흠모

유철주 지음 / 민족사

부처님께서는 <사분율>에서 “비구들이여, 화상이 제자를 대할 때에는 자식을 생각하듯 하여라. 제자는 화상 섬기기를 아버지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하라”고 말씀하셨다. 승단에서 갓 출가한 스님에게 수행자로서 살아가는 법을 일러준 은사 스님은 부모와 같은 존재였다.

자식 같은 제자는 은사 스님의 시봉을 맡는 게 당연했다. 스승이 제자에게 법맥을 전해온 사자상승(師資相承)의 전통으로 불교에서 스승과 제자의 의미는 더 각별했다. 때문에 출가자들이 전하는 은사 스님에 대한 얘기는 유독 애틋하다. 이 책은 오늘날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21명의 스님들이 전하는 스승에 대한 얘기다.

오늘날 한국불교를 지탱하는 스님들 뒤에는 때로는 관세음보살처럼 자상하고 때로는 추상처럼 엄한 스승의 가르침이 있었다. 백련불교문화재단 유철주 기획팀장이 원로의원 월서스님, 전 교육원장 무비스님, 봉화 축서사 선원장 무여스님, 고시위원장 지안스님, 어산어장 동주스님 등으로부터 들은 은사 스님에 대한 이야기를 정리했다.

한국불교 대표 21人 스님들의 스승이야기

부모님처럼 자비롭게 제자들을 보살펴주고

서릿발 같은 법문으로 바른 길로 이끌어줘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43호 경제어산 보유자인 동주원명스님이 전하는 은사 대은스님의 이야기는 맹모삼천지교를 방불케 하는 내리사랑이다. 어린 제자에게 ‘중물’을 들이기 위해 의식을 배우라고 권했던 대은스님은 당시 사찰에서 올리는 재라는 재는 도맡아 할 정도로 유명한 신촌 봉원사 송암스님에게 동주스님을 보냈다.

그곳에서 동주스님은 4년간 불교의식을 사사받았다. “은사 스님께서 송암스님을 찾아가 ‘스님이 알고 있는 소리는 하나도 빠짐없이 원명이에게 가르쳐 달라’며 절을 했다고 합니다. 그때 은사 스님 나이가 70이 넘었고, 송암스님은 이제 막 50줄에 접어들었는데, 제자의 공부를 위해 후배스님에게 절을 하신 거죠. 그 얘기를 나중에 들으니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제자를 부탁하며 일흔이 넘은 노승이 스무 살이나 어린 후배 스님에게 이마가 땅에 닿도록 절을 올렸으니 감동받지 않을 이가 과연 있을까. 동주스님은 은사 스님의 얘기를 듣고 의식공부를 소홀히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이제 어느덧 당시 은사 스님의 나이가 된 동주스님, 세세생생 은사 스님과 스승과 제자의 연을 이어가고 싶다는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봄바람처럼 따스할 때도 있지만, 때론 추상같은 가르침을 전하는 것 역시 은사 스님의 역할이다. 많은 스승들은 인천의 사표가 될 제자들에게 끝없는 정진을 당부했다. 서울 금강선원장 혜거스님의 은사 탄허스님은 “스님들이 출가한 것은 세상에 이익을 주기 위해서다. 그러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수행을 해야 하고 그런 과정을 거쳐서 세상의 인재가 되라”고 늘 당부했다.

지안스님의 은사 벽안스님은 “금생 한 생은 없는 셈치고 살아야 한다”며 애당초 태어나지도 않았다는 생각으로 정진만 하라고 했다. 해인총림 유나 원각스님의 은사 혜암스님은 “공부하다 죽어라. 공부하다 죽는 것이 사는 길이다. 옳은 마음으로 올은 일 하다가 죽으면 안 죽는다”며 참선을 강조했다.

또 성철스님은 머리 깎고 며칠 지나지 않은 상좌 원택스님에게 “니도 이제 중 됐다. 그런데 머리만 깎았다고 중 된 것이 아니다. 거기에 맞게 살아야 한다. 중은 평생 정진하다가 논두렁 베고 죽을 각오를 해야 된다 아이가. 중노릇이 쉬운 거는 아니다”며 용맹정진에 심혈을 쏟으라고 말했다.

삶 자체로 후학들을 가르친 스님도 있다. 무여스님의 노스님 보문스님은 1년 내내 누더기 옷만 입고 탁발을 하며 산 청빈한 스님이다. 열반 당시 일화는 지금까지 전해진다. 입적을 예감한 스님은 “간소하게 장례를 치른 뒤 다비고 재는 팔공산에 뿌려라”고 당부하고 이튿날 눈을 감았다. 다급했던 상좌 스님은 의사신도를 불러 응급조치를 해 은사 스님을 살렸다.

깨어난 보문스님은 “갈 때 돼서 갔는데 왜 살려냈느냐”며 호통을 쳐 초연함을 보였다. 그 일이 있은 뒤 보름 뒤 스님은 입적했다. 조계총림 송광사 방장 보성스님에 따르면 “보문스님이 부산 범일동 시장에서 발우를 가지고 반야심경만 외우고 가는데 시장의 점포에 있는 사람들 중 그 발우에다가 돈을 넣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발우에 있는 돈이 넘쳐 그 돈을 집어가는 거지가 있으면 거지에게 가져가라고 말했다”는 스님은 자비심 넘치는 청정보살의 삶으로 후학들에게 울림을 준다.

“스승, 어른을 만나고 싶어 인터뷰를 시작했다”고 밝히는 저자는 “인터뷰를 하면서 ‘그 스승의 그 제자’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하나 같이 스승의 가르침을 올곧게 실천하기 위해 절치부심했다”며 “선지식의 가르침을 눈으로 확인하고 귀로 들으면서 큰 공부를 했다”고 밝혔다. 흠모하는 마음이 절로 일어난 것이다.

[불교신문3003호/2014년4월1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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