으로, 더 현명한 사람으로 만들어준다”고 피력했다.

[불교신문3044호/2014년9월2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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