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2558년 부처님오신날 특집 - 보살의 길
전 재산 기부한 사찰 공양주 김순이 나무심장학회 이사장

처음에 그녀는 인터뷰를 사양했다. “나보다 보시를 훨씬 많이 한 큰스님들도 계신데”라며 부끄러워했다. 지난 2010년 사찰 공양주로 일하며 모은 전 재산과 살던 아파트를 동국대 경주캠퍼스에 기부한 김순이 나무심장학회 이사장의 이야기다.

동국대는 이 기금으로 ‘나무심장학회’를 만들어 2011년부터 학업 성적이 우수하나 가정 형편이 어려운 재학생에게 매 학기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이사장’이라는 직함 때문에 상당한 재산가가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실제로 만난 김 씨는 가난하고 병든 장년의 여인일 뿐이었다. 올해 환갑을 맞은 김 씨는 살 곳이 없어 사찰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었다. 피부암을 앓아 지금도 계속 통원치료 중이다. 그럼에도 “부처님 품 안에서 번 돈은 결코 내 돈일 수 없다”며 “앞으로도 힘닿는 대로 남을 돕겠다”고 말했다. 안타까우면서도 감동적이었다.

25년간 공양주로 일하며 힘들게 모은 전 재산을 동국대에 기부한 김순이 씨. “부처님 품안에서 일하며 번 돈은 사적으로 쓰면 안 된다”는 말에 진심이 느껴진다.

지난 4월16일 경북 영주에 위치한 영주포교당에서 김 씨를 만났다. 지난해 추석부터 일하고 있는 사찰이다. 스님과 신도들을 위한 점심공양을 열심히 준비 중이었다. 음식장만을 마친 뒤 공양간 한켠에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단아한 얼굴 안에 세월과 피로가 깊게 패였다. ‘나무심’이란 법명의 뜻이 궁금했다. “본래 자성으로 돌아가라”는 취지로 어느 스님이 지어줬다고 한다. 추상적인 의미보다는 뒷이야기가 더 가슴에 와 닿았다.

1989년은 그녀가 처음으로 공양주를 시작한 해이고, 마음의 상처를 달래기 위해 1000일 기도에 돌입한 해다. 기구한 곡절로 남편과 헤어지고 어린 자녀들을 뒤로 한 채 수락산 중턱의 암자에 칩거했다. 차가 다니지 않는 절이었고 걸어서 30분 이상을 올라야 부처님을 만날 수 있었다.

법당으로 올라갈 때마다 땅에 떨어진 굵은 나뭇가지들을 주워모은다고 해서 붙여진 법명이 ‘나무심’이다. “아이들이 정신없이 뛰어가다가 나뭇가지에 걸려 무릎이 깨지는 걸 봤어요. 이걸 진작 내가 치워두었으면 그럴 일은 없었을 텐데.” 남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에 시작된 작은 ‘기행(奇行)’이었다. 주변에선 이상하게 바라보기도 했지만, 그런 식으로라도 응어리와 업장을 떨치고 싶었다.

김 씨가 동국대에 기부한 돈은 그야말로 전 재산이다. 거제도에 있는 아파트와 약간의 토지를 흔쾌히 내놓았다. 25년간 전국 사찰을 떠돌면서 밥을 짓고 청소를 하면서 번 돈이다. 남은 돈으로 작은 전셋집을 얻었는데, 지인에게 반쯤은 속아서 반쯤은 “이마저 보시하는” 셈 치고 넘겨줬다.

지금은 파산신청을 해놓은 상태다. 이제는 영주포교당이 그녀의 집이다. 월 100만원씩 받으며 숙식을 해결하고 있다. 완전히 빈손인 것이다.

3년간 돈 한 푼 받지 않고 일하기도 했고, 스님의 치매 걸린 생모를 손수 봉양하기도 했다. 중간 중간 거리에서 떡볶이를 팔며 연명했다. 누구보다 맵고 쓴 삶이었지만, 얼굴에 원한은 보이지 않았다. 근자엔 코에 암이 생겨 수술을 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동국대 경주병원에 해부실습용으로 시신까지 기증하기로 약속했다. 일찌감치 장기기증 서약을 했는데, 이마저도 부족하다 싶었기 때문이다. “아까운 생각이 들지 않더냐”고 물었더니 “홀가분하다”고 했다. 오히려 “부처님 곁에 한 발 짝 더 다가간 것 같아서, 마음속에 부처님만 있는 것 같아서 즐겁다”는 말에는 진심이 느껴진다.

25년 힘들게 모은 재산 2010년 장학금으로 쾌척

가난하고 고된 현실이지만 부처님 마음 갖게 돼 기뻐

자녀에게 유산 상속은 ‘고통의 씨앗’ 주는 일

2009년 11월 학교법인 ‘영석학원’의 안채란 이사장이 1000억 원 대에 달하는 학교와 부동산을 동국대에 조건 없이 기증해 화제가 됐다. 무상으로 기증된 재산은 경기도 의정부 용현동 소재 4만 1900여㎡ 부지에 세워진 영석고등학교와 임대용 건물 등을 합쳐 시가 1000억 원이 넘었다.

김 씨는 안채란 전 이사장의 무주상보시에 크게 감명 받았다. 인재양성에 관심을 두었고, 학생들에게 단순히 금전적 혜택을 넘어 선근(善根)의 종자를 심어주고 싶었다.

기부의 결심을 굳힌 건 무엇보다 2010년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다. 어머니를 추모하거나 유훈을 받들기 위한 게 아니라 오래고 질긴 원결을 풀기 위한 행동이었다. 김 씨는 초등학교도 마치지 못할 만큼 가정형편이 어려웠다.

아버지는 아홉 살 때 복막염으로 별세했다. 더구나 어머니는 과연 친모가 맞을까 싶을 정도로 유독 순이 씨에게만 모질었다. 어릴 때부터 많이 혼나고 구박받는 딸이었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상처를 받았다.”

큰맘 먹고 녹용 즙을 선물하면 “녹용이 물이더냐”며 트집을 잡고 노환으로 병원에 입원했을 때 문병을 가면 “동생이 볼까 무섭다”며 쫓아내는 사람이었다. 서럽고 미웠지만 <지장경> 기도 3년을 하면서 용서할 수 있었다.

“현생의 가족은 전생의 원수라잖아요. 기도에 열중하다보니, 내가 시어머니이고, 엄마가 며느리였던 전생을 봤습니다.” 가족 모두가 개신교를 믿었던 터여서, 어머니 49재를 혼자 지낸 뒤 일산 원각사로 일터를 옮겼다.

이북이 고향이었던 모친을 위해 임진각까지 걸으며 기도를 하고, 철책을 지키는 군인들에게 피자와 로션을 사주면서 극락왕생을 빌었다. “어머니가 마지막까지 버리지 못한 증오와 집착을 끝내 내려놓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그녀는 용서를 통해 마음의 평화를 이룰 수 있었고, 그 힘은 수행에서 비롯됐다. “망자의 원한을 풀어줘야 할 때는 지장기도를, 살면서 역경에 부딪혔을 때 원만하게 해결하려면 관음기도가 좋다”고 권했다. “기도가 잘 되면 잘 될수록 마장(魔障)도 높아지는 법”이라며 “그럴 때마다 더 높은 수행의 단계로 올라가야 한다”는 말에는 튼실한 연륜이 묻어난다.

영주포교당 신도들과 함께 연등을 만드는 모습.

새벽 3시30분에 일어나 저녁 8시에 일과를 마치는 빡빡한 일상이다. 그럼에도 밤잠을 줄여가며 밤에는 진언을 외운다. “부처님 곁에서 아예 나오지 않으려면 잠을 쫓아야 한다”고 할 만큼 치열하다.

으레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재산이 있으면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어한다. 김 씨의 경우에도 험난한 가족사 때문에 핏줄에 대한 애착이 강할 듯하다.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유산은 자녀에게 행복을 주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대물림하는 것이란 입장이다.

“대부분의 신도들은 절에 그냥 돈을 내놓지 않습니다. 단돈 1000원이라도 나와 내 남편, 내 부모, 내 자녀의 안녕과 행복을 빌면서 기부를 하지요. 이렇게 개인적인 복을 빌면서 내놓은 보시는 복이 아니라 업이 됩니다. 그리고 사찰에서 일해서 번 돈을 사적인 목적으로 쓰면 그들의 업이 내 업으로 돌아옵니다. 고목나무에 개미가 꼬이는 것처럼 제 살 파먹는 짓은 하지 말아야지요.”

공양주로서의 삶은 시련의 출발이었다. 자살을 시도할 만큼 힘든 시절이었다. “언제 다시 인간의 몸을 받아 수행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끈질기게 버텼다. 그녀가 기부한 돈은 어마어마한 거액은 아니지만, 그녀에겐 모든 것이었다. ‘나무심’이란 법명에 걸맞게 살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했다.

“길바닥에 뒹구는 나무토막이 되고 싶지 않았다. ‘나무심’이란 법명에 걸맞게 대들보가 되고 싶었다. 대들보가 되지 못하면 서까래라도, 서까래가 되지 못하면 땔감이라도, 되어야겠다는 마음”으로 뛰어왔다.

‘보살’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고 질문했더니, 손사래를 치던 그녀는 본능적으로 3대 서원을 읊었다. “부처님 곁에서 퇴전(退轉)하지 말게 해주십시오. 남이 나를 미워하더라도 나는 그를 미워하지 말게 해주십시오. 모두가 하나가 되어 상처와 기쁨을 나눌 수 있는 그런 마음을 가지게 해주십시오.” 뼛속까지 비우고 내려놓은 삶이었다. 보살은 멀리 있는 듯하지만, 어쩌면 아주 가까이에 있는 존재다.

· 부처님 곁에서 퇴전(退轉)하지 말게 해주세요.

· 남이 나를 미워하더라도 나는 그를 미워하지 말게 해주세요.

· 모두가 하나가 되어 상처와 기쁨을 나눌 수 있는 마음을 갖게 해주세요.

[불교신문3007호(봉축특집호)/2014년5월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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