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 목판 일제조사 <上> - 보존실태 및 현황

문화재청(청장 나선화)과 불교문화재연구소(소장 정안스님)가 2016년까지 전국 110개 사찰이 소장한 조선시대 목판 2만7000여 점에 관한 일제조사를 시행하는 가운데, 이번 사업을 계기로 경판 본연의 위상을 되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사찰 목판은 고려대장경 이후 사찰로 전수되어 온 조선시대 인쇄문화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지만, 무관심 속에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

목판은 책을 간행하기 위해 그 내용을 새긴 나무 판을 뜻한다. 사찰 소장 목판은 대부분 경전을 새긴 것이어서 경판이라고 한다.

문화재청과 불교문화재연구소는 올해부터 2016년까지 전국 110개 사찰이 소장한 조선시대 목판에 관한 일제조사를 시행한다. 사진은 화재로 훼손된 화순 쌍봉사 경판. 현재 순천 송광사에서 보관 중이다. 사진=불교문화재연구소

현재 1098년에 판각된 것부터 1959년에 제작된 것까지 시대별로 골고루 분포돼 있다. 전국 사찰에는 불경을 새긴 판 뿐 아니라 고승대덕 스님들의 시ㆍ문집, 사대부들의 시문집, 일반 전적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류의 목판을 소장하고 있다.

문화재청의 전신인 문화재관리국은 지난 1987년 발간한 <전국사찰소장목판집>을 통해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인쇄문화의 유산’으로 목판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

문화재관리국은 현존판과 판본에 보이는 서(序)ㆍ발, 시주질(시주한 사람 명단)을 포함한 간기(刊記)에 대한 면밀한 검토로 판각기술의 전승, 판각에 따른 사찰의 경제 문제, 간행에 따른 이해도 등 불교사나 문화사 전반에 걸친 연구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동일한 내용의 책이 있다 할지라도 문헌으로서 가치 뿐 아니라 간행사적으로 유일한 목판이 상당수 있다”며 “사찰에 소장돼 있지 않았으면 명목마저 모를 뻔했던 목판들이 상당수 남아있다”고 밝혔다. 또 일반 사대부들이 사찰의 판각기능을 빌어 제작한 개인문집 목판도 상당량 보유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역사에서 잊혀진 자료 발굴 차원에서도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098년부터 1959년까지 제작

간행사적 유일 목판 상당수

인쇄문화 고스란히 간직

화재 해충에 그대로 노출 심각

‘유교책판’은 세계 유산 후보로

하지만 이같은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목판은 불상이나 탑 등의 성보에 비해 방치되다시피 했다. 화재와 해충, 쥐, 먼지 등에 노출돼 심각한 위험에 처해있기까지 하다. 심지어 일부학자들은 자료수집 차원에서 조사 시기나 방법을 고려하지 않고 무분별하게 인출한 사례도 있다.

이런 가운데 같은 시기에 만들어진 조선시대 목판인 ‘유교책판’ 6만4226장은 최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한 국내후보로 최종 결정되는 등 주목받고 있다. 관심 부족과 관리 소홀로 생명력을 잃어가고 있는 대부분의 사찰 목판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안동에 있는 국학진흥원은 2001년부터 ‘목판 10만장 수집사업’을 꾸준히 전개해 왔으며, 안전한 보존을 위해 2005년 자동통풍시스템과 항온항습시설 등을 갖춘 목판 전용수장시설인 장판각을 준공했다.

이와 관련해 송광사성보박물관장 고경스님은 “사찰 경판도 세계문화유산으로서 가치가 충분하다”며 “이번 불교문화재연구소 조사가 경판의 위상을 다시 세우는 첫 걸음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불교문화재연구소는 이번 사업을 통해 개별 경판의 훼손ㆍ멸실을 대비하고 현재 보존환경 실태를 철저히 파악해 체계적인 관리대책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목판의 인문학적 조사와 판종별 목록화, 수종 분석, 소장처 보존관리 현황조사, 디지털ㆍ적외선 촬영 등이 주요 조사내용이다.

올해는 인천ㆍ경기와 충청, 전라 지역의 1만여 점을 조사할 예정이다. 사찰에서 관리할 수 있도록 기본 지침서도 마련한다.

무엇보다 이번 조사에서 정확한 현황 파악을 통해 기초자료를 확보하고 더 이상의 유실을 막을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문화재관리국은 지난 1979년부터 1984년까지 전국 사찰 목판 현황을 조사한 바 있다.

통도사 성보박물관에 있는 선종영가집 경판. 충해로 마구리 부분이 많이 상했다. 사진=불교문화재연구소

하지만 당시 조사와 현재 수량이 일치하지 않는 부분도 있다. 서울 봉은사의 경우 과거 총 3438판으로 집계됐지만, 서울시 예산을 받아 자체적으로 보수사업을 통해 조사한 결과 총 3502판으로 늘어났다. 불단 안에서 경판이 추가로 더 발견된 것이다. 이 사례뿐 아니라 상당 수 사찰에서 오차가 있을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조사 결과 가치 있는 주요 문화재는 문화재 지정도 진행한다. 문화재관리국도 첫 조사를 마치고 현존 목판 가운데 인출한 판본이 희귀하거나 전래되지 않은 것이 적지 않다며 중요성을 설명했다. 송광사만 해도 스님들의 한문 교육을 위해 제작한 유합(類合)류, 그 시대 방언 그대로 음을 새겨 넣은 천자문 목판 등 귀중한 자료가 남아있다.

소장 정안스님은 “목판은 단순하게 현대 인쇄기술이 보급되기 전의 유물이 아니라 우리 민족문화 계승에 큰 역할을 한 성보로 재인식 돼야 할 것”이라고 피력했다.

[불교신문 2987호/2014년2월2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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