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 죽림정사 일광스님, 남인도 명상기행집 발간

일광스님 지음 / 한걸음더

“간화선 화두수행에 대한 근원적인 신(信)을 의심해 본적은 없다. 궁극에는 내가 돌아가야 하는 지점도 그곳임을 사무치게 안다. 철저하게 하지 못해 탓할 뿐이지 그 본래의 자리가 흔들리는 것은 아니다. 다만 공부해 가는 차제에 있어서 수행할 수 있고 배울 수 있는 통로는 항상 열어두리라 생각해 왔을 터이다. 그러던 것이 남인도 위빠사나를 수행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난 것이다.”

동학사승가대학에서 사미니시절을 보내고 동국대를 졸업한 거창 죽림정사 주지 일광스님<사진>이 2년 전 남인도 폰티체리 이다야 아쉬람 성당 수녀원에 들어갔던 이유다. 이곳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아쉬람에서 열흘간 위빠사나 집중코스가 열렸고, 스님은 ‘있는 그대로의 것을 꿰뚫어 봄으로써 어리석음을 타파하고 지혜를 얻는 명상수행’에 몰입했다.

열흘간 위빠사나 체험

“있는그대로 꿰뚫어 보다”

돌아가신 은사 스님 닮은

노수녀님의 따뜻한 미소…

“인도는 인생이다” 깨우쳐

일광스님에 따르면 위빠사나 수행의 첫 단계는 호흡에 대한 관찰(수식관)을 중점적으로 반복해서 관찰하도록 한다. 앉아있는 처음 3일 동안은 주로 코끝이나 인중 부근의 들숨과 날숨이 접촉하는 부위의 감각을 집중하여 관찰할 것을 요구하면서 자연스러운 흐름을 주의깊게 지켜보라고 한다. 숨이 들어올 때 들어오는 숨에 집중하면 그 숨은 길고도 충분하게 들어오고, 숨이 나갈 때 그 숨에 집중하면 그 숨 또한 길고 충분하게 나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일광스님은 말한다. “그 과정은 마치 높은 곳에 앉아 복닥거리는 장터를 내려다보며 그 속의 어떤 한 사람의 움직임을 지켜보는 것과도 같다. 놓치지 말고 끊임없이 주시해야 한다. 자신의 호흡을 지켜보는 일은 또한 어둡고 흐릿해서는 안된다. 햇살이 땅의 구석구석을 밝게 비추는 것처럼 또렷하고 명료하게 깨어있어야 하는 일이다.”

결론은 이렇다. “괴로울 때 괴로움을 주는 대상을 보지 말고, 그 대상 때문에 괴로워하는 마음을 알아차려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가 있는 것이다.”

일광스님이 이다야 아쉬람에서 지낸 열흘은 하루 10여시간에 걸친 치열한 수행만큼 담백하고 소소한 일상들도 눈길을 끈다. 스님이 털어놓기를 돗자리 하나 덜렁 깔려 있는 시멘트 바닥에 앉아 한 손으로는 모기를 쫓으면서 아침식사를 하지만 불평하는 이 하나 없고 마음에 움직임 하나 일지 않는다고.

“수행은 얼마나 거룩한 일인지. 수녀원에서 때맞춰 공양을 지어주고 안팎으로 외호(담마봉사)해주는 분들이 있기에 일체 번잡함과 망상없이 수행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저 이 공간에 열심히 앉아 부지런히 정진만 하면 되니 못할 이유, 마다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고관절의 통증도, 알아듣기 힘든 인도식 영어발음도, 간간히 신경 쓰이는 주변의 소음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정진에만 오롯이 전력한다.”

하루는 수녀원 뜨락을 비질하는 노수녀님과 문득 눈이 마주치자 연인처럼 몰래 눈웃음을 나눴다는 일화. “노수녀님은 일간신문을 들고 나에게 오셨다. 묵언중이란 걸 아시고 손짓으로 기사에 실려있는 미얀마 동자 스님 사진과 나를 번갈아 가리키면서 귓속말로 ‘당신이랑 똑같아요’라며 천진스럽게 웃으신다. 살아계실 적 우리 은사 스님의 티없는 웃음과 똑같다.”

폰티체리 이다야 아쉬람 성당 수녀원에 모인 사람들. 사진제공=일광스님

일광스님은 세 번째 인도여행을 마치고, ‘인도는 인생이다’라는 화두를 조심스럽게 던졌다. “가만히 인도를 보고 있으면 옛 우리 어른들의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을 보는 것 같아 겸손해지고 근검해진다. 그네들의 삶 속에 들어가서 이야기 나누고, 눈을 맞추다보면 그 속에 내 할머니와 어머니의 삶이 보인다. … 엉덩이를 실룩거리며 걷는 동생을 쫓아가는 아이를 지켜보는 소박한 부부의 웃음소리도 들린다. 아루나찰라 곁에 살아서 그런가. 그들의 삶이 수행자의 삶 같다.”

일광스님의 남인도 여행기는 스님 특유의 섬세한 감성과 탁월한 ‘글발’이 맛깔스럽게 버무려져 있다. 중간중간 웃음을 유발하는 유머도 섞여 있어 읽는 재미를 더한다.

홍콩공항을 경유해서 첸나이공항에 내리면서 시작되는 비구니 스님의 좌충우돌 남인도 여행기는 “떠나봄으로써 그 자리를 더 잘 볼 수 있고, 얻어지는 것이 분명히 있다”고 장담하는 스님의 확신을 확인하는 여정이다.

[불교신문2991호/2014년3월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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