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아, 웃어라

원영스님 지음 / 갤리온

‘세상에 내 편이 있으면 얼마나 든든할까’ 하고 한번쯤 생각한 적 있다면 ‘편파적으로’ 상담해주는 원영스님에게 도움을 청해보자. 본지 논설위원이자 조계종 교육아사리인 원스님이 에세이집 <인생아, 웃어라>를 펴냈다.

책에는 스님이 종단에서 운영하는 청년출가학교 지도법사로, 현재 BBS 아침풍경을 진행하면서 만났던 고민이 담겨 있다. 여기에 스님은 솔직한 자신의 경험담까지 더했다. 어릴 적 자신을 괴롭혔던 고민이나 일본 하나조노대학원에서 공부하며 겪었던 외로움, 소중한 가족을 떠나보내며 맞닥뜨렸던 상실감 등을 함께 전해 독자들의 공감을 사고 있다.

가족 때문에, 직장 상사 때문에 혹은 세상 때문에 사는 게 힘들고 억울한 일투성이라는 이들을 만나면 스님은 팔을 걷어붙이며 이렇게 말한다. “대신 욕해 줄까?” 물론 아직까지 스님한테 욕해달라고 청한 사람은 없다.

대신 스님의 이 한마디에 고민을 토로했던 사람들은 빵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한바탕 웃고 나면 마음도 좀 풀린다. 그리고 나선 굳이 누가 조언하지 않아도, 스스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낼 수 있다는 게 스님의 지론이다.

편파상담의 핵심은 공감

상대 얘기 잘 들어주고

고통 이해해주는 게 중요

웃음은 화 푸는 특효약

삶 속에 꼭꼭 숨겨진

웃음 찾는 건 각자 몫

스님은 “열심히 살아도 꼬여만 가는 인생 때문에 자꾸만 화가 난다면 저를 믿고 한번 웃어보라. 꽉 묶여 있던 실타래가 실오라기 하나로 조금씩 풀리듯, 화로 뭉쳐 있던 마음의 근육도 웃음 하나로 풀어진다”고 말했다.

스님도 날 때부터 웃음 많은 사람은 아니었다. 오히려 어릴 땐 웃지도 않고 조용히 지냈다. “지독한 가난, 유쾌하지만 경제적으론 무력한 아버지, 8남매 거두느라 고생만 한 어머니를 보며 화가 치밀었지만 차마 표현하지 못하고 가슴 속에 꾹꾹 눌러온 탓”이다.

어두운 성격은 열여덟 살에 은사 스님을 만나고 달라졌다. 은사 스님은 항상 대책 없는 맞장구로 웃음을 줬다. “하찮은 말이나 불평에도 ‘맞아 맞아’ ‘누가 감히 우리 막내를 못살게 굴어’ 하면서 맞장구쳐 주니 막힌 속이 뚫리는 것 같았다.

속이 시원해지면서 말하는 것도 신이 났다. 웃음도 덩달아 늘어났다. 용기도 생겼다”고 한다. 은사 스님의 무조건 맞장구가 스님의 편파상담의 뿌리가 된 셈이다.

“상담을 청한 사람이 잘못을 저질렀어도 무조건 고민을 털어놓은 사람 편에 서서 답답한 마음을 풀어주는 걸 첫째로 둔다”는 스님은 편파상담은 다름 아닌 공감임을 강조했다. 우리가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을 때 흔히 하는 실수는 “내가 해봐서 아는데…” “우리 땐 다 그렇게 했어”라는 식으로 상대의 고통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이다.

저자 원영스님. 사진=신재호 기자 air501@ibulgyo.com

스님은 “고통은 극히 주관적인 것이기에 누구도 그것의 경중을 따질 자격이 없다”며 “상대방이 엄살을 떠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가 고통스럽다면 진심으로 존중해 줘야 마땅하다”고 말했다. 공감의 힘은 크다. “백 마디 말보다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괴로운 마음에 공감하는 게 훨씬 도움이 된다”며 “기분을 잘 풀어주면 고민하는 사람이 스스로 길을 잘 찾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스님의 편파 상담은 거침없고 솔직하다. 한 대학생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자신을 할머니에게 맡기고 재혼한 엄마를 미워하고 원망하며 살았다. 할머니, 할아버지마저 돌아가시고 혼자 남아 대학생이 된 그녀 앞에 어느 날 엄마가 나타났다.

재혼한 남편의 사별로 오갈 곳이 없어져서 돌아온 것이다. 자신을 두고 떠난 것에 대한 사과는 커녕 오랜 고향집에 돌아온 것처럼 즐거워하는 엄마의 뻔뻔함에 그녀는 화가 치밀었다. 하지만 엄마를 내쫓을 순 없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그녀에게 스님은 “용서, 할 수 없으면 하지마라”고 조언했다. 너무 힘들면 욕하고 소리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용서는 나를 괴롭힌 상대방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서 해야 하는 일”이지만 “용서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혹여 남은 게 절망 밖에 없어 극한의 상황을 택하려는 이들에게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암울한 상황에 하루하루 끔찍했던 10대 시절, 죽기 위한 장소로 산을 택했다고 한다. 절벽에서 떨어져 조용히 생을 마감하겠단 마음으로 산을 오르는데 막상 죽으려니 지난 세월이 떠올라 눈물이 흐르더란다.

그러다보니 해가 기울고,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산을 오르다 그만 길을 잃었다. 깊은 산속을 헤매면서 스님은 두려움에 떨었다. 스님은 그때의 자신처럼 죽고 싶을 만큼 괴로운 사람을 만나면 이렇게 말한다. “죽고 싶은 게 아니라 이 상황에서 벗어나 더 멋지게 살고 싶은 거라고, 조금만 더 버티면 살아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게 될 날이 반드시 올거라”고 말이다.

스님은 화나고 억울할 때, 힘들고 허무할 때, 웃을 일이 없을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강조하며, 암 병동에서 폐암 말기인 어머니를 간호하며 만났던 한 아주머니의 이야기를 전했다. 계속되는 항암치료로 머리숱은 별로 없고 빼빼 마른데다가 거무튀튀한 혈색의 아주머니는 죽을 날만 기다리며 누워있기보다 살아 있는 순간엔 열심히 살자고 마음 먹었다며, 날마다 곱게 화장을 했다고 한다.

말기 암의 아주머니가 화장을 통해 삶의 즐거움을 찾아내듯, 삶 속에 숨어 있는 웃음을 발견하는 것은 결국 각자의 몫이다. 스님은 말한다. “기억하세요. 웃으면 화가 풀리고, 한 번 더 웃으면 인생이 풀립니다.”

[불교신문3001호/2014년4월1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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