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와 명상

지운스님 지음 / 연꽃호수

“대낮에 눈을 감고 어둠을 없애려고 소리치는 것은 무명(無明)입니다. 눈을 뜨면 어둠이 본래 존재하지 않음을 압니다.” 그러므로 눈뜨려는 노력이 절로 일어나는 이치를 알아야 한다. 한국차명상협회 이사장 지운스님은 ‘그 이치’를 차명상 수행에서 발견했다.

“향 연기가 허공을 피어오르면 허공은 아무 작용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향 연기가 저절로 사라지듯이, 이 허공의 작용 아닌 작용이 바로 명상이며 수행입니다. 이를 <대승기신론>에서는 ‘법력훈습’(法力薰習)이라 부르고, <원각경>의 ‘문수보살장’에선 ‘인지법행’(因地法行)’이라고 합니다.”

지운스님이 말하는 차명상 수행은 ‘자비다선’(慈悲茶禪)으로 불린다. 차는 혼자 마시기보다 여럿이 함께 마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때 자비다선을 하여 고요함과 지혜가 생기면 그것이 밖으로 표출되는데 그것이 바로 자비의 모습이라고 스님은 말한다.

1998년 송광사 강주시절

학인 대상 ‘차명상 수행법’

인터넷상에 수행열기 ‘후끈’

호주 캐나다까지 도량 넓혀

“그 때 나타나는 한없는 부드러운 기운을 상대방이 느끼고 알게 됩니다. 이렇게 상대방에게 전해지는 자비의 기운은 함께 하는 사람들을 고통으로부터 해방할 수 있으므로 자비다선이라고 합니다.” 자비다선의 수행단계는 ‘경(鏡)→환(幻)→공(空)→화(華)’의 과정을 거쳐 마음을 전환하고 깨달음을 얻어 대자유인이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경’은 명상찻잔의 찻물이 되비추어 보여주는 거울에 비유된다.

‘환’은 명상찻잔의 찻물에 비치는 현상이 환영임을 나타내는 것에 빗댈 수 있다. ‘공’은 투명한 허공같은 찻물색을 일컫고, ‘화’는 명상찻잔의 연꽃모양과 연꽃문양에 비유, 마음이 연꽃처럼 열리고 깨어나는 것을 뜻한다. 특히 깨어나는 ‘화’의 경지는 깨달음과 진리 자체를 표현한 비유이며 이 비유는 곧 다선일미(茶禪一味)의 경계를 표현한 것이다.

이같은 자비다선에는 열한가지 수행법이 있는데, 지운스님의 ‘오색차명상’은 이 중 하나다. 오색차명상을 수행하기 위해선 색채에 관한 이해가 필요하다. ‘색’(色)에는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는 것이다. 몸 안의 에너지 통로와 그 구조는 정수리부터 회음부까지 몸의 일곱곳에 중요 차크라와 5색을 배치하고 있다.

마음 움직이는 힘, 色에 있어

눈 감았을 때 선명한 색 따라

순서대로 차 마시며 心身 보기

“사유하고 명상하며 지혜 개발”

인체의 중요한 7개의 차크라(정수리, 미간, 목, 가슴, 배꼽, 단전, 회음부)는 5가지 색의 심리가 일어나는 장소이며 스크린 역할도 한다는 것이 스님의 설명이다. 가령 파랑색은 얼굴에 나타나는 화와 무지를 다스리며, 녹색은 시기질투와 불안감, 붉은색은 탐욕, 흰색은 슬픔, 화냄으로 인하여 생기는 가슴의 아픔, 응어리, 삿된 견해를, 노랑색은 자만과 고집을 다스린다. 이처럼 5색채가 감정과 심리를 다스린다.

오색차명상은 찻상 위에 다섯색의 찻잔을 좌측으로부터 우측방향으로 나열하고 찻잔을 바라본 뒤 눈을 감았을 때 선명하게 떠오르는 찻잔을 살펴보고 순서대로 차를 마시면서 몸과 마음을 관찰하는 순으로 진행된다.

지운스님은 “오색명상을 꾸준히 하고 자기 자신을 상대로 사랑과 연민심을 가지고 명상을 하면 선명하게 색이 나타난다”면서 그러나 “직접 지혜에 의해서 빛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자비심에 의해서 나왔으므로 자주 법문을 듣고 사유하면서 명상을 하여 지혜를 개발하게 되면 색이 선명해진다”라고 말한다.

스님의 오색명상은 다소 생소하지만 경전과 논서에 근거한 이른바 ‘뿌리있는 명상법’으로 불릴만 하다. “<청정도론>에는 이미 푸른색, 노랑색, 붉은색, 흰색 그리고 광명을 대상으로 하여 집중하는 사마타 수행법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다만 차의 5요소의 다섯가지 색을 관상하는 것은 삼법인의 지혜를 얻어 존재의 근원에 도달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지운스님(오른쪽)이 지도하는 오색차 명상 시연 모습. 자신을 상대로 사랑과 연민심을 가지고 명상하면 선명한 색이 나타난다. 사진제공=연꽃호수

법주사 전통강원과 중앙승가대를 졸업한 지운스님은 조계총림 송광사와 팔공총림 동화사에서 14년간 강원 강주를 역임한 대강백이다.

조계종 단일계단 계단위원이자, 교수사 소임을 맡고 있으며 조계종 기본선원 교선사이기도 하다. 1998년 송광사승가대학 강주시절 학인 스님을 대상으로 수행을 지도하기 위해 차명상을 시작한 스님은 당시 제자들이 차명상법을 인터넷에 올리면서 눈길을 끌었다.

지운스님은 “뿌리없는 명상법이 넘쳐나는 시대에 차를 수행법으로 접목시킨 사례가 없어 공부인연이 됐다”고 말했다. 스님의 ‘자비다선’ 수행도량은 서울과 대구, 부산, 성주에 있으며 호주와 토론토에도 ‘보리빌리지’를 지어 많은 이들이 체험하고 있다. 또한 매월 셋째주 금요일마다 서울 창경궁에서 지운스님이 직접 ‘경선(鏡禪)’을 지도하는 시간도 갖는다.

오랫동안 지운스님 문하에서 차명상을 이어가고 있는 선지혜씨는 “색깔마다 몸의 반응이 달라지는 오색명상을 통해 내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계기가 생겼다”며 “차를 통한 수행이 모든 수행을 회통한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지운스님은 “간화선 그물로 건질 수 없는 이들을 자비선 그물로 건져올리고 있다”며 환하게 웃었다.

[불교신문3021호/2014년6월2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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