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불교의 역사와 사상

현송스님 편저 / 운주사

깨달은 불보살이 사는 정토를 왜 극락이라고 할까. 극락은 어디 있으며, 어떤 곳일까. 정토교의 발생부터 수행론에 이르기까지 정토사상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개론서 <정토불교의 역사와 사상>을 보면 앞서 제기한 질문의 답을 찾아낼 수 있다.

한국정토학회 이사 현송스님이 쓴 이 책은 방대한 정토경전과 논서, 그리고 역대 논사들이 남긴 자료를 토대로 정토사상의 발생과 역사적 전개과정, 정토경전의 성립과 그 내용을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또 정토에 대한 다양한 교상판석뿐만 아니라 정토사상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아미타불의 본원사상에 대한 해석과 정토의 핵심수행문인 염불에 대해서도 집중 조명했다. 중국논사들의 불신론과 불토론, 원효스님의 불신불토설도 고찰했다.

부처님 가르침은 크게 성도교(聖道敎)와 정토교(淨土敎)로 나뉜다. “성도교란 스스로의 능력에 의지해 현세에서 깨달음을 여는 수행문”을 말하고, 정토교는 “아미타불의 본원(本願)을 믿고 이에 의지해 현세에서 부처님의 가호를 입어 장차 그 국토에 태어나서 깨달음을 여는 수행문”을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국토는 극락국토, 정토를 말한다.

방대한 정토경전, 논서 토대로

정토사상 발생부터 수행론까지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개론서’

정토는 “삼독의 번뇌를 여읜 깨달음의 경지에 든 제불보살이 머무는 청정한 세계”를 말한다. 깨달음으로 가는 길 가운데 하나는 난행문(難行門)이고 하나는 이행문(易行門)이다. 쉬운 길과 어려운 길 가운데 하나를 고르라면 사람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 역사적으로 정토수행이 성행했던 이유는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하지만 정작 정토신앙의 기원은 확실치 않다. “인도의 대승불교가 흥기한 시대라는 것이 통설”이며 “인도에서 정토염불사상을 널리 선양한 이들은 용수와 세친”이다. 용수의 저서 <십주비바사론> ‘이행품’을 보면 정토신앙이 대승불교 초기에 출발했음을 보여준다.

세친은 <무량수경우파제사>에서 서방 아미타불의 정토에 왕생하는 방법으로 오념문(五念門)을 주장해 정토사상을 더 고취시켰다. 정토신앙과 사상이 구체적인 형태를 갖추게 된 것은 정토계통의 경전이 성립된 후부터다. 서력기원 전후 정토삼부경이라 불리는 <무량수경> <관무량수경> <아미타경>이 성립되고 여러 논사들이 교학으로 체계화해 정립시키면서 정토신앙은 더 성행했다.

중국에 이르러서는 백련사 염불결사를 주도했던 여산혜원스님을 비롯해 담란, 도작, 선도스님 등이 그 대를 이었고 신라에서는 원광, 원효, 의상스님 등이 정토교학의 계보를 이어왔다. 일본에선 원인, 원공, 친란스님 등이 종파교단을 형성했다.

염불수행은 예로부터 성불에 이르는 가장 쉽고 빠른 길로 여겨져 대승불교 성립 이래 널리 성행했다. 사진은 제25교구본사 봉선사에 개원한 염불원에서 스님들이 염불수행하는 모습. 불교신문 자료사진

이처럼 염불수행이 성행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염불문이 이행문이기 때문”이며, 둘째는 “현재의 시기가 말법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혼탁한 악세에는 중생의 근기가 하열하여 자력을 요하는 수행문으로는 깨달음을 증득하기 어려우므로, 쉽고도 빠른 타력의 수행문이 필연적으로 요구된 것”이다.

스님은 극락세계의 실상과 함께 아미타불의 의미와 신앙의 기원에 대해서도 해설했다. 부처님께서는 “서쪽으로 십만 억 국토를 지나면 한 세계가 있으니 그 세계를 이름하여 극락”이라고 하셨는데 극락, 안양이라 불리는 정토란 즐거움이 있는 곳이란 뜻이다.

“금 은 유리 산호 호박 자거 마노의 일곱 가지 보배를 합성해 국토를 이뤘으며 넓고 광대해 한계와 끝이 없으며 모든 것이 서로 조화를 이루고 사람들도 서로 화합”하는 곳이 극락이다. 측량할 수 없는 먼 곳에 있지만 “십선 등 선업을 닦아 마음이 청정해진 수행자에게는 그곳에 도달하는 데 조금도 시간이 필요 없는 곳”이기도 하다.

현송스님은 정토왕생을 발원하는 이의 마음가짐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스님은 “원생자는 자신이 범부임을 깊이 자각해 정토에 왕생하려는 의지를 굳게 하고, 모든 중생을 구제하려는 보리심을 발할 것”과 “지성심, 심시, 회향발원심의 삼심을 구족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타력이라는 말은 부처님의 원력을 깊이 믿고 이에 의지한다는 뜻이지만, 본원을 설한 까닭도 모르면서 무조건 믿고 의지해선 안된다”고 강조한다. “이치도 모르고 무조건 믿고 의지하기만 하면 자칫 맹신으로 흘러 진리를 바르게 볼 수 없다”며 “믿음에 대한 도리를 이치적으로 분명히 알고 진실하고 흔들림 없는 신심으로써 염불삼매를 증득하거나 그렇지 못하더라도 간절한 믿음과 발원으로 염불하면 왕생이 결정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불교신문2993호/2014년3월1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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