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68돌 한글날 특집① 불교 한글화 앞장서는 종단

 

조계종 총무원은 지난 2011년 10월11일 서울 조계사 대웅전에서 ‘종단 표준의례 한글 반야심경 봉정법회’를 봉행했다. 현재 한글 반야심경은 중앙종무기관과 직영사찰 법회를 중심으로 독송되고 있다. 불교신문 자료사진

한글반야심경 시작으로

칠정례 천수경까지

일상의례 한글화 구축

특히 제33대 집행부의 경전 및 의식 한글화 종책은 교계에 한글의 가치를 거듭 인식시키고 저변을 확대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종단이 쇄신의 키워드 가운데 하나로 한글화를 택한 이유는, 대중과 함께 소통하고 상생하는 불교로 거듭나자는 취지였다.

훈민정음을 통해 백성의 복리증진과 국민통합을 꿈꿨던 세종대왕의 꿈과 맞닿아 있는 셈이다. 2011년 10월11일은 조계종사에 길이 남을 날이다. 오랜 준비 끝에 종단 차원에서 만든 <한글 반야심경>이 일반에 선보인 것이다.

한글로 뜻을 알기 쉽게 풀어낸 <반야심경>이 조계사 불단에 올려졌다. 교계의 가장 대표적인 경전인 반야심경의 한글 번역은 이후 불교의 본격적인 한글화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조계종 의례위원장 인묵스님은 당시 봉정법회에서 “대다수 사찰에서는 한자로 된 경전으로 집전하고 독송하고 있다”면서 “뒤늦은 감이 있긴 하지만 종단 표준 한글 반야심경을 만든 만큼 전 종도가 한글 반야심경을 독송하며 수행 및 신행활동을 이어나가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경전뿐만 아니라 의식도 한글화됐다. 2012년 5월 예불의식인 칠정례(七頂禮)가 한글로 옮겨졌다. 기존의 “지심귀명례(至心歸命禮) 시방삼세(十方三世)”라는 한문구절은 “지극한 마음으로 온 세계에 항상 계신 거룩한 부처님께 절하옵니다”란 문장으로 바뀌었다.

이는 예불의 이유와 의미를 보다 명쾌하게 알리는 계기가 됐다. 2013년 12월엔 한글의례문 <천수경>을 공포함으로써, 불자들이 신행활동을 하며 자주 사용하는 일상의례 한글화가 완성됐다.

불교 한글화의 관건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한글로 불교를 이해하고 전파하느냐다. 각각 출가자와 재가자의 교육을 담당하는 교육원과 포교원이 팔을 걷어붙였다. 교육원은 한글 반야심경 공포 직후 각 승가교육기관과 행자교육원을 통해 스님들을 대상으로 한글 반야심경을 가르쳤다.

2012년 한글염불의례교육이 도입되고 이듬해 ‘불교상용의례’가 승가대학 필수과목으로 지정되면서, 한문이 아닌 한글의식이 승가 안에 뿌리를 내렸다. 지난 7월 교계 안팎의 비상한 관심 속에 열린 제1회 학인염불시연대회는, 고리타분하게만 들렸던 염불의 신선한 변화를 즐겁게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포교원 역시 각 포교신행단체와 신도전문교육기관 등에 한글 반야심경 자료집을 배포하고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까지 개발해 대중화를 시도했다. 포교원과 의례위원회는 지난 6월 ‘표준 한글 천수경 및 표준한글독송집 CD 봉정식’을 열어 불교한글의례가 완결됐음을 대내외에 알렸다. ‘표준한글독송집’CD에는 종단 표준의례로 공포된 ‘한글 천수경’은 물론 ‘한글 반야심경’과 ‘한글 칠정례’ 등이 담겼다.

포교원은 종단 소속 사찰을 비롯해 이웃종단 사찰, 포교 및 신행단체 등에 이를 빨리 보급해 전국의 스님과 신도들이 일상 속에서 읽고 공부하도록 독려하겠다는 계획이다.

1980년대 개별사찰 중심

경전ㆍ의식 한글화 시도

‘94종단개혁’으로 본격화

경전 및 의식의 한글화는 불자들이 누구나 쉽게 생활 속에서 불교 교리를 이해하고 의식을 집전하자는 게 궁극적인 목적이다. 무엇보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작용했다. “관자재보살(觀自在菩薩) 행심반아뱌라밀다시(行深般若坡羅密多時) 조견오온개공(照見五蘊皆空) 도일체고액(度一切苦厄)”으로 시작하는 기존의 한문 반야심경 구절을 알아들을 수 있는 일반인은 극히 드물다.

일선 사찰 대부분 신도들에겐 그저 행복을 가져다주는 ‘주문(呪文)’ 정도로만 여겨졌던 게 현실이다. 한글 성경과 주기도문을 외우며 결속을 다지는 기독교인들과 대조적이었다. 더구나 요즘 젊은 세대는 자기 이름마저도 한자로 쓰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결국 연구목적도 아닌 포교용 경전을 한문인 채로 내버려두었다간, 머지않아 불교가 사장되리란 우려가 오래 전부터 제기돼 왔다. 소통의 기본인 ‘언어일치’마저 보지 못한 실정이었던 셈이다. 한글 반야심경을 위시한 의례의 한글화는 대중에게 좀 더 가까이 가기 위한 첫걸음이었다.

우리말 불교에 대한 관심과 결행은 도심포교시대가 시작된 1980년대부터 일어났다. 남양주 봉선사의 운허스님본(本), 서울 불광사의 광덕스님본, 대한불교진흥원의 <우리말 불교성전> 전북사암연합회의 <우리말 불교의식집> 등이 비근한 예다.

그러나 이는 개별 사찰과 단체의 ‘도전’이었을 뿐, 종단 차원의 원력으로 결집되지 못했다. 표준화된 한글의식집에 대한 고민은 1994년 불교의 사회화를 기치로 내건 종단개혁으로 본격화됐다. 1995년 3월 총무원에서 별원화한 포교원이 통일법요집 사업에 착수했다. 3년여의 노력 끝에 1998년 6월 종단 최초의 통일법요집을 편찬했다.

‘전통불교의식의 재정비’, ‘현대에 맞는 생활의례의 정형 제시’라는 의의는 기념비적이었다. 하지만 전국 사찰은 이를 활용하지 않았다. 사찰이나 포교당은 물론 크고 작은 신행단체들이 저마다 ‘자신들만의 법요집’을 따로 만들어 따르는 것이 관행이 돼버린 상태였다. 통일법요집은 2003년 개정판이 나왔으나 발간되자마자 수정의견이 대두되는 등 벽에 부딪혔다.

답보를 거듭하던 한글화 작업은 2006년 조계종 포교원이 한글통일법요집을 발간하면서 전기를 맞이했다. 한글통일법요집은 불교의 각종 의식을 한글로 번역한 저작물로, 큰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일선 사찰에서의 활용도는 매우 미미한 상황이었다. <한글통일법요집>이 나왔음에도, 정작 종단의 공식행사에서는 한문 경전 독송이 울려 퍼지는 이율배반적 현상이 한동안 지속됐다.

‘중앙’과 ‘현장’ 간 괴리

중진 스님들 협조

재교육 등 숙제도…

지지부진하던 분위기는 2009년 11월 의례법이 제정되면서 탄력이 붙었다. 포교원 포교연구실이 중심이 돼 진행하던 업무는 의례법 제정으로 만들어진 의례위원회로 통합됐다. 젊은 중앙종회의원 스님들의 입법 노력이 컸다.

2011년 4월 의례위원회 출범 이후 반년만에 한글 반야심경을 만들어내고 잇따라 한글 칠정례와 천수경까지 빠르게 마친 결정적 원인은 의례위원회로 일원화된 결과다. 의례위원회엔 위원장 인묵스님을 비롯해 총무원 총무부장 정만스님, 교육원 불학연구소장 혜명스님, 포교원 포교연구실장 법상스님(이상 당연직) 조계종 어장 동주스님, 불광사 회주 지홍스님, 송광사 율주 지현스님, 염불교육도감 화암스님이 참여하고 있다.

의례위원회는 앞으로 불공시식과 천도재 등 상장례 전반에 대한 한글화를 완수할 계획이다. 현재 의례실무위원회가 매달 한 번씩 회의를 하며 의견을 수렴 조율하고 있다. 일상의식과 재의식, 상례의식은 불자들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만큼, 불자들에게 정법(正法)에 입각한 신행의 길을 열어주겠다는 다짐이다.

훈민정음 창제과정에 스님(신미스님)이 깊이 관여했다는 주장은 차츰 정설로 굳어지는 상황이다. 백용성스님 등 일제강점기 한국불교의 선지식들은 우리의 말글로 경전과 의식집을 펴내면서 민족의 각성을 일깨웠다. 동국역경원의 역작인 <한글대장경>도 불교 대중화에 커다란 이정표를 세웠다. 이러한 전통을 현대에도 올곧이 이어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물론 아무리 소프트웨어가 뛰어나더라도 대중이 적극적으로 사용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일 뿐이다. 우선 한글의식집에 대한 ‘재교육’은 녹록치 않은 과제다. 이미 한문의례에 익숙한 스님들이 다시 새로운 의식문을 외워야 한다면 상당한 고역이란 이야기다. 그러나 종단의 표준이 정해진 만큼 종도로써 반드시 따르고 공부해야 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의례위원장 인묵스님은 “중진 스님들의 결단과 협조가 성패를 가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울러 “신도들이나 불교에 갓 입문한 학인 스님들에게선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만큼 세월이 흘러 세대가 바뀌면 한글의례는 자연스럽게 정착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자체적으로 한글의식을 개발해 쓰고 있는 개별 사찰과의 소통도 필요해 보인다. 자신들이 고안한 한글의식에 대한 자부심 때문에 표준안에 대해 자못 거부감을 느끼고 있다는 전언이다. ‘중앙’과 ‘현장’ 간의 괴리는 지금껏 계속되고 있는 화두다. 자신에게 맞는 옷을 버리고 새 옷을 입기란 언제나 불편하다. 다만 금방 입은 새 옷도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지게 마련이다.

포교연구실장 법상스님은 “상장례를 포함한 일생의례를 소홀히 하거나 한글세대를 외면하는 불교는 앞으로 설 자리가 없다”며 “의례의 한글화 여부를 주지인사 고과에 반영하는 등 강력한 조치가 요구된다”고 밝혔다.

[불교신문3042호/2014년9월2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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