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짜든지 내캉 살아요

도정스님 지음 / 공감

여기 팔순의 공양주 할매 보살과 젊은 주지 스님의 특별하고도 애틋한 인연이 있다. 이 둘은 경상도 사투리로 서로에게 ‘시님’과 ‘할매’로 부른다. 같이 장도 담그고, 면에 파마도 하러 가고, 마주 앉아 도라지 껍질도 까고, 티격태격 다투기도 하고 더없는 정도 살갑게 나눈다.

시인 도정스님은 이런 사소한 일상을 페이스북을 통해 올리면서 ‘시님’과 ‘할매’의 팔로어들이 뭉쳐지고, 그들의 뜨거운 호응과 공감에 힘입어 책이 세상에 나오게 됐다.

합천 용지암 주지이자 ‘승려시인’으로 유명한 도정스님의 첫 산문집이다. 스님은 불법(佛法)이 삶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있어야 한다는 ‘가르침 없는 가르침’을 책에서 전한다.

책 속에는 자상한 어머니 같고 때로는 늙은 할머니도 되었다가 기세등등한 마누라도 되었다가 조잘조잘대는 딸 하나 키우는 것 같은 할매 보살님이 있고, 등 긁어주는 영감 같고 든든한 아들 같고 가끔은 애인같은 말썽쟁이 손자 같은 주지 스님이 있다.

스님과 공양주의 알콩달콩 따뜻하고 소박한 일상 속에서 한적하고 고요한 산사의 사계절 풍경과 더불어 이웃들의 소소한 나눔의 정을 담뿍 느낄 수 있다.

여기에 사람 사는 냄새 진하게 묻어나는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는 읽는 재미를 주는 덤이고 ‘톺아보다’, ‘졸가리’, ‘잉걸불’, ‘비루먹다’와 같은 잊혀진 우리말은 비속어 판치는 요즘 세대에게 반갑고도 귀한 선물이다.

도정스님은 기쁠 때나 슬플 때만 가슴에 눈물이 차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잔잔히, 또 벅차게 차오르기도 한다고 말한다. 산 속 작은 암자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는 두 사람의 일상은 잔잔한 수채화 같은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이 잔잔한 이야기는 더 많이 가지고 더 높이 올라서려 집착하고, 이기심과 시기심으로 소중한 인연을 가볍게 여기는 우리네 삶을 가만히 들여다보게 해준다.

[불교신문3027호/2014년7월1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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