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린 절벽에서 손을 뗄 수 있는가

강신주 지음 / 동녘

동서양 철학을 아우르는 박식함과 에둘러 표현하지 않는 직설화법을 사용한 강의로 젊은 세대들에게 각광받고 있는 철학자 강신주가 이번엔 화두타파에 도전했다.

중국 송나라 무문 혜개스님(1183~1260)이 1228년 중국 선종에서 전해 내려오는 공안 48개를 정리한 <무문관(無門關)>을 읽고 화두타파에 나선 것이다. 48개 공안을 ‘강신주답게’ 읽고 동서양철학을 종횡무진하며 풀어쓴 신간 <매달린 절벽에서 손을 뗄 수 있는가>가 그 결과물이다.

선가에서 전해지는 화두 가운데 하나가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다. 30m 높이의 장대 위에서 한 걸음 더 내딛으라는 말로, 책 제목과 일맥상통한다.

무문 혜개스님 ‘무문관’ 속

48개 화두 현대어로 풀어

동서양철학 종횡무진하며

공안 의미 알기쉽게 설명

<무문관> 46칙을 보면, 석상화상은 “100척 대나무 꼭대기에 앉아 있는 사람이 어떤 경지에 들어간 것은 맞지만 제대로가 아니다”라며 “100척이나 되는 대나무 꼭대기에서 반드시 한 걸음 나아가야, 시방세계가 자신의 전체 모습을 비로소 드러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체 올라서기도 힘든 백척 높이의 장대 위에서, 어떻게 한 걸음 더 내딛으라는 것일까.

저자는 ‘자리이타’를 매개로 공안에 대해 풀이했다. ‘자리’는 스스로를 이롭게 하는 것으로 “자유롭게 한다” 혹은 “삶의 주인이 되도록 한다”는 뜻이다. 타인을 이롭게 하는 ‘이타’는 다른 사람 역시 본래면목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백척간두는 “자기 혼자만 서 있을 수 있기에 자신의 본래면목을 상징”하며, ‘자리’를 달성한 것이기도 하다. 여기서 진일보 하는 것은 “애써 찾은 본래면목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고, 이타 즉 자비를 실천하라는 의미다.

인기철학자 강신주씨는 “애써 찾은 본래면목도 버려야 하는 이치가 이타(利他) 즉 자비를 실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은 울진 불영사 천축선원에서 정진하는 스님들 모습. 불교신문 자료사진

이 대목에서 저자는 덴마크 종교철학자 키에르케고르의 주장을 덧붙여 설명한다. 키에르케고르는 <사랑의 역사>에서 “대부분 사람들은 타인들에 대해서는 지나칠 정도로 객관적이다”라고 했다. 이 말은 “자신을 하나의 주체로, 주인으로 인식한다는 것이고, 타인은 하나의 대상으로 본다”는 말이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의 경우에는 “자신에 대해서는 객관적이고 모든 타인들에 대해서는 주관적”일 수 있다. “타인이 나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고민하게 되니까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게 된다”는 것이다.

이제 결론이다. “백척간두에 서 있는 것이 ‘자신에 대해 주관적인 것’이라면 그곳에 발을 떼고 평지로 내려오는 것은 ‘자신에 대해 객관적이게 된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자신에 대해 객관적인 사람은 타인의 주관이나 주체를 의식”하게 되고 “자기만이 주인이 아니라 타인도 주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화두모음집은 삶의 가이드북

맹목적으로 따랐다간 낭패

당당한 주인공 되기 위해선

과감히 온몸 던져 뚫어내야

“자비가 아니라면 백척간두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확신하고 그냥 타인에게 몸을 던지는 것”이 바로 백척간두 진일보인 셈이다. “키에르케고르가 사랑은 ‘목숨을 건 비약’이라고 말했던 것처럼 불교의 자비도 자기의 본래면목마저 버리는 비약이었던 것”을 발견하게 된다. 여기까지가 ‘강신주답게’ ‘백척간두 진일보’의 관문을 넘어선 여정이다.

저자는 <무문관>과 같은 화두모음집을 두고 “주인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보여주는 일종의 가이드 같은 역할”이라고 말한다. 모두가 매혹되기 충분한 “세련되고 섹시하게 편집된 여행 안내책자”이지만 “맹목적으로 믿고 여행을 떠났다가는 낭패를 보기 일쑤”다.

“그 멋진 풍경에 도달할 때까지 수많은 곤경과 피곤을 극복해야하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건 ‘나답게’ 무문관을 통과하는 것이다. 이미 만들어 놓은 문을 따라가면 쉽지만 그건 자신의 것이 아니다.

“타인이 만든 문을 찾으려 두리번거리지 말고 온몸을 던져 뚫어” 내야 한다. 당연히 어려운 일이다. 저자는 “어떤 것에도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당당히 살아가는 주인의 모습이 어떻게 쉬울 수 있겠냐”며 “그야말로 똥줄이 빠지도록 노력해도 될까 말까 한 일이 바로 하루라도 자기니까 살 수 있는 삶을 살아내는 일이기 때문”에 불가피하다.

그렇다고 중도포기해선 안 된다. 자신 역시 무모하게 몸을 던졌다는 저자는 “어떤 관문은 평상시 고민과 유사해 쉽게 통과할 수 있었지만 대부분의 관문은 감 잡기도 어려울 정도로 접근 불가능했다”고 한다.

난해한 화두를 만날 때마다 저자는 온 신경을 화두에 집중했다. 산책할 때 잠자리에 들 때 화장실에 있을 때도 예외 없이 화두를 들었다. 그리고 1~2년이 걸려 마침내 48개의 관문을 통과했다. 저자는 “원하던 곳에 도착하는 순간 지금까지의 고생이 안중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라며 도전을 권했다.

자신 역시 “책을 마무리하고 있는 지금, 과거보다 훨씬 더 당당해졌고 훨씬 더 순진해진 것 같다”고 고백했다. 관문을 통과하듯 48개 화두를 설명하는 그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문 없는 관문을 통과할 수 있게 된다.

[불교신문3025호/2014년7월1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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