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이라는 이유만으로

치료 견딜 수 없는 것 아냐

‘건강한’ 노인은 항암치료에

손익 저울질 했을 때

이익 더 기대할 수 있어

‘포괄적 노인평가’ 도입 필요

 

노인 암환자의 인구가 많아졌다. 정확히 말하면 노인 인구가 많아졌고 이에 따라 노인 암환자도 많아졌다. 최근 보고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빠른 속도로 초고령 사회에 진입하고 있어 2039년 평균 연령은 50대에 이를 것이라 한다. 이를 참조하면 앞으로 노인 암환자는 더욱 많아져 인구 4명 중에 1명이 암으로 사망할 것이라는 통계도 있다. 그럼 환자 본인 및 자식 입장에서 독하다고 알려진 항암치료를 받을 것이라고 결정해야 할지 고민하는 경우가 더욱 많아질 것이다.

이때의 답은 “예스 오어 노(Yes or No)”이다. 즉 나이가 70세가 넘었다는 이유만으로 항암치료를 견딜 수 없는 것이 아니고 반대로 견딜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흔한 예로 같은 72세지만 용모단정하게 꾸미고 가족 및 친구들과 사회적 관계를 맺고 자기 관리를 할 수 있는 노인이 있고 반대로 혈압, 당뇨, 신장 질환, 치매 등 동반된 질환을 오래 앓고 자기 생활을 제대로 꾸릴 수 없어 남의 도움을 받아야만 일상생활이 가능한 노인이 있다. 이것을 생리적 나이라고 하는데 구체적인 평가로는 ‘포괄적 노인평가(comprehensive geriatric assessment)’라는 도구가 있다.

이는 노인환자를 대상으로 신체적, 정신적 손상과 기능적 장애를 확인하는 것으로 전반적 기능상태(일상생활 동작기능 평가, 보행과 균형유지 상태, 영양상태 등), 정신심리적 건강(노인우울평가 등), 사회적 자원과 지지(가족 부양상태, 공적 사적 지지자원 여부 등)가 포함된다. 이 평가를 시행하여 ‘건강한’ 노인이라면 항암치료에 대한 손익을 저울질 했을 때 이익을 더 기대할 수 있다.

그럼 ‘포괄적 노인평가’가 치료 결정의 전부인가? 최근 전이성 위암으로 진단 받은 74세 노인 환자를 예로 들어보자. 환자는 아침에 일어나 정갈히 목욕하고 30분 정도 아침 산보를 매일 한 후 아침 차려 드시고 깔끔히 차려 입고 친구들과 마실 다니는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환자는 아내와 사별했지만 시집간 두 딸이 근처에서 살면서 아버지가 별일 없이 잘 생활하시나 자주 방문하는, 정말 건강한 노인이었다(사견이지만 사적 지지자원으로 일반적으로 아들보다는 딸이 우수한 것 같다).

하지만 치료에 대한 설명, 특히 건강한 노인으로써 항암치료에 대한 독성을 견딜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를 했음에도 ‘살만큼 다 살았다’면서 담담히 ‘나라고 생로병사를 피할 수 있겠어. 마찬가지겠지’라 말하며 불편할 때 다시 내원하겠다는 경우도 있다. 가끔 ‘왜 나에게 이런 일이’가 아닌 ‘왜 나라고 아니겠어’란 환자의 반응은 진료실의 나를 겸허하게 만든다. 그래서 다시 고민을 하게 된다. 과연 환자에게 ‘최선의 이득’을 제공하는 것은 어떤 결정일까.

[불교신문2998호/2014년4월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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