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량심④-넓은 마음, 큰 마음, 무량한 마음

‘자비희사’는 잘 닦는게 중요

온갖 중생에게 그 마음 품어야

당나라 유학길에 오른 원효스님은 비바람이 거세지자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움막처럼 보이는 곳으로 몸을 피신했습니다. 그리고 피곤에 지친 스님은 금세 잠들어 버렸습니다. 잠결에 버릇처럼 머리맡을 더듬어 자리끼를 찾아서 벌컥벌컥 마셨습니다. 그 물이 어찌나 달달하던지…. 원효스님은 다음날 이곳이 시신을 내다 버린 무덤이라는 걸 눈치 채고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무엇보다도 더 경악할 일은 밤중에 달디 달게 마신 자리끼가 해골에 고인 빗물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스님은 소름이 끼쳐 허겁지겁 바랑을 챙겨 무덤을 빠져나왔을 테지요. 하지만 바로 그 찰나 쿵 하는 커다란 충격에 사로잡힙니다. “그건가…? 그거란 말인가? 어젯밤 그 늦은 시각에 이곳은 내게 더할 나위 없이 아늑하고 편안한 잠자리였건만, 오늘 아침 이곳은 두 번 다시 생각하고 싶지도 않고 잠시도 머물고 싶지 않은 무덤속이다. 게다가 어젯밤의 그 달콤했던 물은 어디 가고, 오늘 아침에는 어찌하여 저 구토가 나올 것만 같은 해골 물 뿐인가?”

무덤과 해골이 장난을 친 것도 아닌데, 괜히 사람 마음이 이랬다저랬다 변덕을 부린다는 걸 깨달은 스님은 이런 문장을 남깁니다. “마음이 일어나면 갖가지 법이 일어나고, 마음이 사라지면 무덤과 법당이 둘이 아니네.”

이 마음이란 녀석은 참으로 오리무중입니다. 날래기는 나뭇가지를 타고 노는 원숭이보다 더 빠르고, 음흉하기 짝이 없어 사람을 곤경에 빠뜨리고 욕정에 시달리게 하고, 기분 좋을 때는 태평양보다도 더 넓어지다가 뭔가 수 틀려지면 바늘을 꽂을 여유도 없이 좁아집니다. 좀 관대해지면 부처님 마음이 되지만, 한 순간에 사악하기 이를 데 없는 악한의 마음이 됩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마음에 이끌리지 말고 마음을 잘 길들이고 다스리라고 당부하신 것 같습니다. 수행은 이렇게 마음을 잘 길들이고 다스리는 과정을 말하는 것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대승경전에서는 마음을 제대로 먹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거듭 강조하고 있는데, 가령 <유마경>에서는 마음이 얼마나 맑느냐에 따라 부처님 나라가 펼쳐지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나뉜다고 말하면서 저 유명한 세 가지 마음을 들고 있습니다. 바로 곧은 마음(直心), 깊은 마음(深心), 지혜의 마음(菩提心)입니다. <불반니원경>에서는 깨끗한 마음, 생각하는 마음, 지혜로운 마음이라는 세 가지 마음을 가지면 탐욕과 성냄이 없어져 마음을 깨끗하게 하는 도를 얻게 된다고 말합니다.

지금, 우리가 아름다운 미덕이라 여기는 사랑(慈), 연민(悲), 기쁨(喜), 평정(捨)도 바로 이런 마음의 작용입니다. 마음에 이 네 가지를 담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마음이 옹졸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래서 <대지도론> 제20권에는 자비희사를 ‘넓고 크고 무량하게’ 잘 닦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넒고, 크고, 무량하게! - 이 말은 하나의 커다란 마음을 셋으로 나눠서 부르는 이름이라고 <대지도론>에서는 설명합니다. 그러니 넓은 마음, 큰 마음, 무량한 마음이라는 것이지요. “나는 자비심을 품었다”라고만 말할 게 아니라 자비심을 품은 마음이 얼마나 넓은지, 얼마나 큰지, 얼마나 한량없는지가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무량심을 ‘잘 닦는’ 게 중요합니다. 어쩌다 자애로운 마음을 처음 얻었을 때는 ‘닦는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잘 닦는다는 말은 자애의 마음(慈心)이 견고해지는 것을 말하는데 여기에 네 가지 뜻이 있습니다. 첫째, 자기가 사랑하는 이들에게만 내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둘째, 자기가 좋아할 만한 이들에게만 내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셋째, 자기를 이롭게 하는 이들에게만 내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넷째, 한쪽 방향의 중생들에게만 내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적어도 자비희사의 마음을 이렇게 네 가지로 품어야지만 ‘잘 닦는다’라는 말을 들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자비희사 사무량심은 증오하는 사람에게도, 께름칙한 사람에게도, 내게 손해를 끼친 사람에게도 품어야 하며, 온갖 사방의 중생들에게 모두 그런 마음을 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대수롭지 않게 말하곤 했던 ‘자비심’의 스케일이 얼마나 큰지 전율이 일 정도입니다.

[불교신문3036호/2014년8월2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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