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문화재연구소 사찰목판 일제조사현장 가보니…

해충의 습격을 받아 훼손된 경판과 인경본에 드러난 훼손의 흔적.
나무 경판에 불교 경전을 새긴 팔만대장경이 해인사에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경판이 한 곳도 아니고 전국의 사찰에 남아있다는 것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고려ㆍ조선시대 꽃피운 목판인쇄는 인쇄술이 발달하면서 쇠락의 길을 걸었고 기억 속에서 점차 잊혀져갔다. 급기야 경판은 화재나 도난으로 유실되거나 해충, 쥐, 먼지 등에 노출돼 심각한 위험에 처하게 됐다. 이 가운데 불교문화재연구소(소장 정안스님)가 전국 110개 사찰이 소장한 조선시대 목판 2만7000여점을 대상으로 일제조사에 나섰다. 조사는 목판의 판종별 목록화, 수종 분석, 실측, 소장처 보존관리 현황조사 등으로 진행되고 있다.

지난 5월23일 의왕 청계사에서 실시하는 조사 현장을 찾았다. 청계사 목판은 경기도유형문화재 제135호로 지정돼 있으며 광해군 때 새긴 묘법연화경을 비롯해 <천자문>,<몽산법어> 등 총18종400여판을 소장하고 있다.

주지스님과 종무원들의 노력으로 조선시대 제작된 경판들은 300~400여년이 흐른 지금까지 거의 완벽하게 보관돼 있었지만, 해충의 습격은 피해는 피해갈 수 없었다.

이날 조사과정에서 ‘계초심학인문(갓 출가한 스님이 지켜야 할 생활규범을 적은 것)’의 한 판의 반 이상이 크게 훼손된 것을 목격했다. 총 8판에 새긴 계초심학인문 판은 경기도에서 유일본이며 청계사는 총 8판을 소장, 이 중 한 판이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게 됐다.

인경본에도 훼손 흔적이 고스란히 나타나 있었다. 충해의 공격을 받기 전에 인경을 해 뒀더라면 기초 자료를 확보할 수 있었겠지만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불교문화재연구소의 한 관계자는 “판가도 있고 경판 대부분은 양호한 편이지만 글자 마멸도는 상당한 편”이라고 말했다. 후손들에게 온전한 성보를 물려주려면 인경이 필요하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새삼 와 닿았다. 그러나 인경은 이번 일제조사 예산에 반영되지 않았다. 그나마 청계사는 전체를 인경해 보관하고 있어 모범사례로 꼽히고 있다.

불교문화재연구원들이 경판 현황조사를 하는 장면.
불교문화재연구소는 이번 일제조사와 더불어 향후 경판을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보관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를 위해 한국전통문화대학교와 연계해 2015년 1월까지 ‘경판의 과학적 보존을 위한 보존환경조사 연구’를 실시하고 있다. 온ㆍ습도기록계를 설치해 매일 수치를 기록, 변화양상을 분석하는 한편 보관 장소의 해충 포집도 및 가해 해충 조사, 목재 함수율 등을 측정한다. 현대식 수장고를 갖춘 공주 갑사와 대장경을 보관하는 전각인 판전(板殿)이 있는 순천 송광사, 목조건축물에 경판을 보관하는 의왕 청계사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서로 다른 조건의 환경을 비교분석 하기 위해 대표사찰 3곳을 선정한 것이다.

한편 같은날 경내에서 문화재청 유형문화재과 관계자들과 함께 1차 현장설명회가 있었다. 이 자리에서는 사업 내용을 공유하고, 조사 결과 가치 있는 중요문화재는 문화재지정을 진행해 체계적 관리를 진행해야 한다는데 뜻을 모았다.

특히 불교문화재연구소는 목판의 훼손, 멸실에 대비해 원천자료 확보의 측면에서 인경과 인출작업의 필요성을 피력했다.

안상재 문화재청 유형문화재과 주무관은 “목판을 분실하거나 혹은 문화재적 가치가 높은 경판이 외국 등 외부로 불법 반출돼도 현황 파악이 어려운 실정이기 때문에 이번 조사는 개별 사찰이 어떤 종류의 목판을 소장하고 있는지 제대로 파악하는 것에 일차적인 목적이 있다”면서 “대부분 비지정문화재지만 문화재적 가치가 높은 경판도 있어 차후 인경도 중요 과제로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용윤 불교문화재연구소 실장은 “이번 경판 전수조사가 마무리 되면 앞으로 인경사업과 목판 보관처에 대한 전반적인 기초 자료가 구축될 것”이라며 “고려대장경 다음으로 사찰 소장 목판이 한국불교 기록문화의 우수성을 알리는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문화재청 관계자들이 판가를 둘러보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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