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아래 작은 암자에는 작은 스님이 산다

현진스님 / 담앤북스

‘글쟁이’로 잘 알려진 현진스님이 새로운 에세이집으로 1년 만에 독자들을 찾아왔다. 청원 성모산에 마야사에서 반농반선(半農半禪)을 실천하고 있는 스님은 신간을 통해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지내며 느낀 소회를 진솔하게 전했다.

3년 전 성모산에 온 현진스님은 법당 불사보다 꽃과 나무를 심는 일을 먼저 시작했다. 건물은 1년이면 금방 짓지만 나무는 그렇지 않다. “나무가 키를 키우기 위해서는 건너뛰기나 속성이 통하지 않고 오직 시간의 눈금을 정확하게 건너야 하기 때문”이다. 단풍나무, 대추나무, 모과나무, 반송, 라일락, 벚나무, 목련 등을 심고 키우며 스님은 자연과 함께 사는 법을 터득해 간다.

스님이 전하는 산사의 사계는 낭만적이기도 하지만, 지극히 현실적이다. 스님은 “생명이 박제된 도시 문명의 오염을 씻어 내려면 자연의 품을 빌릴 수밖에 없다”며 “아무리 바쁘더라도 바람 소리와 새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고 꽃의 아름다움과 그 향기에도 눈길을 돌릴 수 있어야 한다”고 우리를 환기시킨다.

따뜻한 햇살과 달리 바람은 여전히 차갑기만 한 이른 봄에는 청향춘식(淸香春息), 맑은 매화향기가 전하는 봄소식을 기다린다. 스님은 혹독한 겨울을 지나 꽃망울이 터지기 직전의 홍매나무 근처를 하루에도 몇 번씩 기웃거리며 꽃이 피는 순간을 열망한다.

여름엔 벌레 때문에 고달플까도 싶지만, 사투의 대상은 의외로 잡초다. 아침저녁으로 풀과 씨름해야 하기 때문이다. 오죽했으면 “성하(盛夏)엔 호미에 흙 마를 날이 없다”고 했을까. 생명력이 좋아 날마다 쑥쑥 자라는 잡초를 뽑다보면, 급기야 풀이 무서울 지경에까지 이른다. 잡초가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지만, 제자리가 아니기에 환영받지 못한다.

현진스님 신작 에세이

마야사서 반농반선 실천

자연 속 일상 진솔하게…

그러다 문득 스님은 “중노릇의 본분이 거창한 곳에 있는 게 아닐 것”이라며 “어떤 일에서 이치를 익히고 그 이치로 자신의 삶을 이끌어 갈 수 있다면 그 자체가 정진이며 수행”임을 깨닫는다.

가을걷이를 하면 스님의 마음은 물론 주머니도 두둑해진다. 뒷산을 오를 때마다 떨어진 알밤을 주워 넣다 보면 금세 주머니가 불룩하다. 잘 익은 홍시를 따고, 도토리를 주워 묵을 쒀 먹다보면 “대지의 은혜와 덕을 새삼 접할 수 있다.”

만추의 아름다움도 잠시, 낙엽은 가을의 복병이기도 하다. 도토리묵은 맛있지만, 발이 빠질 만큼 상수리나무 잎이 마당을 뒤덮으면 마음이 달라진다. “계절마다 그때그때 할 일이 있다. 그것이 삶의 과정이기도 하지만 그때의 인생이며 매듭”이기도 하다.

폭설로 나무가 부러지는 소리를 들으면 자연이 주는 가르침을 떠올린다. “나뭇가지의 눈을 털어 주면서 가진 것이 적으면 근심도 줄어든다”는 것과 “기쁨이든 고통이든 그 자체가 지나치면 삶을 무너뜨린다”는 것을 절감하는 것이다.

청원 마야사에서 반농반선을 실천하고 있는 현진스님은 자연친화적인 삶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주변 한번 돌아볼 새 없이 바쁘게 살고 있는 이들에게 울림을 주는 이야기도 책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왜 나만 이렇게 힘들까”라고 한번쯤 생각해 본 사람들에게는 유대교에서 전하는 ‘슬픔의 나무’에 관한 우화를 들려준다. 사람이 죽으면 그 영혼이 온갖 슬픈 이야기가 가지마다 달려 있는 ‘슬픔의 나무’ 앞으로 가는데, 나무를 한 바퀴 돌며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결국 자신의 삶을 다시 선택한다는 얘기다.

스님은 “누구나 슬픔과 고민이 있지만 자기 것만 커 보이기 때문에 남의 인생을 들여다보고 싶은지 모른다”며 “행복 추구가 삶의 목적이 아니라 불행을 줄이는 일에 삶의 목적을 둔다면 작은 일에도 행복감으로 충만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 인도의 성자 스와디 묵타난다가 “성공을 향해, 행복한 미래를 향해 달려가다가 내 나이 쉰이 되고 보니 때로 나는 나 자신이 무덤을 향해서 가고 있는 참담한 느낌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고 한 말을 통해 삶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 중요하다”고 일깨웠다.

“돈을 벌고 명예를 얻는 것이 목적이 되면 삶의 과정에서 생겨나는 소소한 감동을 놓치기 쉽기 때문”에 “설령 그 과정이 괴롭고 슬플지라도 삶의 일부분으로 인정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오는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한여름 매미보다 시끄러운 정치인들에게 전하는 쓴 소리도 있다. 매미의 울음은 자연의 순리지만 정치판의 다툼은 반복되면 싫증만 날 뿐이다.

스님은 “권력을 잡은 이들은 자신의 위세가 영원하리라는 자만을 버려야 하고 자신의 임기 안에 역사에 남을 치적을 이루겠다는 오만을 버려야 옳다”며 권력의 무상함을 일러 “모두가 한때라는 것만이 스스로를 겸손하게 만들고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다”고 일침을 가했다.

[불교신문2995호/2014년3월2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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