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진리 밖에 다른 신은 없다. 진리는 굳을 때는 금강석 같으면서도 부드러울 때는 꽃과 같은 것…내가 이 세상에서 인정하는 유일한 독재자는 내 속에 있는 양심이다.” 인도의 독립운동을 주도한 마하트마 간디의 위대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간디가 반영(反英) 독립운동의 일환으로 펼쳤던 사티아그라하(Satyagraha)투쟁은 인도인들 뿐 아니라 전세계인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사티아그라하란 ‘진리를 파악한다’라는 뜻으로 국가 사회 모든 분야에서 악한 것을 배제하는 올바른 힘을 의미했다.

1930년, 간디가 폭압적인 영국의 소금법에 저항해 젊은 청년 79명과 함께 벌였던 ‘소금의 행진’은 사티아그라하 투쟁의 절정이었다. 출발할 때는 79명이었으나 마을과 마을을 거쳐가는 동안 간디의 대열은 수만 명으로 늘어났다. 380km를 걸어 동쪽 해안에 이른 일행은 바닷물을 떠다가 소금을 만들었다. 그들이 만든 소금은 아주 적은 양이었으나 그것은 영국에 대한 말없는 선전포고였으며, 인도의 독립을 가져오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1945년, 히로시마가 원자폭탄을 맞아 잿더미가 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간디는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고 한다. 그때 그는 “세계가 이제 비폭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인류는 마침내 스스로 멸망하고 말거야”라고 탄식했다고 한다.

수천명의 사상자를 낸 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무차별 공격, 수백 명의 희생자를 낸 말레이시아 여객기 피격, 뒤이어 인근 현장에서 격추된 우크라이나 전투기 등, 간디가 지난 세기에 떠안아야했던 인종과 민족간의 증오와 폭력 등의 과제는 21세기에 들어서도 전혀 해소되지 않고 있다.

한·일 수교 40주년을 맞아 두 나라의 우호 교류를 상징하는 간디 흉상이 지난 7월 부산 홍법사 경내 잔디마당에 제막됐다. “기도에는 목소리가 아니라 진정이 필요하다”는 간디의 사티아그라하 정신이 세월호 참사 후유증에 시달리는 대한민국, 그 가운데서도 기도원력이 가장 큰 부산에서 되새겨진다는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닌 것 같다.

[불교신문3036호/2014년8월2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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