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위 영남대 명예교수

올 겨울 오랫동안 그려오던 인도 여행을 다녀왔다. 불자교수 연합회(회장, 최 용춘 교수)가 주관한 성지순례 길에 인연이 닿아 동참하게 된 것이다. 경향 각지에서 오신 28명의 남녀도반들이 함께하였는데, 힘들었지만 흐뭇하고 감동적인 발걸음이었다. 우리들은 설 연휴를 갖 지난 정월 초나흘 눈썹달을 보면서 출국하여 대보름날 돌아왔다. 일행의 마음 또한 모처럼 만월이 된 벅찬 기분이었을 것이다.

첫날은 인천에서 홍콩을 경유하여 델리공항으로 비행하는 일이 전부였고, 본격적인 투어는 다음날 시작되었는데, 먼저 우리는 <아그라>에서 인도가 자랑하는 문화유산인 타지마할 궁전과 아그라 성을 답사하였다. 무굴제국의 황제 ‘샤 자한’의 죽은 아내에 대한 세기적인 러브스토리가 담겨있는 신비스럽고 아름다운 타지마할, 제국의 권위를 상징하는 엄청난 규모의 아그라 성을 보면서, 나는 ‘진 시황’의 만리장성이나 ‘루이 14세’의 베르사이유 궁전처럼 민생을 살피지 않은 폭군들의 치적이 먼 훗날 후손들을 먹여 살리는 관광자원이 되는 역사의 아이러니(?)를 또 한 번 읽었다.

<바르나시>에서는 사르나트(녹야원)와 박물관 순례, 그리고 갠지스 강 유역의 힌두문화 체험이 있었다. 사르나트 유적지는 석가모니 부처께서 깨달음을 얻으시고 5명의 비구에게 처음으로 법을 설하셨던, 초전법문의 자리이다. 우리들은 경건한 마음으로 탑돌이를 하고 양지바른 곳에 앉아 잠시 정진한 후, 고고 박물관으로 이동하여 귀중한 초기불상과 아쇼카 석주를 비릇하여 마우리아, 쿠샨 및 굽타시대의 조각품을 감상하였다. 사암에 새겨진 석조물들은 그렇게 부드럽고 아름답고 정교할 수가 없는 간다라 미술의 빼어난 걸작들이었다.

갠지스 강은 인도인들이 가장 신성하게 여기는 강인데, 힌두교도들의 삶은 태어나 여기서 세례를 받고 시작하여 임종 후 화장되어 이곳에 뿌려지는 것으로 끝난다고 한다. 우리는 배를 내어 가까이 화장현장을 둘러보기도 하고, 강을 건너 이른바 항하사 모래밭을 거닐기도 하면서, 그리고 저녁마다 행한다는 힌두인 들의 야간의식, 그 흥겹고 화려한 강변축제(?)를 곁눈질 하면서 정말이지 생사와 열반이 함께 있음을 실감하였다. 이튿날 새벽 다시 배를 타고 기도하며 뱃전에 띄운 조그마한 유등과, 날아오르는 새들과 함께 솟은 아름다운 갠지스 강의 일출 또한 좋은 추억이 되리라 믿는다.

부처님 성도성지인 <부다가야>에서는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자리에 세워진 마하보디 사원과 부다가야 대탑을 설레는 마음으로 참배하였다. 일행 중 독지가의 보시로 사원에 안치된 불상에 가사를 갈아입히고 삼배한 후, 한 참이나 탑돌이 하고 입구의 코너에 앉아 정진 기도하였다. 모두가 마음 흐뭇하고 가슴 찡한 모습이었다.

<라즈기르(왕사성)>에서는 부처님께서 정각을 이루기전에 수행하시고 그 후에도 포교활동의 중심으로 삼으신 영취산을 순례하고, 인근에 있는 죽림정사 터, 나알란다의 고대인도 불교대학 터 등을 답사하였다. 그리고 <바이샬리>에서는 부처님의 사리가 보관되었던 스투파, 아쇼카 대왕의 석주, 원숭이 왕이 꿀을 바쳤다는 원숭이 연못(대림정사) 등 그동안 이야기로만 들어오던 여러 곳을 참배하였다.

<쿠시나가르>에서는 부처님의 다비를 행하였던 람바르 스투파를 참배하고, 열반 후 천년 뒤에 스리랑카 신도들이 모셨다는 거대한 와불에 우리는 가사를 새로 입히고 기도하였다. 그리고는 열반하신 자리에 세워진 순백의 사원인 열반당을 더없이 경건한 마음으로 합장하며 돌고난 후, 스투파 뒤편 알맞은 자리에 앉아 부처님의 오가신 뜻을 되새기며 정진하였다. 일행 모두가 내적인 감흥과 희열로 충만한 모습이었다.

<쉬라바스티>에서는 불교 역사상 두 번째 사원이 기원정사 터를 찾아 여러 과일을 정성껏 차려 공양하고 기도하였다. 부처님께서 가장 오래도록 법을 설한 이곳에서 들은 정 천구교수의 금강경에 관한 간결한 법문은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이어서, 잘못에 빠진 앙굴리마라를 교화한 앙굴리마라의 스투파, 부처님이 어머님에게 설법하고 승천하신 천불화현 터, 부처님의 가르침에 믿음으로 보답했던 수닷타의 집터 등을 순례하였다.

드디어 순례의 마지막 코스인 부처님의 탄생지 <룸비니>로 향했다. 도중에 우리는 최 일석교수께 청하여 고대 인도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해박한 강의를 듣고 박수로 화답하기도 하였다. 네팔에 있는 룸비니는 대대적인 성역화사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부처님의 탄생지 입구에 대형 동자상이 모셔져 있고, 탄생지에는 사각의 흰 건물을 세워 안으로 들어가 참배하게 하고 있다. 건물 오른편에 아쇼카 대왕이 기원전 249년에 세운 석주가 있는데, 그 윗부분에 새겨진 빨리어로 된 명문이 이곳이 성지임을 입증한다고 한다. 아쇼카 대왕의 치적과 그 성스러움에 그저 경탄할 따름이다.

룸비니가 네팔에 소재한 까닭으로 그곳에 간 우리들은 덤으로 네팔의 휴양지 <포카라>를 관광하며 안나푸르나 연봉을 배경으로 한 일출을 감상하기도 하고, 수도인 <카트만두>로 가서 네팔 왕국의 궁정가인 더바르 광장, 그 유명한 스와얌부나트 사원, 보오드나트 사원 등을 참배하기도 하였다.

이번 성지순례가 현지의 열악한 사정으로 무던한 기다림과 적지 않은 인내가 필요한 힘겨운 일정이었지만, 그 이상으로 무언가 본질적 보상을 얻은 가뿐한 투어였다. 특히 올해로 일흔 살이 막된 나에겐 지금껏 숨 가쁘게 달려온 지난날을 되돌아보고 앞날을 생각해보는 계기가 된 것 같아 내심 흐뭇하게 여기고 있다. 마음먹은 대로 행하여도 법도에 어긋남이 없는 경지까지는 몰라도, 매사 순리에 따라 걸림 없이 살고 좀 향기로운 나날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두고두고 새기면서 애써 볼 일이다.

저작권자 © 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