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 주어사 원형 복원을 위한 1000일 발원기도 현장

여주 산북면 하품2리 해발 667m의 앵자봉 서쪽 기슭에 위치한 주어사지(走魚寺). 현재 이곳은 한국 가톨릭의 발상지로만 잘못 알려져 있다. 조선 후기 정부의 박해를 피해 깊은 산속으로 숨어든 천주 학자들을 숨겨준 용기 있는 스님들이 있었다. 스님들은 천주학을 공부할 수 있도록 장소까지 제공해 주었다. 이곳이 바로 그 현장이다.

1801년 천주교에 대해 대대적인 탄압이 가해졌고, 이 과정에서 천주교도들을 숨겨줬다는 이유로 스님들도 함께 처형을 당했다. 이후 사찰도 폐사되면서 무려 20년 넘게 천주교 신자들을 보호한 역사적 사실 또한 묻혀버리게 됐다.

6일 옛 주어사를 찾아 나섰다. 조계종 제2교구신도회(회장 민학기)가 주최한 주어사 원형복원 발원을 위한 1000일 기도 입재 현장에 함께 했다. 기도 입재식에는 화성 용주사 효행문화원장 인해스님과 여주 신륵사 총무 보명스님을 비롯해 화성 신흥사, 의왕 영화사, 수원사, 영월암 신도, 서울 지역 불자까지 70여명이 동참했다.

정오 무렵 마을 입구에 도착했다. 입재식 발원자들은 가파른 산길을 따라 비지땀을 쏟으며 1시간여를 오른 끝에 주어사 입구에 다다랐다. 3년 전 여주시 차원에서 정비했다고 하지만 포장도로와 비포장길이 교차하는 거친 길이었다.

말 그대로 첩첩산중. 관원의 감시를 피해 천주학자들이 숨어있기에 알맞은 피신처였을 거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전국 사찰은 다가봤지만 이런 곳은 처음 와봤다”며 한 참가자가 말했다.

주어사의 정확한 창건연대는 알 수 없지만 출토 유물을 토대로 고려 때부터 조선후기 까지 운영됐을 것으로 문화재 전문가들은 추정하고 있다. 지금은 허름한 표지판만이 이곳이 옛 절터였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었다.

‘천주교 강학회 장소’였다는 것을 굵게 표시한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불교의 보호아래 천주학자들이 주어사와 인근의 암자 천진암을 오가며 강학했다는 내용은 그 어디에도 없다. 오후2시. 촛불을 켜고 향을 사르며 정성껏 마련한 공양물을 올리고 천수경 독송으로 발원기도를 시작했다. 이어 삼귀의례, 권청, 반야심경을 차례로 봉독했다. 참가자들은 1시간 동안 스님의 목탁소리에 맞춰 어느 때 보다 간절하게 기도를 이어갔다.

주어사 원형 복원을 발원하는 발원문 낭독으로 참가자들은 다시 한 번 의지를 다졌다. 발원문은 수원사 거사회 부회장 이현상 씨가 힘찬 목소리로 읽었다.

“조정의 탄압으로 생명이 위험한 가운데에서도 천주학자들을 보듬어 안으신 것은 만물이 곧 부처임을 보여주신 천수천안 관세음보살님의 대자비심이셨습니다. 종래는 종교평화를 이루고자 하는 부처님의 원대한 원력이셨습니다. 저희들이 이제 주어사 원형복원을 발원하오니 제불보살님의 가피 있으소서.”

효행문화원장 인해스님은 “불교의 포용성을 널리 알리는 동시에 신불교 운동의 모범사례가 될 수 있도록 지역 뿐 아니라 전국에서 마음을 모아야 할 것”이라며 “앞으로 각계각층과 연대해 종교 화합을 상징하는 공간을 만들어가자”고 당부했다.

민학기 회장은 “불교와 스님들은 생명이 위험함에도 천주교 신자들을 보호해 천주교가 이 땅에 뿌리 내릴 수 있게 배려했다”며 “역사적 사실에 기초한 이런 가치를 제대로 구현한다면 다종교 공존과 사회 안정을 완성하는 실천 현장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손전북 신륵사 신도회장은 “10여명이 참여하는 주어사지복원위원회가 있는데 여기에 신부님 세 명도 참여하고 있다”며 “천주교 몇몇 교구 차원에서 땅을 매입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오는 만큼 현황파악부터 철저히 해 보겠다”고 말했다.

제2교구신도회는 이번 기도 입재를 계기로 원래는 주어사에 있었지만 현재 서울 마포구 절두산 천주교 성당에 옮겨진 해운당대사 의징스님비와 여주시청에 있는 부도탑을 제자리로 되돌려 놓는 활동을 펼칠 것을 다짐했다. 사찰에서 천주교 신자들을 보호한 역사적 사실이 사장되거나 왜곡돼서는 안 된다는 취지의 건의서도 경기도와 여주시에 전달한다고 밝혔다. 사찰 신도회가 돌아가며 매달 두 차례 주어사를 순례하기로 뜻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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