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창기 개척자들의 발자취

기록하고 평가하는 작업은

한국불교 장래 설계하고

미래 만드는 데 중요한 지표

 

‘도미’ 연도 빠른

서경보스님인가

한국불교 시스템 건설한

숭산스님을 선택할 것인가…

 

대중 의견 폭넓게 모으고

치열한 공론이 필요한 시점

불교가 태평양을 건너 미 대륙으로 전해진 일은 2600년 불교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 가운데 하나이다. 우리나라 역시 강한 불교전통을 가진 아시아국의 하나로서 미 대륙에 불법(佛法)을 전파하는 대열에서 하나의 흐름을 형성하며 한국불교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 미주한국불교계에서는 미주한국불교의 기원에 관한 논쟁이 있었다. 논쟁은 미국에서 발행되는 <미주현대불교>라는 잡지에서 서경보스님이 1964년 미국에 입국하였던 사실을 근거로 미주한국불교의 원년(元年)이라고 주장한 데서 시작했다.

미주한국불교는 세계화로 가는 한국불교의 활로이고 세계불교의 격전장에서 한국불교의 국가대표선수라는 의미가 있다. 미주한국불교의 첫 번째 세대가 지나가고 다음 세대를 맞이하고 있는 지금 초창기 개척자들의 발자취를 기록하고 평가하는 작업은 한국불교의 장래를 설계하고 미래를 만들어 나가는 데에도 중요한 지표가 될 수 있기에 폭넓게 대중들의 의견을 모으고 치열한 공론이 필요한 시점이다.

미주한국불교의 출발점을 언제로 보아야 할 것인가 하는 논쟁은 도미(渡美) 연도가 빠른 서경보스님과 미주한국불교의 시스템을 건설한 숭산스님 가운데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라는 문제로 집약된다. 필자는 서경보스님 기원론을 부정하고 숭산스님을 미주한국불교의 창건주로 모셔야 한다는 취지로 이 글을 쓴다.

서경보스님은 20세기 한국불교가 배출한 위대한 고승 가운데 한분으로 폄훼될 수 없는 업적과 가르침을 남긴 큰 스승이라는 사실은 부인될 수 없다. 다만 미주전법(美洲傳法)과 해외포교라는 특수한 분야의 역사를 세우고 자리매김하는 데 있어서 에베레스트 정복이나 남극 탐험처럼 도착 자체에 결정적 의미를 부여하기 보다는 도미 후의 활동과 영향력이 더욱 중요한 판단의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논지이다.

숭산스님을 미주한국불교 창건주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의 핵심적 근거는 사찰의 설립이다. 숭산스님은 1972년 도미해서 LA 달마사를 창건하였고 뉴욕 원각사와 조계사 그리고 시카고 불타사를 연이어 설립하였다. 이 사찰들은 미국의 3대도시에서 개원한 최초의 한국사찰로서 아직까지도 해당지역 최대사찰로 건재하고 있다.

 

허허벌판에 텐트 치고 밥 짓다 

미국 진출 초창기 브라운대학에서 야외법문을 하고 있는 숭산스님.

 

미주에서 불교를 일으키는 일은 비바람 치는 허허벌판에서 텐트를 치는 동시에 밥을 짓는 일과 흡사하다. 미주한국불교는 본국처럼 청동기와 지붕에 단청으로 장식된 절집에서 최고의 사찰음식과 템플스테이를 즐길 수 있는, 그런 불교가 아니다. 미국에 건너온 여러 스님들 가운데 풍찬노숙(風餐露宿)의 모진 세월을 극복하고 살아남은 극소수 스님들이 천신만고(千辛萬苦) 끝에 일구어낸 공간이 미주한국불교의 사찰이다. 미국을 방문한 불자들이 이따금 초라한 한국절의 외형에 실망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그 안에 담긴 땀과 시련의 의미를 간과한 투정에 불과하다. 목숨을 건 독립투사처럼 피와 땀이 없이 창건주가 될 수는 없다. 미주한국불교 창건주의 조건으로 사찰건립을 주장하는 근거이다.

일단 사찰이 건립되면 많은 일들이 가능해진다. 정기적인 법회를 열 수가 있고 하나씩 살림살이를 마련할 수가 있다. 국가의 크고 작은 혜택을 받을 수 있으며 지역 사회에서 동포불자들의 대변인으로서 교민단체 및 현지 지도자들과의 공식적인 소통의 창구로서 지위를 획득하게 된다. 무엇보다도 스님들과 불자들이 미국에 진출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며 또한 그렇게 진출한 스님들은 인근 혹은 다른 지역에 새로운 사찰을 건립할 수 있다.

실제로 숭산스님이 창건한 미주 3대도시의 4개 사찰은 각 도시의 원찰로서, 이 사찰들을 통해 여러 스님들이 영주권을 받고 미국에 정착하여 다른 여러 사찰들의 건립에 토대가 되었다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최초의 사찰들은 이런 방식으로 미주 전역에 한국불교를 확산시켰으며 미주의 모든 한국사찰들이 숭산스님의 계열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적어도 숭산스님의 미주진출과 성취가 모델이 되어 왔으며 지금도 꾸준히 ‘벤치마킹’되고 있다.

 

가장 큰 업적은 ‘서양인 포교’

 

숭산스님의 해외포교 업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분야는 ‘서양인 포교’이다. 해외에서 한인 포교의 핵심이 동포 불자들의 정체성 유지와 성공적인 이민생활을 위한 정신적 지지에 있다면 현지인 포교의 핵심은 최고의 수행전통을 이식하여 법맥을 이어나가는 일이다. 실제로 일본과 중국 그리고 티베트와 베트남 등 아시아 여러 전통의 불교국가들은 그 나라에서 가장 유력하고 뛰어난 스승을 필두로 가장 대표적인 가르침을 전법하고 있다. 숭산스님 역시 서양인들에게 “Zen Master”로서 경허스님과 만공스님의 선맥을 앞세워 한국불교의 대표적인 수행법인 간화선을 지도하였으며, 그 가르침의 법맥을 Kwan Um School of Zen(이하 관음스쿨) 이라는 조직을 통해 미국 땅에 정착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초창기 숭산스님의 도미 과정부터 제자 양성에 관한 내용은 미국불교의 고전으로 칭송받고 있는 Rick Fields의 <How Swans Came to the Lake>라는 책에 여러 페이지에 걸쳐 기록되어 있다. 소위 ‘메인스트림’에서도 인정하는 전법활동이었다는 뜻이다.

대부분의 한국인이 기억하는 숭산스님의 해외포교는 외국인 제자들을 출가시킨 일이다. <만행>의 저자로서 지금도 활발한 전법활동을 하고 있는 현각스님과 캘리포니아 사막에서 10년 가까운 고행을 통해 한국절을 일구어낸 무량스님의 이야기는 종교를 초월해 온 국민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숭산스님은 조계종과 ‘관음스쿨’을 통해 수십 명의 서양인 제자들을 출가시켰으며, 재가자도 공부의 정도에 따라 몇 단계의 품계를 부여함으로써 지속적인 수행을 독려하였으며, 이 시스템은 지금도 잘 작동되고 있다.

현지인 제자양성이 해외포교의 한 축이라면 또 다른 한 축은 이들이 지속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도량 건립이다. 숭산스님은 미국 전역에 수많은 ‘관음선종 수행센터’를 건립하여 한국불교가 지속적으로 영어권 세계 속으로 전파될 수 있는 거점을 마련하였다. 1972년 로드아일랜드주 프로비덴스에서 관음스쿨의 본사인 프로비덴스 젠센터가 설립된 후 미주 전역에 37개의 센터와 그룹이 현재 활동 중이며, 미국에서 탄력을 받은 관음스쿨은 전세계로 퍼져나가 아시아, 아프리카 그리고 오세아니아 등 6개국에 10개의 센터 그리고, 유럽과 중동의 14개국에 50개의 센터가 설립되어 있다. 이들 센터에서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108배와 한글 반야심경을 독송하며 스님의 가르침을 이어가고 있다.

숭산스님의 해외포교 원력을 얘기할 때 음미해야 할 부분은, 앞서 열거한 바와 같은, 외형적 성취가 아니다. 그와 같은 업적을 통해서 한국불교를 세계의 중심으로 올려놓았다는 점이 포인트이다.

숭산스님의 관음스쿨은 미국에서 시작하여 전 세계에 지부를 둔 세계적 수행센터이다. 한국에서 시작하지 않았지만 아시아, 유럽 등지로 퍼져나갔으며, 이 많은 센터들의 구심점으로 한국에 무상사를 건립한 것으로 방점을 찍었다. 모든 외국인 제자들의 궁극의 귀의처로서, 최초로 건립하신 프로비덴스 젠센터가 아닌, 한국의 시골마을 무상사를 세계의 중심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모든 해외포교의 귀결점과 완성점을 한국으로 회향시켰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모델은 미주한국불교가 미국에서 활동하는 궁극적 목표와 일치한다. 한국불교를 통한 불교의 세계화…. 이러한 소명을 성취해 나가는 데 있어서 미국은 가장 중요한 격전장이며, 거기서의 성공을 통해서 한국불교는 세계인의 불교가 되었으며 한국불교가 세계인의 귀의처가 되는 선례를 숭산스님이 보여주셨다는 점은 미주한국불교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반드시 참조해야 할 관점이다.

 

1972년부터 32년 간 해외전법

 

숭산스님의 해외전법기간은 1972년부터 2004년 입적하실 때까지 약 32년이다. 그 기간 동안의 업적은 전법승(傳法僧)으로서 숭산스님의 개인적 능력의 증거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한국불교의 무궁한 가능성의 예시이기도 하다. 한국불교도 미주에서 당당히 뿌리내릴 수 있으며 한국도 세계불교인의 성지가 될 수가 있음을 보여주었다.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현실로 증명하다는 뜻이며, 그것이 바로 숭산스님이 우리에게 전하고 있는 항구적인 메시지이다.

미주한국불교의 성원들은 이제 천년만년을 이어갈 미주한국불교의 시조(始祖)를 선택할 시점에 와 있다. 미래의 역사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미주한인불자들의 특권이자 다가올 미래한국불교에 대한 책임이 따르는 일이다. 모두가 함께 박수칠 수 있는 대중공사가 되기를 소망한다.

[불교신문2998호/2014년4월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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