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 전 일이다. 나름 중요한 갈림길에 섰던 때가 있었다. 고민의 실타래를 풀지 못하고 복잡다단한 일상의 연속으로 쉽게 선택을 못하고 있던 나는 어느 늦여름 밤, 전화로 휴가를 내고 설악산 행을 결정했다. 바로 다음날 용대리행 새벽 첫차를 타고 떠났다. 주로 오색, 대청, 설악동 코스를 즐겨 찾던 나는 이날따라 매표소에서 눈에 띈 용대리행 표를 사고 말았다. 백담사, 오세암, 봉정암, 소청산장, 대청봉, 설악동 코스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용대리에 도착했다. 무작정 떠난 길이라 먹거리와 숙박에 대한 대책도 없었으며 산행코스 역시 처음가는 초행길이다. ‘백담산장에서 아침을, 오세암에서 점심 그리고 소청산장에서 1박을 하면 되겠다’는 막연한 생각, 아니 무모함만 가지고 서둘러 백담사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백담사에 들러 부처님께 삼배를 올리며 오늘 산행에 대한 가피를 기원하고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했다. ‘역시 서울을 떠나오길 잘했다’라는 자찬은 처음부터 빗나가기 시작했다. 백담산장이 문을 안 열었던 것이다. 고난의 시작이었다.

영시암에 도착하니 출출해지고 있었는데 마침 국수와 감자 2알씩 나눠 주고 계신다. 고마운 마음뿐이었다. 영시암 부처님 전에 감사의 삼배를 올리고 길을 계속했다. 오세암으로 향하는 내내 시원한 계곡, 울창한 숲길 너무도 좋았다. 고민 따위는 없었다. 의식적으로 ‘새로운 삶’에 대한 생각을 하려고 해도 구름처럼 잡히지 않고 날아가 버린다. 그렇게 도착한 오세암. 설화를 통해 상상했던 이미지처럼 포근하고 자그마한 암자다. 반갑기는 했지만 공양시간을 훨씬 지난 터라 공양간 근처를 얼쩡거려도 도움을 청할 이는 어디에도 없었다. 배가 출출하다. 이제는 목적지가 소청산장이 아니다. 봉정암까지라도 해가 떨어지기 전에 도착할 지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배는 출출해지고 갈 길은 멀고 다리도 남의 다리가 되어간다.

그래도 오세암의 포근함을 뒤로하고 내쳐 길을 나선다. 마음을 다 잡고 길을 나섰지만 수중에는 물병하나 달랑. 일상을 떠나 고민을 정리하려던 마음은 온데 간데 없어지고, 이제 봉정암에 오를 걱정만 남았다. 허기지고 남의 다리가 되버린 상태로 인해 걱정은 커지고 나의 무식함과 무모함에 열이 오른다. 봉정암을 만나려면 능선이 보여야 하는데, 숲이 깊기만 하지 하늘은 보이지 않고 완만하게 오르내린다. 같이 오르던 등산객들은 이제 안 보인다. 어느 순간 석가모니불 정근을 하고 있는 나를 본다. 그 힘에 길을 가고 있다. 다행히도 깔딱고개 아래서 만난 등산객들에게 초콜릿과 오이를 보시 받아 허기를 채우고 힘을 낸 나는, 해져가는 봉정암 사리탑 앞에 설 수 있었다.

불사리탑을 바라보고 앉아서 쉰다. 한참을 그렇게 멍하니 탑을 통해 아래 세상을 보고 있으니, 문뜩 고민의 끝이 보이는 듯하다. 어떤 길을 선택하던 길이 문제가 아니라 선택을 한 ‘내’가 문제라는 사실. 지식도 없이 대책도 없이 나섰던 길에서 겪은 ‘오늘의 일, 자업자득’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의 오만함과 무대책이 문제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나의 설악산 산행은 끝이 났지만, 우연이든 객기이든 그렇게 ‘무모한 나’는 봉정암에 오르고, 봉정암은 ‘무모한 나’를 품어주었다. 살면서 수 없이 많은 선택의 순간을 맞이하며 산다. 10여년이 지난 지금도 그 때가 생각이 나곤한다. 이 여름이 끝나기 전, 봉정암에 다시 오르고 싶다. 물론 이번에는 사전 준비를 제대로 하고서 말이다.

[불교신문3030호/2014년7월3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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