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박9일 청년출가학교 회향 현장

3기 청년출가학교는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한 때 유행어처럼 번진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말에 정작 공감하지 못하는 청춘들이 많다. 이들에게 청춘은 아픔이 아니라, 운동화이자 자전거이자 팔레트다. 어떤 길을 만날지 모르니 운동화가 필요하고, 자전거에 올라타 페달을 밟아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는 시기다. 색색의 물감을 뿌려 놓은 팔레트처럼 다양한 인생이 기다리고 있는 때도 청춘이다. 조계종 교육원(원장 현응스님)과 한국불교문화사업단(단장 진화스님)이 지난 6월28일부터 오늘(7월6일)까지 해남 미황사에서 개최한 세 번째 청년출가학교는 고뇌하는 20대 청춘들과 희망을 이야기하는 시간이었다. 이들은 그간 자신을 얽매이던 모든 것을 내려놓고 8박9일간 산사에서 머물며 변화를 꿈꿨다.

빗줄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함돈균 교수와 이야기를 나누는 행자들.

회향 하루 전인 지난 5일 청년출가학교 현장인 미황사를 찾았다. 발우공양을 끝내고 휴식 시간 행자들은 대웅전에서 기도하거나 피아노 연주를 하는 등 저마다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유독 행자들이 많이 모여 웅성대는 곳엔 방금 삭발을 끝낸 행자들이 보였다. 일상으로 돌아가기 전 새로운 생활의 계기를 마련하고 싶다며 여행자 1명과 남행자 1명이 삭발을 한 것이다. 언제 머리가 길었었나 싶을 정도로 파르라니 깎은 머리가 잘 어울리는 모습이다. 큰 결심을 한 두 행자들에게 다른 행자들은 선망의 시선을 보냈다.

이번 3기 청년출가학교에는 남매, 자매가 함께 온 참가자 등 39명의 청춘이 함께 했다. 6명의 지도법사 스님도 빼놓을 수 없다. 출가학교장 법인스님(중앙종회의원)을 비롯해 미황사 주지 금강스님, 울산 해남사 주지 만초스님, 교육원 교육국장 가섭스님, 교육아사리 원영스님, 중앙승가대 박사과정에 재학 중인 재마스님이 멘토로 나서 청년들의 고민에 귀를 기울였다.

휴식시간을 즐기는 행자들.

행자들은 날마다 오전5시 눈을 떠 예불과 33배, 참선을 하고 아침공양 후 30분씩 차담을 나누고, 점심엔 발우공양을 했다. 틈틈이 지도법사 스님들을 만나 고민도 털어놨다. 미황사 주지 금강스님으로부터 염불의례를, 풍경소리 이종만 대표로부터 찬불가를 배우며 불자로서의 신행을 몸으로 익혔다.

인문학 강좌도 들었다. 조성택 고려대 교수의 ‘청년을 위한 불교’, <철학콘서트>의 저자 황광우 씨의 ‘삶을 위한 인문학’은 무엇인지 경청했다. 광고인 박웅현 씨와 ‘감성과 창의력’에 대해, 함돈균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교수와는 ‘청춘은 무엇으로 사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주입식 강의가 아닌 대화로 진행된 강좌는 행자들로 하여금 나와 내 삶, 사회의 관계를 고민하고 지금 자신이 안고 있는 삶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해답을 찾는 계기가 돼 줬다.

세상으로도 시선을 돌렸다. 지난 3일 행자들은 세월호 침몰 참사 후 슬픔에 잠겨 있는 진도 팽목항과 체육관을 찾아가 실종자 가족을 위해 기도했다. 이 자리에서 “텔레비전 속에서 볼 땐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종자 가족이 남아 있는 팽목항에 와 보니 그동안 너무 무심했다”며 반성했다. <한글천수경>을 합송하는 동안에도 행자들의 흐느낌은 끊이지 않았다. 떠날 시간이 돼도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만초스님이 행자와 상담하고 있다.

8박9일간 행자들 곁을 지켜온 지도법사 스님들은 처음 미황사에 도착했을 때와 달라진 행자들의 모습에 기특함을 감추지 못했다. 올해 처음 청년출가학교에 참가한 만초스님은 “자존감, 정체성 문제나 친구교우관계, 적성에 대해 고민하는 청년들과 상담하면서 인생의 선배로서, 출가자로서 조언해 주려고 했다”며 “미황사라는 특별한 공간에서 청년출가학교라는 특별한 시간을 통해 조금씩 밝아진 모습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장수 지도법사인 원영스님은 “해마다 참가자들의 결이 다른데 올해 행자들은 온순한 반면 마음속 고통을 꺼내서 표현하는 것을 어려워했다”고 말했다. 8일이 지난 지금은 “함께 아픔을 공유하고 웃으며 얘기할 수 있게 됐지만 다른 사람 만나서도 가능할지에 대한 또 다른 고민이 생겼다”며 “그래도 성숙해진 것을 느꼈다”고 전했다. 가섭스님은 “누구나 다 마음속에 자신만 갖고 있는 상처가 있기 마련이다”며 “지도법사 스님과 상담을 통해 상처를 치유하는 용기를 얻는 행자들을 보면 시은을 갚는 일이란 생각에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청년출가학교는 3기를 수료하며 총 120명의 행자를 배출했다. 이 가운데 3명이 출가자의 길을 걷고 있다. 가섭스님은 “청년출가학교에서 출가자가 배출되면 좋지만, 오로지 출가를 목적으로 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20대 청년들에게 출가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삶의 대안으로서 출가의 길을 제시하는 자리”임을 강조했다.

강의하는 학교장 법인스님.

법인스님은 “청년출가학교가 청년운동, 청년불교운동, 청년출가운동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청년출가학교는 자신을 보는 눈, 세상을 보는 눈, 출가를 보는 눈을 기르는 자리”라며 “인연이 무르익으면 출가할 수도 있고, 세상을 보는 눈을 바꾸면 세속에서도 출가의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어 스님은 3번의 시행을 거친 청년출가학교가 이제 교구별로 확대돼야 할 시기임을 피력했다. 본사별로 소양 있는 전문가들을 초청해 강의를 하고, 상담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면 기하급수적으로 청년불자들이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법인스님은 “청년출가학교 형태의 프로그램을 교구본사마다 상시적으로 진행하다보면 출가자 영입은 물론 지역불교 활성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며 젊은층 포교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확신했다.

한편 교육원과 한국불교문화사업단은 관심 있는 사찰의 지원을 받아 겨울방학 때 4기 청년출가학교를 열 예정이다.

저녁예불 후 경행하는 모습.
회향식 전 소감을 전하는 행자.

 

참가행자 인터뷰

 

김상형 행자.

“스스로를 옭아맨 두려움 이겨내고 싶어”
김상형(29, 여수)

지난해 대학을 졸업하고 아르바이트를 해서 인도와 네팔을 4개월간 여행했다. 네팔서 한국 스님의 추천으로 룸비니를 여행했는데, 대성석가사에서 1주일을 머물렀다. 그 때 예불마다 들은 종소리가 좋아 녹음해서 여행하는 내내 들었다. 지난 동안 내 자신을 괴롭힌 것은 ‘두려움’이었다. 두려움 때문에 시작도 못하고 끝도 내지 못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출가학교에서 20대 초반의 행자들을 만났다. 예전 내 자신의 고민을 똑같이 하고 있는 행자들에게 조언도 하고, 두려움을 두려워하는 것에 대해 공감했다.
달마산 산행하면서, 만초스님으로부터 들은 두는 데 마음이 있다는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살다보면 남 욕하고 싶을 때 손을 비비면서 생각을 집중하는 것이다. 차 마시면서 마음에 있는 얘기를 나눈 차담시간도 좋아서, 돌아가면 친구들과 함께 차 마시면서 깊은 이야기를 하고 싶다.

조희재 행자.

“생명운동하면서 사람 싫어한 자신 부끄러워”
조희재(21, 서울)

대학에서 환경과 생태를 공부하는데, 환경을 공부할수록 사람이 싫어졌다. 인간의 이기심으로 환경이 파괴되기 때문이다. 사람위해 자연을 만들었고, 자연이 사람 밑의 존재라는 가르침을 주는 종교가 싫어 불교를 믿게 됐다.
아이러니하게도 생명을 좋아해서 환경공부를 하는데 사람을 싫어한다는 건 너무 모순적이다. 다른 사람보다 위에 있단 생각을 했다. 사람도 생명이란 생각을 잊고 무시하던 행동이 부끄러웠다.
삭발을 한 이유는 출가보다는 내 삶을 바꾸겠다는 결심의 의미다. 일상으로 돌아가면 예전의 내 모습을 그대로 반복할 것 같아서, 계기를 마련해주고 싶었다. 삭발해서 남자친구가 헤어지자고 할지도 모르겠다. 내 머리카락을 사랑했다고 생각하겠다.

박가람 행자.

“내 안에 숨겨진 아픔 들여다볼 수 있게 돼”
박가람(21, 경주)

동국대 경주캠퍼스 불교학과에 재학 중이다. 왜 사는 지에 대한 고민이 많아서 불교학교에 갔는데 부처님 가르침을 공부하는 게 일반 공부하는 거랑 차이가 없더라. 졸업이 다가오면서 취업에 대한 부담도 생겼다. 그래서 출가학교에 왔다. 참가자들이 불교에 대한 관심도 많아서 불교학 공부에 대한 책임감을 느꼈다.
이곳에서 <천수경>을 읽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독경하다보니 내 안에 아픔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다른 사람한테 잘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도 좀 자유로워졌다. 시간이 허락된다면 미황사에서 더 살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하다.
오기 전에는 출가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아직까지 결심을 하진 못했지만, 학교에 돌아가서 정각원에 가서 기도도 하고 경전도 많이 읽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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