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불자들은 공부를 하고

수행을 해서

무엇이 정도(正道)이고

무엇이 사이비(似而非)인지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사이비불교가 사라지고

진정한 부처님 법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

잊을 만하면 한번 씩 찾아오는 거사님이 한 분 있다. 그가 하루는 절에 와서 선문답처럼 말을 했다. “부처님이 얼마나 힘들어 하시고 슬퍼하시는지 알고 있으세요?” 도무지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 ‘무슨 말이냐’고 되물었다. 그러자 그는 “못난 제자들 때문입니다”라고 말하며 내려가 버렸다. 그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보니 맞는 말 같다.

멀리서 찾을 것도 없이 내 자신을 돌이켜봐도 한 가지라도 옳게 하는 게 없이 시줏밥만 축내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출가 수행자는 뼈를 깎는 심정으로 오직 공부를 하는 게 본분사인데 누가 시키지도 않은 사찰 전각불사를 작은 욕심으로 시작해서 지금은 절 지킴이로 살고 있으니 후회 막급이다.

세상에서 견줄만한 이 없고 천상천하에 최고의 지존이신 부처님께 귀의해 삭발염의하고도 훼불하는 이가 얼마나 많은가. 먹물 옷을 구걸하는 소품으로 쓰고 있으니 이 얼마나 슬픈 일인가. 곳곳에서 부처님을 불상이나 불화를 모셔놓고 소위 장사를 하고 있으니 참으로 원통한 일이다. 머리만 깎고 승복만 걸친 무늬만 스님인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지 헤아리기 힘들지 않을까 싶다.

전국의 많은 사암에서 부처님을 모셔놓고 힘들게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온갖 감언이설로 관상을 봐 주고, 사주팔자를, 길흉화복을 점쳐주고 살고 있는 데가 수없이 많을 것 같다. 비싸게 굿을 하거나 조상이 어찌어찌 잘못 되었으니 천도재를 돈 많이 들여 지내게 하고 그것도 모자라 비싸게 부적을 팔고 있는 곳도 있을 것이다.

부처님 법에 점치고 사주관상 보고 부적을 붙이는 것은 없다. 심심찮게 신문지상이나 공중파 매체, 인터넷 등에 종교 비리가 쏟아져 나온다. 오죽했으면 ‘종교가 세상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세상이 종교를 걱정한다’는 말이 나왔겠는가 말이다.

안 좋은 일이 터질 때마다 이 회색빛 옷을 입은 내가 얼마나 초라하고 세상보기가 부끄러운지 모른다. 피해는 시골에서 근근이 살아가는 힘없는 스님들이라 여겨진다. 부처님이 이런 현실을 보시고 얼마나 속이 상하실까 생각하니 죄스럽기 한이 없다. 세상 어느 곳에서도 부처님을 생계수단으로 삼아 살아가서는 안된다.

우리 불자들은 공부를 하고 수행을 해서 무엇이 정도(正道)이고 무엇이 사이비(似而非)인지 삿된 것인지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만 사이비불교가 사라져 진정한 부처님 법(正法)만이 살아 남을 수 있다. 불자들이 지혜의 눈이 밝아지면 생계형 스님들은 사라질 것이다. 나도 출가했을 때의 초발심으로 돌아가 적어도 신도들의 두 눈에 시줏밥만 축내는 생계형 출가자로는 보여지지 않게 열심히 잘 살아야겠다.

그렇게 할 때만이 대웅전에 앉아 계시는 부처님이 편해지지 않을까 싶다. 오늘아침에도 현덕사 주변을 포행하면서 올바른 부처님 법을 어떻게 불자들에게 전할까 하는 화두를 들고 고민을 한다. 우리절에 가끔 오는 거사님 말처럼 부처님을 힘들게 하거나 슬퍼하지 않게 하는 방법을 찾아야 하겠다.

참 불자라면 요행이나 우연에 의해 자신의 운명을 점치는 일을 해서는 안된다. 스스로 노력해 성취하기를 발원하고 실천해야 한다. 이러한 진리를 깨우쳐 올해는 사이비 불교에 귀를 세우는 일이 없도록 열심히 정진하길 바란다.

[불교신문2977호/2014년1월1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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