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가자 안목으로 승려 평가절하 하지 말라

史學과 불교학, 서로 다른 평가

업설에는 주체적 수행의지 담겨

조선 중기의 고승인 허응당 보우(普雨, 1509~1565)는 당시 암울한 불교를 일으키고자 고군분투했던 분이다. 스님은 명종의 어머니 문정왕후의 도움으로 선교양종을 부활시키고, 승려들의 도첩 제도를 실시하며, 승과를 두는 등 불교 부흥에 힘썼다. 그러다 문정왕후가 죽자, 유학자들의 배불상소로 보우는 승직이 박탈되고 제주도로 유배당했다. 스님은 유배지에서 제주목사 변협에 의해 장살(杖殺)로 입적, 세납 56세였다. 한 번의 고난도 억울하건만 최근에 월간 <문화재> 잡지에서 보우스님을 ‘요승’으로 폄하함으로써 후손인 현 승가에 돌을 던지는 일이 있었다.

역대로 보우스님처럼 정권의 권력에 의해 입적하는 승려가 많았다. <대승열반경>의 한역자 담무참도 그러하다. <열반경>은 중국에서 교학적인 측면에서나 선종에서 매우 중시한다. 모든 중생이 성불한다는 불성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담무참(曇無讖)은 인도인으로 대승불교를 지향해 귀자국으로 왔다가 5세기 초 중국 북방 양주지방으로 옮겨왔다. 이 곳은 북량(北凉)을 세운 저거몽손 황제가 다스리는 지역이었다. 황제는 나라를 다스리는 방책을 구하기 위해 담무참을 고문으로 모셨다. 담무참은 나라가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예언하여 위기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었다. 당시 담무참의 명성이 높아 주변 나라의 황제들이 담무참을 고문으로 모셔가려고 하였다.

어느 해 담무참은 자신이 한역하였던 <열반경>의 이본을 구하기 위해 중앙아시아로 떠나려고 하였다. 황제는 담무참의 구도 계획을 믿지 못하고, 다른 나라로 옮겨가는 것으로 오해했다. 그런데도 담무참이 서역지방으로 떠났는데, 황제는 자객을 보내어 담무참을 무참하게 살해하였다. 한 시대의 위대한 승려가 이렇게 생을 마감해야 했는데, 당시 스님의 세납이 49세였다. 황제의 작은 오해가 빚은 것이지만, 존경하는 국사가 아닌 나라를 다스리기 위한 책사로 스님을 기용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또 억울하게 입적한 스님이 있는데, 명나라 때 4대 승려 가운데 한 분인 자백(紫柏) 진가(眞可, 1543~1603)이다. 자백은 수행과 교학을 겸비한 선사로서 당시 불교계에서는 임제, 대혜선사가 세상에 다시 온 것으로 여길만큼 스님의 덕망이 높았다. 자백은 감산 덕청(1546~1623)선사와도 친분이 깊었는데, 두 분이 한번 만나면 40여일간 주야로 대화를 나누었다고 한다. 어느 해 감산이 유배를 당했는데, 자백은 감산을 옹호해 조정 신하들에게 미움을 사게 되었다. 그러던 차에 세자 책봉 문제로 조정이 시끄러울 때, 스님께서 정의감에 써 붙인 글이 오인 받아 체포되었다. 스님은 고문 후유증으로 입적했는데, 세수 61세였다.

옛 스님들 가운데 자연사가 아닌 타살로 입적하는 경우를 종종 대한다. 초기경전에 의하면 수행의 높은 과위를 얻고도 타살 당하는 경우, 부처님께서는 전생 업으로 인한 과보가 남아 있기 때문에 현생에 고난을 겪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와 유사하게 달마도 보원행(報寃行) 법문을 설하였다.

“수행하는 사람이 만약 고통스러운 일을 당했다면, ‘과거 무시이래로 근본을 버리고 지말을 쫓아 여러 곳을 유랑하면서 원망하고 증오하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비록 지금 죄를 짓지 않더라도 이는 전세에 지은 악업으로 인한 과보가 나타난 것’이라고 생각하고, 원망을 멈추고 인욕하라”고 말씀하셨다. 또 <금강경>에서도 이 경전을 수지하고 독송할 때, 타인으로부터 경멸과 무시를 당한다면 이는 전세의 죄업을 한꺼번에 소멸하는 길이라고 생각하고, 더 열심히 정진할 것을 권하고 있다.

사학(史學) 입장에서 바라보는 승려와 불교학 입장에서 바라보는 승려에 대한 평가가 다른 것은 사실이다. 승려도 윤회에서 벗어나지 않고는 마음의 고뇌가 생기는 것이요, 육신의 고통이 발생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불교의 업설에는 주체적인 수행에 대한 의지를 담고 있다. 하지만 재가자의 안목으로 스님을 평가절하하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불교신문3002호/2014년4월1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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