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전기 “태평시대에 전쟁은 일어나지 않는다”하여 관군은 무방비 상태였으며 양반 평민 할 것 없이 군역을 면제받기 일쑤였습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15일 만에 한양이 함락될 정도로 무기력한 관군은 도망가기 바빴습니다. 신의주로 피난 간 선조는 서산대사를 ‘팔도십육종선교도총섭(八道十六宗禪敎都摠攝, 의승군 총 지휘관, 사령관)’ 직책에 공식(公式) 임명하며 승군을 이끌고 왜적을 물리쳐 줄 것을 부탁하였습니다. 임진왜란을 맞아 도망가기 바쁜 관군(官軍)의 대안(代案)으로는 승군(僧軍)뿐이었음을 선조 스스로 인정하였던 것입니다. (‘선조수정실록’ 26권 7월1일)

조선 전기 승군(僧軍)은 고려 때의 조직 및 훈련체계를 계속 이어왔고, 전국 각지의 산성을 축조하는 데에도 큰 역할을 담당하였으며 군사훈련도 꾸준히 해왔습니다. 따라서 서산대사를 총사령관으로 한 승군은 실질적인 주력군으로서 왜적을 물리치는 승리의 전과를 수없이 올렸습니다.

해남 대흥사는 1604년 묘향산 원적암에서 입적(入寂)하신 서산대사의 유훈에 따라 유품(遺品)을 1607년에 대흥사로 모신 뒤 13대(代) 강사(講師)와 13대 종사(宗師)가 배출되었고 서산대사의 법맥(法脈)을 이은 조선불교의 종가(宗家)입니다. 서산대사 국가제향(國家祭享) 복원(復元)을 위한 노력은 제가 2007년 대흥사 주지로 부임하면서 구체화되기 시작했습니다.

2012년 12월, 대한불교조계종 불교사회연구소와 대흥사는 ‘서산대제(西山大祭)의 제향의례(祭享儀禮) 형식(形式)’에 관한 공청회(公聽會)를 개최하였습니다. 이 공청회에서 전문가들은 조선후기에 봉행된 서산대사 국가제향의 제사 차림도인 ‘진설도(陳設圖, 대흥사 성보박물관 소장)’를 조선 성종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의 분류방법을 기준으로 고찰하여 서산대제의 국가제향으로서의 위상을 밝혔습니다.

공청회에서는 율곡 이이, 퇴계 이황, 사명대사에 대한 제사는 물론이고 공자의 석전보다도 우위(優位)로서 서산대제가 임금이 친향하는 종묘제사에 버금가는 종원(宗院)이고, 호국의 대스승이신 서산대사의 국가제향이 당대 최고의 위상(位相)을 가졌음이 입증됐습니다.

2012년 4월, 조계종과 대흥사는 200여 년 만에 서산대제를 재현(再現)한 바 있습니다. 무형문화재 56호(종묘제례) 보유자인 대동종약원에 의뢰, 조선시대 서산대제의 제향의례집인 ‘표충사향례홀기(表忠祠享禮笏記-대흥사 성보박물관)’와 ‘진설도(陳設圖-대흥사 성보박물관)’를 철저하게 고증하여 조선시대 서산대사 국가제향의례(國家祭享儀禮)를 원형(原型)에 가깝게 재현(再現)하였고, 예조정랑과 전라경양찰방, 장흥, 낙안, 흥양, 해남, 진도 5개 고을 군수들의 예제관(禮祭官) 행렬도 당시의 의궤(儀軌)에 맞게 재현하였습니다.

서산대제의 국가제향 복원사업은 역사상 존재하지 않았던 것, 또는 실현 불가능한 것을 억지로 만들어내자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사업은 명백히 역사에 있었던 것을 복원(復元)하여 5000여 의승병(義僧兵)들이 수많은 번뇌와 갈등 끝에 헌신했던 호국(護國)의 얼을 계승 발전시켜 국가의 정체성(正體性)과 자존심을 회복하자는 데 의의가 있습니다. 

지난 2013년 대흥사에서 열린 서산대제 국가 제향 재현 모습. 전문가들의 연구와 고증을 거쳐, 조선시대 국가제향을 재현했다.

 

‘호국 의승병의 날’

국가 기념일 지정

승려를 8대천민으로 전락시키고 도성출입마저 금지했던, 극단적 숭유억불(崇儒抑佛) 정책을 펼쳤던 조선시대에도 호국의 대스승이신 서산대사에 대한 제향만큼은 ‘조선왕조 종묘사직제례인 종원(宗院)’의 수준에 맞먹는 국가제향(國家祭享)으로 모시면서 구국(救國)의 공덕을 기렸습니다. 이런 서산대제를 서산대사께서 종교지도자였다는 이유로 오늘날 국가적 관심 밖으로 내몰아서는 안 됩니다.

특히 요즘처럼 끊임없는 일본의 역사왜곡(歷史歪曲)과 망언(妄言), 전범자(戰犯者) 신사 참배에 대항하여 우리의 국토를 유린하였던 왜군을 격퇴한 서산대사의 사은사상(四恩思想: 부모, 스승, 나라, 백성)과 국가가 최고의 예우로써 제향(祭享)했던 자랑스러운 역사로써 대응한다면, 대한민국 국민이 한마음 한뜻으로 단결(團結)할 좋은 계기가 될 것입니다.

서산대사 휘하의 5000여 의승병들은 세속을 버리고 출가한 승려로서 나라로부터 어떠한 녹도 받지도 않았고, 공식적인 책무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전쟁보급물자까지 자체조달하면서 도망간 관군을 대신해서 왜군과 싸워 나라와 백성을 지켰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이들에 대한 명예회복이나 추모 사업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임란 당시 수락산 노원평 등의 전투에서 보듯이 불리하고 험난하여 일반 의병들이 싸우기 꺼려한 전투는 거의 무명 의승군(義僧軍)이 도맡아서 묵묵히 싸워 승리했고, 의승수군(義僧水軍)도 이순신 장군이 조정에 세 차례나 상소를 올리어 이들에게 표창을 내릴 것을 건의할 정도로 열심히 나라와 백성을 위해 싸웠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의승군과 의승수군의 명예회복을 위한 정부와 각계의 노력은 매우 미흡한 실정입니다.

지난 2013년 6월27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서산대사 국가제향 복원에 관한 국회세미나”에서는 그동안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조선시대 전란사에서의 의승군(義僧軍)의 위상과 역할, 단절된 표충사(表忠祠) 서산대사 춘추제향(春秋祭享)의 역사와 의의, 현재적 복원 방향에 대한 논의가 있었습니다. (사)서산대사 호국정신 선양회와 불교사회연구소, 국회정각회(國會正覺會) 등이 함께 가칭 ‘호국 의승병의 날’ 국가기념일 지정을 위한 노력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해군 이지스함

‘서산 청허호’ 명칭 부여

2013년 6월, 박경일 당시 해군3함대사령관이 연평해전에서 전사했던 우리 해군장병들을 추모하는 영화 제작을 지원하기 위한 바자회에 동참했던 분들께 감사를 표하는 함상 연회에 초대되었습니다. 그 때 우리 해군 함정에 역사적 영웅의 이름을 붙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동안 명명된 이지스함에 ‘세종대왕함, 서애 유성룡함, 율곡 이이함’ 등의 명칭이 있음을 알고 소납은 크게 놀랐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왜군의 살육에 마을마다 백성들의 시체가 산더미를 이루었고 치우는데 3년이 넘게 걸렸다고 기록하고 있어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었을 때에 나라와 백성을 구하기 위해 팔도의 스님들은 전투에 참가하여 고군분투 하고 전국 산문에 격문(檄文)을 돌리고 평양성 수복과 한양환도를 이루신 서산대사님과 사명, 처영, 영규대사를 비롯한 승군장들의 구축함 이름이 없는 것을 알게 되어 정말 실망스럽기 짝이 없었습니다. 반면 ‘동시대의 유성룡, 이이 같은 분들은 실제 전투에는 참가하지 않은 문관(文官)으로 칼 한번 잡아보지 않았는데…’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국가로부터 공식적 승군 통솔권을 부여받고 나라와 백성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운 의승군(義僧軍)의 총사령관격이자 호국의 대스승인 서산대사의 이름은 후보로조차 거론되지 않았다니 너무나 안타까움을 금할 길 없으며 정말 형평의 원칙에 맞지 않는 비정상적인 관행입니다.

향후 차기 이지스함에 ‘서산대사함’의 명칭을 부여하자는 것은 대사의 종교적 덕망을 기리기 위함이 아닙니다. “팔도십육종선교도총섭(八道十六宗禪敎都摠攝)”이라는 공식적인 승군 통솔권을 부여받아 구국(救國)의 공을 세운 대사의 호국정신을 계승하자는 뜻이며, 나아가 일본의 반역사적 도발행위를 뛰어 넘어 일본의 침략야욕을 단숨에 굴복시켰던 서산대사와 5000여 의승군의 정신으로 대응하자는 의도입니다. 차기 이지스함이나 구축함에 반드시 ‘서산 청허함(西山淸虛艦)’으로 명명해 주실 것을 간곡히 청원합니다.

2014년 서산대사 제향은

육로 통해 남북합동으로…

임진왜란이 끝난 뒤 정조대왕(正祖)은 전라도와 평안도 관찰사를 시켜서 서산대사의 유교식 사당인 ‘해남 대흥사 내 표충사(表忠祠)’ ‘묘향산 보현사 내 수충사(酬忠祠)’를 건립할 것을 명했습니다. 이때부터 표충사와 수충사에서 국가가 서산대사의 제향을 지내는 것이 정례화되었습니다. 그러나 현재 북한 수충사에서도 서산대사에 대한 제향은 단절된 상태에 있습니다.

저는 서산대사 국가제향 복원을 위한 사실적 대하소설 <서산(西山 10권)>에 필요한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통일부 승인을 얻어 지금까지 4차례 묘향산 보현사 수충사를 다녀왔습니다. 서산대사께서 오래 주석하셨고, 서산대사 유교식 사당인 수충사(酬忠祠)가 남아있는 묘향산(妙香山) 보현사를 방문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때 보현사 주지 스님과 조선불교도연맹위원장(이하 조불련)은 버선발로 뛰어나올 정도로 서산대사의 유의처인 대흥사의 주지 스님을 반갑게 맞이했고, 대하소설 ‘서산(西山)’을 무릎을 꿇고 받을 정도로 서산대사에 대해 크나큰 존경심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간 대흥사와 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이하 민추본)는 서산대사 국가제향의 온전한 복원을 위해 묘향산 수충사에서 남북합동제향(南北合同祭享)을 개최하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민추본과 조불련의 서산대제 남북합동제향의 합의 및 봉행은 문화체육관광부의 예산 지원과 통일부의 승인 절차를 통해서 진행됩니다. 만일 분단 이후 최초로 재현될 2014년 묘향산 수충사 서산대사 추계제향이 남북합동으로 봉행된다면 이는 역사적 사실의 복원뿐 아니라 민족 동질성의 회복과, 전통 민족문화의 계승 등의 의의를 크게 가질 것입니다. 2014년 추석 전후에는 통일의 물꼬가 트여 육로를 통해 판문점을 거쳐 개성, 평양, 묘향산으로 버스를 타고 가서 묘향산 보현사 수충사에서 남북합동으로 서산대사 추계제향이 반드시 성사되기를 간절히 발원합니다.

[불교신문3004호/2014년4월23일자]

 


 

저작권자 © 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