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판기행

김봉규 지음 / 담앤북스

사찰에 가면 전각마다 이름이 적힌 나무판이 걸려 있다. 기둥에는 세로로 쓴 글도 있는데 이를 각각 편액과 주련이라고 한다.

편액은 널빤지에 글자나 그림을 새겨 건물의 문이나 벽에 거는 것으로, 주로 건물의 명칭을 표현한다. 주련은 글귀를 이어 기둥에 건다는 의미로, 좋은 글귀를 써서 붙이거나 새긴 것이다. 이 두 가지를 합해 통칭 현판이라고 말한다.

전각에 붙은 현판은 한 장에 불과하지만, 거기엔 어느 국보나 보물 못지않게 역사 문화적 가치가 담겨 있다. 언제 누가 왜 이 글을 쓰게 됐는지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면 그 자체가 역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럼에도 역사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은 현판은 많지 않다.

국보, 보물 등 국가지정문화재는 한 점도 없고 그나마 추사 김정희가 쓴 봉은사 판전(版殿, 서울시유형문화재 84호)과 조선 명종이 쓴 영주 소수서원(紹修書院, 경북도유형문화재 330호) 현판 등이 시도지방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이 책은 유무형의 가치를 담고 있음에도 오늘날 홀대 받고 있는 현판에 대한 기록이다. 영남일보 편집위원인 저자는 전국에 흩어져 있는 현판을 직접 뛰어다니며 거기에 담긴 이야기와 글씨를 쓴 서예가 이야기, 현판이 달린 건물이야기를 취재해 정리했다.

사찰 궁궐 고택 사원 정자 등

옛 현판 종합적 고찰 교양서

관련 일화부터 서예가 예술혼

문구 의미와 가르침까지 전해

예나 지금이나 현판 글씨는 아무나 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왕이나 왕의 친척, 당대를 대표하는 서예가들의 차지였다. 배흘림기둥으로 유명한 부석사 무량수전 현판은 고려 공민왕의 글씨로, 우리나라 사찰 편액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일반적인 현판이 가로로 글씨를 쓴 것과 달리 ‘무량수전’은 정사각형 널빤지에 네 글자를 세로 두 줄로 썼다. 검은색 바탕에 글자는 임금의 것을 상징하는 금칠을 했는데, 지금은 비바람에 씻겨 흔적만 남았다. 공민왕은 어떻게 이 글씨를 남겼을까. 공민왕은 1361년 홍건적의 침입을 피해 영주(당시 순흥)로 피난을 와 당시 최고의 화엄도량인 부석사를 방문하고 글씨를 남겼다.

저자는 공민왕이 “홍건적의 침입을 물리치고 다시는 같은 일이 없도록 해줄 것을 기원하는 한편 부석사의 발전을 비는 뜻을 담아 썼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사찰 전각이나 일주문에는 유독 조선시대 왕의 글씨가 많다. 경주 불국사 대웅전이나 공주 마곡사 영산전, 순천 선암사 대복전 등은 당대 왕의 필체다. 왕이나 왕의 친척의 명복을 빌던 원당이 있던 사찰 외에도 이런 일은 흔했다.

숭유억불 정책을 펼친 조선시대, 서원에도 왕의 글씨가 많지 않았는데 사찰에 어필(御筆)이 많은 것은 의아하다. 이에 대해 저자는 “억불정책으로 유생들은 심심하면 사찰에 가서 행패를 부렸다”며 “이런 폐해를 조금이라도 막기 위해 사찰이 앞다퉈 왕이나 왕의 친척이 쓴 글씨를 내건 것”으로 본다.

현판을 얘기할 때 조선시대 명필 추사 김정희를 빼놓을 수 없다. 특히 영천 은해사는 추사 글씨의 야외전시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추사가 쓴 현판이 많다. ‘불광(佛光)’을 비롯해 ‘대웅전’ ‘보화루’ ‘은해사’ ‘일로향각’ ‘산해숭심’ 등 편액이 있고 은해사 백흥암에는 ‘시홀방장’ 편액과 주련이 있다.

이 가운데 지금은 사라진 전각인 불광각에 걸렸던 ‘불광’은 현존하는 추사 친필 중 가장 큰 작품으로, 수작으로 꼽힌다. ‘불광’은 135cm×155cm의 대형 편액으로, 불자의 가장 긴 세로획의 길이는 130cm가량이다.

쌍계총림 쌍계사 금당의 ‘육조정상탑’과 ‘세계일화조종육엽’은 조선 명필 추사 김정희의 글씨다. 불교신문 자료사진

여기엔 숨겨진 일화가 있다. 당시 은해사 주지 스님은 ‘불광’을 추사에게 특별히 부탁했다. 사람을 보내 청탁하기를 여러 번, 급기야 스님은 불상을 모시고 가 추사에게 글을 청했다. 그러자 추사는 크게 웃으며 벽장 속 가득하게 써 놓은 ‘불광’이라는 글씨 중 하나를 골라줬다. 당대 최고의 서예가도 마음에 드는 글을 쓰기까지 벽장 가득 파지를 남겼다고 하니, 그의 글씨는 절로 만들어진 게 아니다.

그런데 추사는 이 현판을 자신이 직접 불태웠다. 어렵사리 추사의 글을 받아온 주지 스님은 유달리 긴 ‘불’자의 세로획을 그대로 살리자니 현판이 너무 커져 고민 끝에 긴 획을 잘랐다. 나중에 은해사에 와서 잘린 글씨를 본 추사는 편액을 떼어와 불태웠다. 그렇게 해서 다시 만들어진 게 지금의 ‘불광’ 현판이다. 이처럼 현판은 당시 사찰의 상황과 시대상까지 읽을 수 있다.

책에는 사찰은 물론 고택과 정자, 서원, 누각 등의 다양한 현판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 의미가 깊다. 그동안 궁궐의 현판이나 사찰 주련에 대한 책은 한 두 권 출간된 적 있지만, 각종 전각의 현판을 종합적으로 다룬 것은 드물다.

저자는 “엣 현판은 글씨 자체가 가진 가치뿐만이 아니라 그 문구가 담고 있는 의미가 주는 가르침, 현판에 담긴 일화, 글씨를 쓴 서예가의 예술혼 등 값진 유산을 담고 있다”며 “소중한 가치를 지닌 현판 문화재에 대한 인식을 새로 하는 기회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편 저자는 1990년 영남일보 논설위원으로 입사해 편집국 기자, 부장을 거쳤고 현재 편집위원이다. 저서로는 <불맥, 한국의 선사들> <마음이 한가해지는 미술 산책> <길 따라 숲 따라> <머리카락 짚신> <조선의 선비들, 인문학을 말하다> 등이 있다.

[불교신문3037호/2014년8월3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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