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허집

신흥식 역해 / 가승

‘만사 꿈속 아닌 것이 없나니/ 홀연히 깨닫고/ 주장자 짚고/ 병과 발우를 끼고/ 구름 자욱한 숲으로 깊이 들어가니/ 온갖 새 지저귀고/ 샘물 소리 옥을 굴리네…’ 경허스님의 시 ‘토굴가’의 일부다.

1935년 만공스님이 만해 한용운스님에게 ‘부탁’했던 원고뭉치는 다름아닌 스승인 경허스님의 수필과 시, 노래가 총망라된 <경허집> 초본이었다. 경허집 초판서문에서 만해스님은 “감히 사양하지 못하고 원고를 재삼 읽어보았는데, 그 저술이 적당히 지은 시문(詩文)이 아니었다”며 “선문(禪門)의 법어와 현담 묘구들은 저자에서 읊은 것이나 세속의 때가 묻지 아니했다”고 말했다.

만해스님은 또 “문장마다 선(禪) 아님이 없고 어느 구절인들 법(法)이 아니겠는가”라고 반문하면서, “화상이 살아오신 궤적이 어떠했는가는 논하지 말라. 실로 일대 기이한 문장이요, 기이한 시로 이를 제자들이 세상에 공개하려는 것이다”라고 피력했다.

신흥식씨, 추임새 넣은 ‘경허집’

법문 ‘중노릇하는 법’ 지금봐도…

이 책의 발간을 주관한 곳은 선학원(중앙선원)이었다. 당시 40여 명에 이르는 발기인 명단에는 대표적인 선승들이 망라되었다. 만해스님에 따르면 1935년 만공스님이 원고를 수집하여 자신에게 부탁했지만 경허스님의 만년 잠적하던 때의 글까지 전부 찾아 완벽을 기한 뒤에 인쇄에 부치자는 주장에 따라 발간이 미뤄졌다. 1942년 봄 다시 김영운과 윤등암 등이 갑산, 강계와 만주 등을 찾아 유고를 수집하여 그해 6월 발기하고 9월 간행했다. 이보다 앞서 1931년 한암스님이 쓴 친필 <경허집>은 별도로 있다.

<경허집>은 권두에 ‘심월고원(心月孤圓) 광탄만상(光呑萬像) 광경구망(光境俱忘) 부시하물(復是何物)’이라는 게송과 초상, 친필 1점, 만해스님의 서문과 경허스님의 약력 등이 소개되어 있다.

본문은 법어 10편, 서(序) 10편, 기 5편, 서간문 5편, 행장 2편, 영찬(影贊) 7편, 시 207수, 4·6언시 8수, 오도가 1편, 오도송 1편, 심우송 20편, 곡(曲) 2편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중 법어에는 문답식의 글이 많다. 법문 ‘중노릇하는 법’은 경허스님의 승속관이 담겨 있어 지금까지도 수행자들의 지침이 되고 있다.

이번에 책을 엮은 신흥식씨는 “경허집은 읽어내기도 어려웠고 아직도 그 뜻을 가늠할 수 없기에 이미 나온 번역본을 징검다리삼아 부득이 따옴표로 추임새를 넣기도 하고 때로는 평서문을 의문문으로 번역했다”고 밝혔다.

[불교신문2993호/2014년3월1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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