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진도 현지 구호봉사 현장

실종자 가족들에 다과 제공
임시법당 조석예불로 정서적 지원

희망의 불씨 사그러들지만
아직 포기할 수 없다.

“꿈도 많고 고민도 많았을 아이들이 저 차가운 남쪽바다 한가운데서 얼마나 무서웠을까 생각하니 너무나 가슴이 아픕니다. 지금 이 순간, 저희는 단 한 명이라도 더 구조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온 국민이 마음을 모으고 있습니다. 어려움을 극복하고 고통을 헤쳐나가는 과정에 아픔을 함께하고 손을 내미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진도실내체육관 옆에 마련된 긴급봉사단이 조석예불마다 봉독하고 있는 발원문의 내용이다.

진도 세월호 침몰 참사가 발생한지 열흘이 흘렀다. 희망의 불씨는 조금씩 꺼져가고 있지만 진도 현지 불교계의 구호활동은 꾸준히 어어지고 있다. 조계종 긴급구호봉사단 부스가 차려진 진도실내체육관을 찾는 전국 스님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았다. 팽목항에서는 스님들이 릴레이로 예불을 올리며 실종자들의 무사귀환을 발원했다. 임시법당에서는 아침저녁으로 예불의식이 올려졌다.

그러나 간혹 시신 인양 소식만 전해질 뿐 생존자를 발견했다는 낭보는 기어이 들려오지 않았다. 사망자 숫자가 실종자 숫자를 넘어서면서 구조현장의 분위기는 급격하게 가라앉았다. 사고 초기 현장조사를 나온 대통령을 비난할 퍼부을 만큼 격앙됐던 감정은 끝 모를 침통함으로 바뀌었다. 정부 측의 구조현황 브리핑 시간도 점점 짧아졌다. 며칠째 밤을 지새고 있는 자원봉사자들은 힘 닿는 대로 노력했지만, 크게 힘이 되지 못해 미안해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럼에도 절망에 빠진 가족들이 마지막 희망을 놓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다.

진도 여객선 침몰 참사와 관련해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스님이 실종자 가족들을 위해 지원활동을 펼치고 있는 조계종 긴급구호봉사대를 격려하고 활동에 만전을 기해달라는 뜻을 전했다. 총무원장 자승스님은 사고 발생 8일째인 지난 23일 오전 조계종 사회복지재단 상임이사 원경스님을 진도군실내체육관으로 파견해 500만원을 활동지원금으로 전달했다. 이날 전달된 기금은 공익기부재단 아름다운동행 구호기금으로 마련됐다.

총무원장 스님을 대신해 긴급구호봉사대 부스를 찾은 원경스님은 실종자들의 무사귀환을 위한 기도에 동참한 뒤, 봉사대의 활동 현황을 보고 받고 노고를 치하했다. 이 자리에서 복지재단 상임이사 원경스님은 “실종자 및 희생자 가족들의 슬픔을 위로하고 위안이 될 수 있도록 봉사대가 더욱 열심히 활동해 달라”는 총무원장 자승스님의 뜻을 전달하며 “불철주야 봉사에 매진하고 있는 봉사단, 온 국민들의 마음과 공덕으로 실종자들의 무사귀환과 희생자들의 극락왕생을 기원한다”고 말했다. 이어 “안산 올림픽기념관에 희생자 합동분향소가 마련된 만큼 포교원과 사회부, 사회복지재단이 함께 협의해 유가족들을 지원하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부스를 설치해 종교적 지원을 이어나갈 것”이라고 향후 계획을 밝혔다. 이에 앞서 금정총림 범어사 주지 수불스님을 비롯한 부산불교연합회와 부산불교연합신도회는 22일 진도군청과 조계종긴급재난구호단에 1000만원 상당의 구호물품을 전달했다.

한편 지난 17일 급파된 조계종 긴급재난구호봉사단은 현재까지 피해자 위로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긴급구호봉사단은 아침 7시부터 밤 11시까지 부스를 지키며 실종자 가족들에게 라면과 잣죽을 비롯한 먹을거리를 제공하며 봉사활동을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특히 21일 부스 안에 임시법당을 조성하면서 피해자 가족들을 위한 정서적 지원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조계종 사회복지재단 직원, 진도군사암연합회, 조계종 자원봉사단 30여 명이 부스에 상주한다.

오전 10시와 오후 7시30분 임시법당에서 희생자의 극락왕생과 실종자의 무사귀환을 위한 법회를 정기적으로 열며 정성을 다해 기도하고 있다. 23일에도 아침 일찍 실종자 가족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찾아와 법당에서 108배를 하고 갔다. 혼자 와서 조용히 기도를 올리는 사람도 있었다. 부스 앞쪽에 붙인 소원지의 숫자도 조금씩 늘어났다. “사랑하는 아들아, 아빠가 미안하다. 지켜주지 못해서 정말 미안하다. 다음 생에 아빠와 같이 수학여행 떠나자. 보고싶다, 아들아.”

23일 오후엔 제19교구본사 화엄사 주지 영관스님을 비롯한 화엄사 주요 소임자 스님들이 부스를 찾았다. 스님들은 사고현장을 둘러보고 자원봉사자들을 위로하며 최선을 다해 줄 것을 당부했다. 화엄사 송광사 백양사 대흥사 등 호남지역 4개 교구본사 스님들은 사고 발생 직후부터 이틀간 교대로 긴급구호봉사대 부스를 지키며 찾아오는 유가족들을 위로하고 있다. 18일 고불총림 백양사 방장 지선스님 등과 함께 현장을 찾은 뒤 23일 다시 부스에 방문한 화엄사 주지 영관스님은 “자식을 잃는 엄청난 사건을 겪은 가족들을 돕기 위해 호남지역 4개 본사가 연대해 피해자들을 돕기 위한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며 “사태가 마무리된 이후에도 추모법회와 기금 전달 등을 통해 이들을 지속적으로 돕겠다”고 밝혔다.

특히 사고현장이 바라다 보이는 팽목항에서는 스님들이 희생자들을 위한 약식 천도재를 여는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전국 각지에서 달려온 스님들은 돌아가며 천수경을 독송하고 다라니를 외우며 희생자들의 극락왕생과 실종자들의 무사귀환을 빌었다. 화엄사 총무국장 효광스님과 포교국장 우문스님은 진도 바다가 바라다보이는 곳에 간이 불단을 차려놓고 기원재를 올렸다. 천수경을 독송하는 기도는 1시간30분 동안 계속됐다. 지극정성으로 기도했지만 청명한 하늘에선 시신 1구를 끌어올리는 헬기만 봤다. 포교국장 우문스님은 “실종자 가족들이 모든 희망을 잃고 완전히 체념한 듯해 마음이 너무 착잡했다”며 “아무쪼록 오늘의 이 기도가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우문스님의 도반인 홍진스님도 기도에 동참했다. 인천에서 작은 포교당을 하고 있는 스님은 “사건 소식을 듣고 1주일 동안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며 “뭐라도 도울 것이 없나 싶어 무작정 내려왔지만 기도 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릴레이 기도는 동국대와 중앙승가대 학인 스님들이 찾아와 계속 이어갔다.

당진시립노인요양원장 선오스님(당진 정토사 주지)과 삼선불학승가대학원에 다니는 비구니 스님들도 23일 오전 부스에 방문해 금일봉을 전달하고 자원봉사에 참여했다. “사건이 발생한 지 9일이 지났지만 생존자 소식은 들려오지 않고 차마 그냥 있을 수 없어 새벽부터 달려왔다”며 “피해자 가족들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힘 닿는 대로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사회복지법인 명법사 복지재단은 밥차를 끌고 내려왔다. 자식을 잃은 슬픔에 밥 한숟가락 못 넘길까 싶어 5일 동안 먹을 수 있는 누룽지 미음과 찬거리를 준비해 왔다.

진도실내체육관 주변은 각 지자체와 기업이 파견한 자원봉사단 부스로 성황을 이뤘다. 도움의 손길은 여전히 따뜻하지만 상황은 나빠지고 있었다. 사고 직후 진도실내체육관을 가득 메웠던 500여 명의 실종자 가족들은 현재 절반 이상이 빠진 상태다.  팽목항 부근 시신이 임시 보관된 천막 안에선 자신의 자녀임을 확인한 부모의 오열이 이따금 터져나왔다. 다들 지쳐갔다. 중앙승가대 대학원에서 실천불교학을 전공하고 도우스님은 이틀째 잠을 못 자다가 혈혈단신 달려왔다. “막상 내려왔지만 기도 말고는 특별히 해줄 수 있는 일이 없어 우울하다”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땅거미가 지고 7시30분 임시법당에선 실종자 가족들을 위한 법회가 열렸다. 30여 명의 사부대중은 애절한 목소리로 관세음보살을 되뇌며 망자의 원혼을 달랬다. 이어 발원문을 봉독하며 불자들의 염송 소리가 울려퍼지자 주변 부스의 자원봉사자들과 취재진들도 찾아와 관심을 보였다. 희망의 불씨는 조금씩 꺼져갔지만, 아직은 불씨였다. 긴급봉사단장을 맡아 구호현장을 총지휘하고 있는 진도 향적사 주지 법일스님은 “부스에 찾아오는 실종자 가족들은 따뜻하게 응대하고 함께 기도해주면서 불교가 언제나 함께하고 있다는 믿음을 심어주는 것만으로도 이들에겐 적지 않은 힘이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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