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자수작가 이정숙

가톨릭 교황 프란치스코의 방한은 많은 화제를 낳았다. 그 가운데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를 찾은 교황에게 전달한 선물에도 시선이 집중됐다. 지난 8월14일 박 대통령은 교황에게 가로세로 32cm 크기의 ‘화문수(花紋繡) 자수 보자기’가 들어있는 액자를 선물했다.

물건을 감싸서 보관하거나 운반할 때 쓰는 보자기는 모든 인류를 애정으로 감싼다는 교황의 뜻과 통한다는 의미가 덧붙여졌다. 공교롭게도 이 보자기는 불자가 제작한 것이다. 이정숙 ‘불교자수’ 작가의 작품이다.

박 대통령이 가톨릭 교황에게 선물한 보자기는 이정숙 불교자수작가의 작품이다. 사진은 이정숙 작가가 제작한 화문수 자수 보자기.

‘화목문 자수보자기’는 한국 토속직물인 백색명주에 30여 개의 색실로 꽃과 나무, 새를 수놓은 작품이다. 수많은 예술작품 가운데 왜 보자기가 선물로 선정됐을까. 이정숙(59, 법명 보월)작가의 설명을 들어보자.

“이 보자기는 15년 전 만든 작품이다. 초발심으로 돌아가자는 의미에서 일일이 실을 꼬아서 수를 놓았다. 전통문양을 그대로 재현하고 싶다는 발심을 하면서 제작한 것으로, 팔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정부에서 우연히 도록을 보고 연락을 받게 됐다. 이 보자기는 인간과 천상세계를 새와 나무가 다리를 놓아 연결한다는 뜻이 있다. 32마리의 새는 평화를 상징하는 비둘기다. 개인적인 생각인데 보자기에 놓인 십자 모양이 십자가를 연상시켜 선정된 것이 아닌가 싶다.”

불자로서 가톨릭 교황에게 선물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이 작가는 “부처님 가피”라고 말했다.

‘화목문 자수 보자기’ 전달

인류를 애정으로 감싸는

교황 뜻과 통한다는 의미

‘불교자수’ 삼국시대 시작

가사 번 방석 등에 사용

보물 등 문화재로 지정돼

우리나라보다 외국서 호평

“공예가 아니라 예술이다”

이정숙 작가는 ‘불교자수’를 표방하며 전통자수의 계승과 발전에 매진하고 있다. ‘불교자수’라니 낯설다. 일반적으로 자수라고 하면, 조선시대 여염집 규수들이 다소곳이 앉아 했던 취미 정도라고 여기기 마련이다. 불교와 자수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기 쉽다.

자수의 역사는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삼국시대와 고려를 거쳐 조선까지 이어진 자수는 당연하게도 삼국시대와 고려시대의 주류 사상이자 종교였던 불교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스님들의 가사에 자수가 놓아지고, 바람에 나부끼는 번(幡)과 스님 다비의식에 사용되는 만장(輓章)도 자수로 만들어졌다.

견삭신장도.

방석이나 다라니를 넣는 주머니까지 불교와 자수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불교자수는 문화재로도 지정돼 있다.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자수가사(刺繡袈裟)는 보물 제654호이고, 사찰을 상징하는 만(卍)자가 수놓아진 자수사계분경도(刺繡四季盆景圖)는 보물 제653호다. 선암사 소장 가사·탁의, 범어사 자수수복문병풍 등도 문화재로 지정된 성보들이다.

이 작가가 처음부터 불교자수의 길로 나선 것은 아니다. 취미생활로 자수를 했던 그는 신심 깊은 불자로서 불교자수에 자연스레 관심을 갖게 됐다. “불교자수는 신심이 돈독한 여성 불자나 자수기량을 습득한 비구니 스님들에 의해 제작됐는데, 부처님의 덕을 찬양하고 부처님의 가피로 소원성취를 이루려는 염원이 담겨 있다.”

불교자수작가 이정숙 씨.

여전히 불교자수는 불자들에게조차 생경하다. 이정숙 작가가 안타까워하는 점이다. 오히려 외국에서 크게 조명 받고 있는 현실도 안쓰럽기만 하다. 지난해 일본 초대전에서는 한 작품이 수천만 원에 팔리고 갤러리 관장이 매일처럼 찾아와 감탄을 연달했다. 게다가 프랑스 최고 권위의 국제 앙드레말로협회에서 ‘명장’ 칭호를 수여하기로 했다는 것에서 드러난다.

“자수를 기능이나 기술로 여기는 경향이 많다. 하지만 자수는 공예가 아니라 예술이다. 또 불교미술이라고 하면 불화나 단청, 불상이라고 생각하는데 자수도 큰 영역을 차지하고 있음을 모르고 있는 현실이다. 앞으로도 불교자수를 예술로 승화시켜 널리 알리는데 모든 힘을 쏟겠다.”

불교장신구와 장엄구 전체를 작품으로 재현하고 이를 전시하는 자수박물관을 건립하는 것이, 자수공예가가 아닌 불교자수작가 이정숙 씨의 일생 목표다.

25조 대가사.

[불교신문3039호/2014년9월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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