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환타지다

월호스님 지음 / 민족사

달마대사가 말했다. “좋은 꿈도 꿈이다.” 부처님도 강조했다. “애착있는 모든 것은 꿈과 환타지, 물거품과 그림자, 이슬과 번갯불 같다.” 행불선원장 월호스님의 결론.

“삶은 환타지다.” “모든 존재는 몽(夢), 환(幻), 포(泡), 영(影), 로(露), 전(電)과 같다. 일시적으로 생겨났다가 순간적으로 사라진다. 여기서 환은 허깨비, 즉 환타지다. 우리 삶은 환타지 같아서 있다가 사라지고, 사라졌다가 나타나는 변화의 특색을 가지고 있다. 너무 애착할 것도 없고 너무 무시할 것도 없다. 그냥 순간순간 완전 연소하며 살아가는 삶이어야 한다.”

번갯불 번쩍하는 순간 이슬거품처럼 있다가 사라지는 삶이라면, 죽음 역시 두려움이 아니다. 오히려 죽음에 비해 삶은 불확실할 뿐이다. 사람은 누구나 다 죽는다. 죽음이 확실한 것이고,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는 삶이 불확실한 것이다.

법구경 보배경 자애경…

주옥같은 ‘부처님 게송’

“우리 삶은 환타지” 설파

몸뚱이 애착 내려놓으면

근심 악행에서 벗어나

진리의 기쁨, 법희선열…

‘나는 반드시 죽는다…나의 삶은 죽음으로 끝을 맺는다.’ 이같은 죽음에 대한 명상을 반복해서 하다보면 죽음을 초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이 시점에서 월호스님이 내놓은 부처님 게송 한 대목. ‘애욕이 슬픔을 낳고, 애욕이 두려움을 낳는다. 애욕에서 벗어나면 슬픔이 없는데, 어찌 두려움이 있으랴.’

사랑하는 사람을 저세상으로 떠나보내게 되거든, 무작정 통곡만 할 것은 아니다. 통곡을 하기 보다는 지극정성으로 염불을 해드릴 일이다. 독경과 염불이 죽은 이를 가장 편안하게 보내는 방법임을 알아야 한다. 이생에선 자식과 재산이 의지처가 될 수도 있겠지만, 죽어서는 오로지 자신이 지은 업과 복덕, 수행력만이 의지처가 되기 때문이다.

누구나 죽음에 초연해지면 삶이 달라지는 법. ‘벗어남의 맛을 알고, 내려놓음의 맛을 아는 이는 근심과 악행에서 벗어나 진리의 기쁨을 만끽한다.’

행불선원장 월호스님

월호스님은 부처님 게송과 함께 “궁극적으로 몸뚱이에 대한 애착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이 몸뚱이가 진정으로 나’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놓아버리면 허전할 것 같지만 오히려 법희선열을 느끼게 된다…사실 이 몸도 계속 변화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관리만 잘해주면 되지 굳이 ‘내 것’이라는 소유의식을 가지고 애착하며 살 필요는 없다. ‘관리자 의식’으로 살면 죽음에 직면해서도 슬프고 괴로울 까닭이 없다. 관리해야 할 것이 없어지니 오히려 홀가분해진다.”

‘관리자 의식’으로 살아가는 사람에게 화날 일이 뭐가 있을까. “화를 내지 않는 것은 광대밖에 없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광대처럼 살면 화를 잘 다스릴 수 있다”고 월호스님은 제안한다.

“인생은 한편의 연극이니, 사바세계를 무대로 멋지게 살다가라”고 한 경봉스님의 가르침과도 다르지 않다. “저마다 역할은 다르지만 연극에 불과한 것인데 너무 몰입하다보니 연극이라는 것을 잊어버린 것이다. 연극을 실제인 줄 알고 화를 내고 괴로워하는 것이다.” 그러니 광대처럼 살면 화를 다스릴 수 있다.

“가족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서, 주변 사람들을 기쁘게 해주기 위해서, 지구촌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서, 이 세상에 연극하러 왔다고 마음먹으면 자기도 즐거워지고 남들한테도 즐겁게 해주려고 노력하게 된다. 하지만 그런 마음이 없으면 자꾸 바라게 된다. ‘저 사람이 날 즐겁게 안해주나? 왜 날 기쁘게 안해주나? 이렇게 바라는 마음이 쌓이고 쌓여서 화가 되는 것이다.”

달라이라마가 월호스님에게 선물한 한 사진에 “내가 도움을 주었거나 크게 기대한 사람이 나를 심하게 해치더라도 그를 최고의 스승으로 여기게 하소서”라는 글귀를 보면서 스님은 “이게 바로 자애심”이라며 탄성을 쏟아냈다.

꽃이 피고 지듯 우리 삶은 제행무상, ‘환타지’다. 벗어나고 내려놓는 맛을 알아야 한다. 불교신문 자료사진

여기에 게송 한토막 흘러나온다. ‘성냄의 끈, 갈애의 끈, 미세번뇌와 사견의 밧줄을 끊어버린 사람. 무지의 빗장을 뽑아버리고 진리를 깨달은 사람. 그를 일러 아라한이라 한다.’ 월호스님에 따르면 여기서 사견은 삿된 견해를 말한다. 인과법 인연법을 부정하는 견해다.

“‘콩심은 데 콩나고 팥심은 데 팥난다’는 것이 정견이다. 그런데 ‘콩을 심든 팥을 심든 무엇이 날지는 신에게 달려있다’는 것이 사견이다. ‘콩을 심든 팥을 심든 무엇이 날지는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것도 사견이다. ‘콩을 심든 팥을 심든 무엇이 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는 것도 사견이다. 사견의 밧줄을 과감하게 끊고 긴 안목을 갖고 사는 사람을 진정한 보살이라고 할 수 있다.”

재치있는 입담, 명쾌한 교리해석과 법문으로 많은 이들에게 불교적 삶의 가치와 진정성을 속시원하게 보여주는 월호스님이 이번에는 부처님 게송을 엮어 ‘우리 삶이 환타지’임을 설파했다. <법구경>을 중심으로 <보배경> <자애경> 등을 월호스님 특유의 유쾌한 시선과 필치로 간명하게 풀어낸 책은 불교텔레비전에서 인기리에 방영된 내용을 보완, 출간됐다.

최고의 게송은 부처님의 탄생게가 아닐 수 없다. ‘하늘 위 하늘 아래 나홀로 존귀하다(天上天下唯我獨尊) 삼계의 모든 괴로움을 내가 편안히 하리라.(三界皆苦我當安之)’ 월호스님은 말한다.

“궁극적인 안심은 어디서 오는가. 그것은 외부의 존재에 의지해서 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기 몸과 마음, 성품을 관찰하면서 ‘아 이것이 이제 보니까 공한 것이구나’라는 것을 터득하게 되면 불안감 불편함이 저절로 없어지게 된다. 왜냐하면 ‘그런 것들은 실체가 없는 것이었구나, 아지랑이 같고 허깨비와 같은 것을 내가 부여잡고 실체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구나’하고 법의 이치를 알게 되기 때문이다. 그것이 해오(解悟)이다.”

결국 깨달음의 길은 멀다해도 깨어있음의 길은 가깝다. 스님은 깨달으려고 노력하지 말고 바로 지금 이순간 깨어있으려고 노력하다보면 깨달음은 저절로 찾아온다고 귀띔한다. ‘바로 지금 여기에서 깨어있으라.’


■ 월호스님의 ‘행복한 게송’

‘흰쌀밥에 고등어구이’

어느날 스님이 탄 택시의 운전기사는 대부분 택시기사들과 달리 유독 느긋하고 편안하게 차를 몰았다. 스님이 묻자 그는 답했다.

“어린시절 어른이 되면 흰쌀밥에 고등어구이 반찬을 먹어봤으면 소원이 없겠다는 생각을 했지요. 저는 그 소원을 이미 성취했답니다. 주위사람들과 비교하면서 바쁘게 살고 스트레스 받아봤자 건강만 악화될 뿐. 저는 더 바랄게 없어요.” 행복한 택시기사의 만족하는 삶의 자세가 훈훈하다.

월호스님은 행운보다 행복에 방점을 찍었다. “네잎클로버는 행운을 상징하고 세잎클로버는 행복을 상징한다고 한다. 문득 ‘멀리있는 행운을 잡으려 하지 말고 가까이 있는 행복을 지키라’는 말이 생각난다. 언제나 우리 가까이에 있는 세잎클로버만으로도 감사할 줄 알면 바로 지금 여기에서 행복해질 수 있다.”

요즘 여성들은 ‘다이어트’가 화두다. 스님은 부처님 덕분에 다이어트에 성공한 빠세나디왕 이야기도 들려줬다. 부처님당시 코살라국왕이었던 빠세나디왕은 신심깊은 불자인데 대식가였다. 부처님 앞에서 법문을 들을 때도 식곤증으로 눈은 자꾸 감기고 배는 불러서 헉헉대며 가쁜 숨을 내쉬었다.

이 때 부처님은 “과식은 괴로움을 초래한다”며 다음과 같은 게송을 읊었다. ‘멍청하게 먹기만 하는 집돼지처럼 이리저리 뒹굴며 잠자는 어리석은 이는 계속해서 자궁에 들어감을 면치 못하리라.’

윤회를 벗어나려면 돼지처럼 마구 먹어서도 안되고 이리저리 뒹굴면서 잠만 자도 안된다는 것. 식욕이 솟을 때마다 이 게송을 외면 밥맛이 달아나지 않을까. 월호스님은 “부처님께서는 말귀를 알아듣는 사람에게는 이렇듯 돌직구를 날렸다”며 이 일화를 보면서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고 전했다.

스님은 엘리베이터를 탈 때마다 마음 속으로 축원을 한다. ‘지금 이 엘리베이터 안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행복하여지기를…어려움에서 벗어나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이렇게 축원을 하면 비좁은 공간에서 생긴 머쓱한 마음도 없어지고 함께 있는 사람들이 더 반갑게 느껴진다고.

전쟁에 패한 빠세나디왕에게 부처님이 설한 게송은 가족끼리 회사동료끼리 싸우고 시기하는 우리에게도 유효하다. ‘승리자는 증오를 낳고 패배자는 괴로움 속에서 살아가네. 평화로운 자는 이기고 지는 다툼을 버리고 행복하게 살아가네.’

[불교신문2995호/2014년3월2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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