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익 한림대 HK연구교수 불교평론 열린논단서 주장

“한국천주교의 성지화 작업은 땅에 새겨진 타종교의 흔적에 천주교 순교사를 ‘덮어쓰기’ 한 전력을 갖고 있다. 우리는 교황 방한 뒤에 감춰진 이런 이율배반을 이야기해야 한다.”

이창익 한림대 생사학연구소 HK연구교수<사진>는 불교평론이 18일 서울 강남 불교평론 세미나실에서 연 9월 열린논단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이 교수는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이 한국 종교계에 던진 화두’를 주제로 한 발표에서 “대부분 교황 방문이 한국사회에 던져준 긍정적인 메시지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면서 “그러나 로마 가톨릭이 광화문이라는 상징적 공간에 버젓이 시복식을 거행하는 것에 대해서는 대부분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한국천주교와 ‘성지화 작업’에 대한 우려를 강하게 표시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에 있는 ‘천진암 성지’다. 천진암은 조선시대 주어사의 인근 암자로 과거 정부의 박해를 피해 찾아온 천주교 신자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했다가 그 여파로 불에 탄 곳이다.

그러나 천주교 수원교구 주도로 진행된 성지화 과정에서 불교가 천주교를 보호했다는 역사적 사실도 땅 속에 묻혀버렸다. 이뿐만이 아니다. 한국천주교는 오래전부터 서소문 공원을 단독 성지화 하려는 작업을 추진해 왔다.

이 교수는 “오히려 교황 방문이 다른 종교들에게 ‘잘못된 의식’을 심어주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며 “광화문 광장이 종교적 의식과 집회 장소로 변질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생겼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한국천주교는 한국 근대사를 천주교 ‘순교 성인’으로 가득 채우는 작업과 전국에 흩어진 성인의 순교지를 ‘성지화’하는 작업을 병렬적으로 추진하고 있다”며 “교황 방한은 한국천주교의 생존이 걸린 성지화 작업의 초석 역할을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이 교수는 한국 천주교 현실과 교황의 행보가 얼마나 불일치하는지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이 교수는 “(교황은) 교회가 동성애ㆍ낙태ㆍ피임 등을 가르쳐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더욱 자비로워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세월호 노란 리본을 달면서 ‘고통받는 사람들 앞에 중립은 없다’고 말했다”며 “염수정 추기경은 ‘세월호 문제와 관련해 자꾸만 우리 힘과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이런 불일치에 주목이 일어나야 할 장소는 다름 아닌 ‘한국천주교 내부’일 것”이라며 “종교가 외부를 지향하고 내부를 돌보지 않을 때, 언젠가 해당 종교는 겉과 속이 다른 ‘분열증’을 앓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프란치스코 교황이 예상치 못한 행보를 자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사람들은 그가 보여줄 파격에 대한 일정한 기대감을 지니고 있었던 것 같다”며 “그러나 교황의 ‘파격’은 상당히 절제된 파격이었으며 그 뿐이었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이번 교황 방문이 현재 한국의 어수선한 정치적 상황에서 ‘치유’였는지 아니면 ‘이용’이었는지를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이날 이 교수는 세월호 사건과 관련해 “‘최영 장군 당굿’, ‘서울 새남굿’, ‘진혼굿’ 등이 열리는 것을 보고 씁쓸한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불교계도 희생자들을 위해 여기저기서 천도재 등을 봉행한 것으로 안다. 그런데 누구도 ‘세월호의 교학’을 ‘세월호의 신학’을 이야기 하지 않는 것 같다”며 “종교의 역할을 주검을 처리하고 영혼을 천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삶의 근원적인 난제를 종교 언어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마지막으로 “종교는 몇몇 스타의 연기로 구성되는 드라마일 수 없다. 퍼포먼스는 늘 한계에 봉착한다”며 “종교는 이미지로만 존재할 수 없다. 종교가 사람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사람을 위해 종교를 버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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