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찬송가 모음집인 <찬미가> 14장에 현행 애국가 수록

찬미가. 사진=문화재제자리찾기.
미국 에모리 대학 도서관서 윤치호 역술 <찬미가> 발견

문화재제자리찾기(대표 혜문스님)는 애국가가 1908년 당시 기독교 교회 찬송가로 작사되고 유통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혜문스님은 미국 에모리 대학을 방문 윤치호 애국가 친필본을 비롯한 윤치호 관련 기록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현행 애국가 전문이 수록된 윤치호 역술 ‘찬미가’ 재판본(1908)을 발견, 관련내용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찬미가는 한영서원 학생들에게 찬송가를 가르치기 위해 1908년 역술해서 펴낸 노래집으로 15곡의 찬송가가 수록돼 있는데, 그중 14장에 현행 애국가가 실려 있다.

찬미가 14장에 'Patriotic hymn(애국적 찬송가)'란 부제로 실린 현행 애국가 가사는 1절의 ‘하나님이 보호하사’(하느님이 보우하사, 이하 괄호 안은 현행 애국가), ‘우리 대한 만세’(우리 나라만세), 2절의 ‘바람이슬 불변함’ 3절의 ‘구름 없이 높고’(높고 구름없이), 4절의 ‘님군을 섬기며’(충성을 다하여)등을 제외하면 후렴구까지 모두 같다.

문화재제자리찾기는 “애국가가 기독교 복음주의와 애국심의 결합으로 탄생된 찬송가의 모습을 지닌다는 것은 다른 곳에서도 확인된다”고 밝혔다.

안창호가 애국가를 작사했다고 주장하고 있는 흥사단 측도 “1907년 안창호가 귀국 후 선천예배당에서 금식기도후 찬미가에서 시상을 얻어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나님이 보호하사’라는 애국가를 지었다”고 말하고 있다.

문화재제자리찾기는 “1955년 국사편찬위원회의 작사가 심의 당시 거론된 최병헌 정동교회 목사. 교회음악가 김인식 등 애국가 작사와 관련된 모든 인물들이 기독교 복음주의에 입각하고 있다는 것은 애국가가 초기에는 찬송가로 창작되고 수용되었음을 뒷받침하는 근거”라고 강조했다.

문화재제자리찾기 대표 혜문스님은 “애국가가 기독교 찬송가로 시작해 년 3.1운동을 계기로 민족의 노래로 승화되는 과정은 작사가 규명에 주목을 요하는 부분”이라며 “특히 윤치호 역술 찬미가(1908) 보급은 애국가 보급 확산에 중요한 기여를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윤치호 역술 찬미가는 에모리대학의 윤치호 관련 스크랩물에 편철돼 있다. 1908년 6월25일 발행된 재판 활자본으로 발행자는 김상만, 발행소는 광학서포이다. 흰색 표지에 가로 13cm * 세로 18 cm 크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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