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로 가신 서방님 / 이보라

 
“석찬이 흥덕사에서 전해온 불심을 눈으로 다 읽고나면,

묘덕은 마당으로 나갔다. 돌을 하나하나 직접 날라서 쌓아올린 석탑 속에,

말씀을 고이 접어 넣었다. 그 다음에 묘덕은 마음으로 다시 읽듯 그 앞에 한참 서있었다.

마침내 묘덕이 합장을 하고 방에 들면, 나는 탑을 돌았다.

한 번은 묘덕의 건강을 위하여 나무아미타불, 다음은 어미를 그리는 석찬을 위하여 나무관세음.

마지막은 무엇을 위해야 할지 몰라 빈 생각 빈 마음으로

나무아미타불 나무관세음을 중얼거리며 그냥 돌았다.”

“화공이 법당 벽에 그린 것은 달마와 혜가였다. 입문을 위해서 혜가가 구한 것은 달마의 가르침이었고,

오직 그것 때문에 혜가는 자신의 팔을 잘라 달마께 바쳤다.

나는 문득 다 알아들어버린 두 사람의 선문답에 어쩔 줄 몰라 했다.

파리로 가신 서방님을 내가 글자로 그리겠습니다.

내 작은 이야기를 큰 스님의 말씀처럼 부디 쇠 글자로 만들어서 조판해 주어요.

그리고 오래오래 널리 세간에 퍼뜨려야겠습니다. 나는 그를, 다시 찾고야 말겠습니다.”

 

사람보다 나무가 많은 길을 헤매며 나는 울었다. 어느 그루에 기대서 누군가를 불러보고 싶었지만 대상이 없었다. 나무들은 각각, 얼굴도 모르는 어미이거나 정이 식은 서방 같았다. 그렇게 낯설고 무뚝뚝하게 버티고 서서 내가 혼자 걸어야 할 길을 내고 있었다. 갈래갈래 마음 길을 더듬다가, 나는 묘덕이 계신 암자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사방에 그리고 어깨 위로 툭툭, 낙엽은 죽비처럼 떨어졌다. 깨우침은 더디고 의심이 많구나. 그렇게 말씀하실 때 묘덕의 음성은 만추의 찬바람 같았다.

시리도록 서러워서 잠 못 이루는 밤에 묘덕은 더운 물로 나를 씻기셨다. 암자에 욕간(浴間)은 따로 없었다. 나는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가마솥 옆에서 치마저고리를 벗었다. 알몸이 부끄럽다는 것을 알 만한 나이가 되면서, 나는 묘덕으로부터 돌아앉았다. 본래 빈 몸이다. 벗은 몸이 뭐 그리 부끄러우냐. 그렇게 말씀하시며 묘덕은 따뜻한 손바닥으로 내 등을 쓸어내렸다. 속살이 어찌 이리 곱누, 필경 서방한테 사랑받고 살 팔자인데…. 네 어미는 어째서 핏덩이를 저 흥덕사 마당에 흘리고 갔을까.

더운 물을 충분히 끼얹어도 묘덕의 말씀 탓에, 나는 자꾸 추웠다. 어미 잃은 젖은 새 한 마리가 고목에 내려앉아 몸을 떠는 시간이었다. 그러니까 내 고향은 청주의 오래된 절 마당 어디쯤이고, 바른 말씀을 구하러 부지런히 흥덕사(興德寺)를 다니던 묘덕이 은행을 줍듯 나를 거두었다. 그리고 절 근처의 이 작은 암자에서 열여덟 해가 되도록 키우셨다.

묘덕의 암자에는 남녀 구별 없이 낯선 사람들이 댓바람처럼 드나들었다. 그네들은 가끔 어린 나를 무릎 위에 앉혔고, 옷을 지어 입히거나 떡을 쥐어주었다. 노래나 놀이를 가르쳐주는 이도 있었다. 그러나 내가 누군가의 체취에 익숙해질 때쯤에, 절이 싫어 떠나는 중처럼 그네들은 훌쩍 사라지기 일쑤였다.

말이 많으면 정이 깊어지는구나, 말이 흩어지듯 정도 부질없구나. 나는 그네들이 동전처럼 흘리고 간 말과 정을 주워 모아서 암자 벽에 낙서 같은 속세를 그렸다. 묘덕이 물으셨다. 연필로라도 말과 정을 품고 싶으냐. 나는 눈물이 그렁한 눈을 씻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묘덕이 무릎걸음으로 다가와 내게 글자를 가르쳤다. 점 하나가 얼굴이 되더니 획을 만나 표정이 되고, 주절주절 추억이 되어갔다. 다시 여러 글자를 익히며 써 내려가면 그것들은 서로 어우러져 위로가 되고 꿈도 되었다. 나는 쓸 줄 아는 글자 중에 하나를 골라서 잠든 묘덕의 손바닥 위에 그렸다, 모(母). 손가락을 세우고 눕히면서, 지웠다가 그리고 그렸다가 다시 지웠다. 그렇게 글자를 깨치면서, 묘덕이 내게 어미 같은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시각에 누가 왔는가? 방문이 열리더니 묘덕이 내다보았다. 그 목소리에 힘이 하나 없었다. 원래 가냘픈 체구에 잔병치레가 잦아 찬바람을 겨워했다. 묘덕은 나를 키우면서 예불도 공양도 직접 했다. 내가 서방님을 따라나선 뒤로, 찬바람과 댓바람을 혼자 다스리며 말벗 하나 없이 지낼 것을 왜 생각 못했을까. 한 해만에 더 쇠약해진 것 같은 묘덕을 바라보다가, 나는 고개를 숙였다. 노을빛에 물들며 나는 방문 앞에 가만히 서있었다. 등 뒤에 서있는 암자 마당의 탑 속에서 꾸지람 같은 바람소리가 새어나오는 듯 했다.

묘덕이 다시 말했다. 올해는 날이 벌써 제법 차구나. 어서 안으로 들어오너라.

이렇게 묘덕의 몸이 불편하여 누워계실 때, 흥덕사에서 석찬이 왔다. 품속에서 서간 같은 ‘직지(直指)’ 한 구절을 내려놓으면 묘덕은 몹시 기뻐했다. 흥덕사에서는 큰 스님의 말씀을 한 자 한 자 받아 적어서, 이번엔 쇠 글자로 다 만들어 조판했다. 그간 저 어린 석찬스님도 쇳물을 끓이며 죽을힘을 다했고, 나도 밀랍을 구하러 어지간히 다니며 거들었다. 덕분에 이렇게 열 장도 찍고 백 장도 찍어서 세상에 불심을 전하고 있단다. 아무 재난이 두렵지 않구나. 오오, 직지야말로 백 년이 가고 천 년이 가도 중생을 굶주리지 않게 하실 천상의 공양인 것이야. 그렇게 말하는 묘덕의 눈에 더운 물이 차오르는 듯했다.

아가, 직지를 받고 석찬스님에게 밥을 차려 먹여라.

나는 두상이 잘생긴 동자승을 말끄러미 바라보며 섰다가 공양간으로 들어가 쌀을 씻었다. 석찬이 흥덕사에서 왔으니 따지고 보면 내게 고향사람인 격이었다. 나는 된장을 풀어 국을 끓이고 김치를 씻다가, 푸른 고추에 밀가루 옷을 입혀 들기름에 살짝 구워냈다. 밥상 앞에 앉은 석찬의 입이 헤벌어졌다. 부지런히 수저를 놀리다가 이렇게 말했다.

공양에서 엄마냄새가 납니다. 그리고 다시 쉴 새 없이 오물거리는 석찬의 입을 바라보다가, 나는 아끼는 버섯도 약간 다듬어 올리지 못했음을 후회했다. 내 그릇에 담긴 밥 한 술을 석찬에게로 덜어주며 나는 말했다. 작은 스님, 암자에 가끔 오셔서 그 냄새를 드시도록 하세요.

석찬이 흥덕사에서 전해온 불심을 눈으로 다 읽고나면, 묘덕은 마당으로 나갔다. 돌을 하나하나 직접 날라서 쌓아올린 석탑 속에, 말씀을 고이 접어 넣었다. 그 다음에 묘덕은 마음으로 다시 읽듯 그 앞에 한참 서있었다. 마침내 묘덕이 합장을 하고 방에 들면, 나는 탑을 돌았다. 한 번은 묘덕의 건강을 위하여 나무아미타불, 다음은 어미를 그리는 석찬을 위하여 나무관세음. 마지막은 무엇을 위해야 할지 몰라 빈 생각 빈 마음으로 나무아미타불 나무관세음을 중얼거리며 그냥 돌았다.

탑 속에 담긴 직지는 내가 어깨 너머로 익혔던 글자처럼 어깨 너머로 겨우 새기는 큰스님의 말씀이었다. 그렇지만 내 고향으로부터의 귀한 전갈이기도 했다. 그것은 적막한 내 삶에 뿌리였고 위로였다.

 

나는 묘덕의 방에 들자마자 절부터 올렸다. 불상처럼 앉은 묘덕 뒤에 걸린 서방님의 탱화가 더 반가웠다. 한 해 전에 묘덕은 저 그림을 구하자마자 장안에 소문난 화공 한 사람을 암자로 불렀다. 그가 묘덕의 암자에 처음 들었던 날, 나는 마당에 골풀자리를 펼치고 오전 내내 붉은 고추를 잔뜩 널었다. 꼭지를 따느라 시달려서 매운 열 손가락도 좍 펴서 흙 위에 널었다. 나는 양지바른 곳에 쪼그리고 앉은 채 햇빛을 으며 아린 눈을 자꾸 깜박였다. 여기저기에 골고루 쏟아지며 스미는 가을볕이, 꼭 눈에 보일 것만 같았다.

아침 공양을 마치자마자 묘덕은 출타하셨다. 돌아오시기 전에 나는 고추를 죄 다듬어서 마당에 너는 작업을 끝냈다. 허약해도 바지런해서 뭐든 직접 해야 하는 묘덕의 수고를, 나는 그렇게라도 덜어주고 싶었다. 접었던 몸 구석구석을 파고들며 어루만지는 가을볕 등살에 나는 그만 앉은자리에서 일어섰다. 긴 팔 다리를 쭉 펴며 기지개를 폈다. 그러다가 기척 없이 와서 암자 마당에 서있는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에구머니나. 내가 소리를 지르며 급히 팔다리를 모으자 그가 다가서며 물었다.

놀라셨군요. 저는 불화(佛畵)를 그리는 사람입니다. 묘덕께서 찾으신다 해서 왔습니다만, 어디 계십니까.

예, 큰 스님의 말씀을 구하러 흥덕사 가셨습니다. 오실 때가 다 되었습니다.

그럼, 기다리겠습니다.

그는 짊어지고 있던 바랑을 툇마루에 내려놓고 걸터앉았다. 나는 공양간에 들어 쌀을 씻으며 남자를 훔쳐봤다. 시원한 이마와 짙은 눈썹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끈으로 묶은 긴 머리카락이 푸르도록 검었다. 그는 암자에 들었다가 사라지는 댓바람 같아 보이지 않았다. 단청을 보는 건지 풍경을 보는 건지, 시선을 허공에 둔 채 그가 엷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마당은 온통 붉은 고추밭이었고 가을 해가 암자 꼭대기에 걸려 있었다. 나는 아끼는 버섯을 죄다 내서 씻으며 묘덕을 기다렸다.

이제 묘덕 앞에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아 올리자마자, 나는 말했다. 서방님의 행방이 묘연합니다.

제 서방을 친정에 와서 찾는 어리석은 계집이 어디 있누. 묘덕의 대답은 싸늘했다.

서방님이 사흘 전에 묘덕을 뵙고 오겠다고 나갔는데, 여태 기별이 없어 왔습니다. 암자에서 스님의 가르침을 구하며 수행을 하시나, 그리 생각했습니다. 내 목소리에 울음이 섞였다.

그래, 네 서방이 내게 왔었다. 제행무상(諸行無常)이거늘, 찾아와서 허망한 소리만 잔뜩 늘어놓았다.

나는 묘덕의 말씀 중에 허망을 붙잡고 쓰러질 것 같은 심정을 애써 감추며, 물었다. 서방님이 무슨 이야기를 했습니까.

네 서방은 그림 이야기를 했다. 재난에도 소멸하지 않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하더구나. 허! 묘덕은 혀 차는 소리를 내며 이어 말했다. 제가 그려온 탱화들은 물론 이 암자의 벽화 또한 세월이 가는 대로 빛바래고 사라질 것이 두렵다고 했다.

그날, 출타했던 묘덕이 돌아와 기다리고 있는 화공을 몹시 반겼다. 나는 마련한 공양을 정성껏 올렸고, 묘덕의 방에 함께 앉아 차를 따랐다.

묘덕이 찾았던 연유를 듣고 나더니 그가 대답했다. 스님, 제가 탱화를 하지만 줄곧 종이와 삼베에 그려왔습니다. 나리님들의 비단 한 폭에도 붓질하지 않는 제가, 감히 법당 벽에 불화(佛畵)를 그릴 수 있겠습니까.

묘덕이 말했다. 내 그래서 화공께 청을 넣는 것이오. 비록 작은 암자지만 내 평생의 불심이 깃든 곳입니다. 아무에게나 그것을 그리게 할 수 없는 노릇이지요. 화공께서 그린 불심이 장안의 거친 베 조각에도 살아서 돌아다닙니다. 중생이 곳곳에서 산부처를 만나는 셈이지요. 내가 원하는 이 암자 법당의 불화도 바로 그런 것입니다.

이것 참…. 그는 여전히 묘덕 앞에 예의 바르게 앉아 있었지만 난처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렇다고 작업이 자신 없어 보이지는 않았다. 나는 묘덕의 간절한 얼굴을 살피다가 그만 불쑥 끼어들었다.

제가, 제가 거들겠어요.

묘덕이 나를 바라보며 뭐라 말하려다 그만두셨다. 바람이 풍경을 살짝 두드리며 지나갈 뿐 고요한 시간이 흘렀다. 화공은 찻잔을 다 비우는 동안 대답이 없었다. 마침내 그가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암자의 법당을 보겠습니다.

나는 다기(茶器)를 치우는 것도 잊은 채 바람처럼 일어섰다. 그리고 화공을 법당으로 안내했다. 그곳은 작고 정갈하며 쓸쓸했다.

묘덕이 빙그레 뜻 모를 미소를 지으며 그와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화공이 암자에 머무르는 동안, 나는 약속했던 대로 그를 거들었다. 법당에 들기 전에 그는 반드시 암자 아래 계곡을 다녀왔고, 젖은 머리카락이 다 마르도록 불전에 절을 올렸다. 시리도록 푸른 옷을 입고 말과 표정을 멈춘 그가, 나는 어쩐지 슬퍼보였다.

초내기를 하는 동안 밑그림이 내게 왔다. 얇은 화선지와 가는 붓을 준비해서 화공께 갔다. 함께 화본을 만드는 동안 나는 그의 흰 얼굴과 마주했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서로 닿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얼른 숨을 삼켰다. 다행히 화공은 온통 그림에 집중해 있는 듯했다.

나는 그가 나무를 엮어 벽심을 만드는 동안 법당 밖으로 나왔다. 어두운 마당에 서서 찬 공기를 마셨다. 암자에 화공이 들었던 날 밤에 비어있던 하늘에는 초승달이 걸려있었다. 벽화를 다 완성하고 나면 그의 붉은 입술 끝에 저 달 모양의 미소가 걸릴까. 나는 가슴 위에 두 손을 모은 채 직지가 담긴 낮은 탑을 한 바퀴 두 바퀴, 자꾸 돌며 생각했다. 한 번은 묘덕의 건강을 위하여 나무아미타불, 다음은 어미를 그리는 석찬을 위하여 나무관세음. 이제 벽화를 그리고 있는 그의 안녕을 위하여 자꾸 자꾸 나무아미타불 나무관세음.

네 서방은 그 다음에 정작 품고 있었을 네 소리를 했다. 묘덕은 서방님이 했던 말을 내게 전하며 자꾸 노여워하고 있었다. 서방(西方)의 파리라는 곳으로 떠나는데 네가 걸림돌이 된다고 하더구나. 거길 가야 기름물감으로 그림공부를 제대로 할 수 있다나, 뭐라나, 허! 너를 내게서 데려갈 때 제가 밭았던 소리는 까맣게 잊은 게야.

나는 묘덕의 노여움 앞에 고개를 떨군 채, 그의 고백과 나의 출가(出嫁)를 찬찬히 기억했다. 어스름이 내려앉을 무렵에야 공양간에서 나오는 나를 붙잡고 화공이 말했다. 벽화를 채색하기 전에 낭자가 나를 도와주셔야 할 일이 또 좀 있습니다. 내일 해가 뜨면 법당에 들어주십시오.

이튿날 법당에 들어보니, 화공은 벽면에 백토를 입혀서 황토로 바탕칠까지 끝낸 상태였다. 나는 눈이 휘둥그레지며 생각했다. 그는 베 조각에 탱화를 그리며 다닐 뿐, 벽에 불화를 감히 그릴 수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작업이 진행되어 가는 과정은 벽화를 그리는 것에 숙련된 사람처럼 빠르고 깔끔했다. 이제 구멍을 뚫어둔 화본을 벽에 대고, 그는 분주머니를 두드려 보였다. 벽면에 그림의 윤곽을 표시하는 작업이었다.

어렵지 않지만, 하고 화공이 입을 열었다. 그는 분주머니를 내게 쥐어주고 법당 문을 열고 나가며 겨우 마저 말했다. 내가 두드리면 낭자의 얼굴에 화장(化粧)하는 것만 같으니, 불경스러워 도저히 못하겠습니다. 화공이 사라진 문을 한참 바라보고 서 있다가, 나는 벽을 두드렸다. 간간 달아오른 뺨을 벽에 대고 식히면서 작업했다.

적ㆍ황ㆍ청ㆍ녹색 안료를 마련해서 법당 안으로 다시 들어간 화공은 소식이 없었다. 음식을 담아 문 앞에 두면, 한참 뒤 빈 그릇만 놓여 있는 것을 보고 그의 안부를 확인했다. 산나물과 된장 외에 제대로 된 찬을 상에 올리고 싶어도 끼니때마다 마음뿐이었다. 나는 도라지와 감초를 우려낸 물을 묘덕께 올리고, 소매를 걷어 올렸다. 그리고 잘 말린 붉은 고추를 종일 가루 내어서 김치를 새로 담갔다. 배추 외에 무와 갓, 오이도 다듬어서 버무렸다.

초승달에 살이 오르며 실해지더니 점점 밤하늘에 윤이 났다. 사위가 빛으로 충만한 어느 날 밤, 법당 문이 조용히 열렸다. 화공은 밖으로 나오자마자 묘덕의 방에 들었고 무릎을 꿇었다. 나는 얼른 따듯한 차를 내왔다. 묘덕이 눈을 감으며 화공에게 물었다.

그래, 벽에 무엇을 그리셨습니까?

다 그렸지만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편치 않다는 그 마음을 어디 가져와 보세요.

그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눈자위가 움푹 패어 피로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화공의 눈동자는 불화를 그리기 전보다 빛이 났다. 그는 내 시선을 피하지 않고 저 달처럼 환하게 웃어보였다. 그러더니 묘덕께 대답했다.

스님, 찾아보니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됐습니다. 이제 화공께선 마음이 편안해졌고 나는 마음이 편치 않게 되었습니다. 묘덕은 그렇게 말씀하시더니 나를 쳐다보며 한숨을 쉬었다. 나는 선문답 같은 그들의 대화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싶어 숨을 죽이고 앉아 있었다. 다시 화공이 머리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

스님, 한쪽 팔을 잘라 바치라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묘덕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화공께서 ‘혜가단비도(慧可斷臂圖)’를 몸과 마음으로 다 그리셨으니 모든 것이 부처님의 뜻입니다. 바치고자 하는 그 팔은 불쌍한 저 아이에게 주세요. 지금의 그 뜻을 평생 나누며 잘 살아가세요.

화공이 법당 벽에 그린 것은 달마와 혜가였다. 입문을 위해서 혜가가 구한 것은 달마의 가르침이었고, 오직 그것 때문에 혜가는 자신의 팔을 잘라 달마께 바쳤다. 나는 문득 다 알아들어버린 두 사람의 선문답에 어쩔 줄 몰라 했다.

화공이 일어서며 합장했다. 그리고 묘덕께 다시 말했다. 가시버시하며 살되 자주 가르침을 구하러 스님께 오겠습니다. 그러나 어느새 묘덕은 벽을 향해 돌아앉아 있었다.

화공은 소리 없이 눈물을 쏟고 있는 내 손을 찾아 잡고 묘덕의 방문을 나섰다.

 

나는 화공에게 손목이 붙잡힌 채 낙엽 쌓인 산길을 정신없이 내려왔고, 고목을 몇 그루 돌아 그의 집에 닿았다. 울타리 안에 서있는 굵은 나무에서 톡톡 잘 익은 은행이 떨어지고 있었다. 화공은 아궁이에 불을 넣자마자 나를 아랫목에 앉혔고, 바랑 속에서 안료 통을 끄집어냈다.

호분(胡粉)은 대합을 갈아서 만들고, 연지(?脂)는 잇꽃의 꽃잎으로 만듭니다. 화공은 그렇게 말하며 내 얼굴을 두드리고 입술을 칠했다. 그렇게 단장을 마쳐주고, 그는 내 앞에 반듯하게 앉았다. 그리고 띄엄띄엄 짧지 않은 이야기를 시작했다.

낭자, 오래 전에 말입니다. 평생 절에 벽화를 그리며 살아온 화공이 한 분 계셨습니다. 그분에게 불화는 자신의 모든 것이었습니다. 제일 아끼는 벽화가 그려진 절에서 그분은 손님처럼 살았어요. 향나무 냄새가 그윽한 절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 절에 큰 불이 났어요. 그분은 자신이 그린 벽화 위에 몸을 덮었습니다. 나무가 숯이 되듯 벽화도 새까맣게 타들어갔지요. 지금 그 절은 다 타버려 흔적만 남았고, 벽화의 일부가 사람 형태처럼 남아있습니다. 그런데 낭자,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분에게 아들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분의 평생에 아들이란, 절에 그린 벽화만 못한 존재였어요. 그런데 아들이 아버지께 배운 것이 온통 불화뿐이었습니다.

남의 이야기처럼 담담히 하던 그의 눈에, 마침내 물기가 돌았다. 내 마음 밭도 비를 맞은 양 젖어들었다. 화공의 아들인 그가 이어 말했다. 묘덕의 암자 벽에 그렸던 것은 낭자에 대한 나의 마음이었습니다. 불화가 아니라 미인도였습니다. 어제의 그림은 변색되고 소멸되기 십상입니다. 나는 그런 것에만 인생을 바치고 싶지 않아요. 이제 낭자가 영원히 내 각시가 되어주십시오.

아랫목의 온기 때문인지, 몸이 달아올랐다. 나는 뭐라 화답하지 못한 채, 말을 마치고도 열려있는 그의 입술에 가만히 손가락을 올렸다. 불처럼 뜨거웠다. 그가 내 손을 입술에서 거두어 자신의 가슴 위에 놓았다. 그 안에서 누가 목탁을 두드리는 듯했다. 울림은 내 손끝에서 봉긋한 가슴까지 빠르게 전해져 왔고, 마침내 고막을 울리는 소리가 되는 듯했다. 나는 그만 정신이 아뜩해져 눈을 감아버렸다. 그러자 뜨거운 것이 내 이마와 입술에 거푸 와 닿았다. 그의 입술이었다. 그것은 목덜미에 닿았다가, 어느새 풀린 저고리 앞섶을 헤치고 젖가슴에 왔다.

나는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젖을 물리며 길게 누웠다. 꼭지를 빨릴 때마다 아랫배가 저릿해 왔다. 그 느낌을 아는 것처럼 그의 손이 내 아랫배를 쓸더니 속바지가 벗겨졌다. 이내 혀가 음모를 헤집었다. 나는 화들짝 놀라 화공의 머리를 밀며 허리를 틀었고, 그가 내 손을 찾아 부드럽게 잡았다. 그는 천천히 내 손바닥을 쓸며 다시 입술을 포갰고, 입술보다 뜨거운 것을 내 사타구니 속에 넣었다. 그것은 내내 깊숙이 감추어두었던 그의 욕망이었다.

그가 몸을 움직이는 대로 나는 숨이 가빠지기 시작했지만, 잠시 묘덕의 몸을 떠올렸다. 정기적으로 온몸의 털을 다 밀어버리면서, 내 것마저 그리 하지 않은 묘덕께 감사했다. 머리맡에 한 자루의 양초가 녹아내리며 미미하게나마 어둠을 밝히고 있었지만 아무것도 태우지 않는 화공의 불꽃은 점점 나의 의식을 앗아갔다. 깨기가 두려운 밤이었다. 내가 세 번째 정신을 차렸을 때, 화공은 잠들어 있었다. 나는 손가락을 세워 그의 손바닥에 썼다, 夫.

나는 묘덕의 방에 앉아있는 것도 잊고 아아 서방님, 하고 나지막이 그를 외쳤다. 그러나 싸늘한 묘덕의 목소리가 나를 깨웠다. 어리석은 것! 네가 마음에 걸릴 뿐, 네 서방은 까마득한 곳으로 떠나고 싶어 하지 않느냐. 지금 그는 허망한 바람을 맞은 게야.

예, 실은 보름 전에 흥덕사에서 누가 서방님을 찾는다고 석찬이 왔었습니다.

그랬다, 석찬이 은행나무 아래서 서방님을 불렀다. 대낮이었지만 우리는 알몸이었고 서로의 몸에 변치 않을 사랑을 그리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아이처럼 까르륵거리며 붓에 기름먹을 담뿍 발랐고, 그의 벗은 엉덩이에 자꾸 글자를 썼다. 그리고 말했다. 흥덕사에서는 큰스님 말씀을 쇠 글자로 만들어서 기름먹으로 찍어 낸대요. 향나무 절은 활활 타버릴 수 있어도, 쇠 글자는 천 년이 가도 사라지지 않는댔어요, 묘덕께서 그것은 천상의 공양 같은 것이라 했습니다.

그가 돌아앉아 내 젖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온몸이 기름먹으로 범벅이 되든 말든, 나는 긴 다리를 들어 올려 서방님의 몸에 매달렸다. 석찬의 애타는 목소리를 들은 것이 바로 그때였다. 우리는 다급히 옷을 챙겨 입었고, 문을 열었다. 서방님이 물었다. 작은 스님, 무슨 일입니까?

석찬이 반가운 낯으로 나를 한 번 쳐다보더니, 이내 대답했다. 다름이 아니라 흥덕사에 외인이 들었습니다. 서방(西方)에서 오신 상전이에요. 직지로 큰스님 말씀을 공부하다가 화공님의 불화를 보고 감탄하고 있습니다. 공작새처럼 차려입은 여자 분이 화공님을 꼭 만나보아야겠다면서 간절히 찾아요.

서방님은 옷고름을 고쳐 매며, 일없다고 했지만 석찬이 울먹였다. 화공님, 같이 가주시지 않으면 제가 큰스님께 꾸지람을 들어요. 서방에서 오신 나리님의 가방에 오만 가지 색깔의 기름먹이 잔뜩 들어 있습니다. 화공님이 다녀만 가시면, 그것들을 몽땅 흥덕사에 시주할 꺼라 들었습니다.

나는 발을 동동 구르며 말하는 석찬의 모습이 측은해 보였고, 직지를 찍어내는 흥덕사 창고에 기름먹이 잔뜩 쌓이는 풍경을 머릿속에 그렸다. 해서 나는 미소를 띠고 그를 부추겼다. 서방에서 서방님을 찾는다지 않습니까, 어서 다녀오세요.

서방님은 마지못해 신을 챙겨 신었지만 나도 함께 가길 원했다. 그러나 나는, 흥덕사에서 은행을 줍듯 나를 거두는 묘덕스님을 떠올렸을 뿐 따라나서지 않았다. 같은 청주 땅이라도 내 고향은 큰스님의 가르침처럼 어렵고 멀게만 느껴졌다. 나는 날이 추워지기 전에 묘덕의 암자에 한 번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했다.

 

묘덕은 가만히 나를 바라보고 계시다가 답답한 듯 다시 말했다. 흥덕사에 파리에서 여자가 왔다는 것을 나도 알고 있다. 금속판에 기름물감을 칠해서 직지를 오만가지 색깔로 찍어보겠다고 요망을 떤다는 소리도 석찬에게 들었다. 문제는 네 서방이다. 오늘의 바람이 서쪽에서 불어온다고 해서, 내일의 제 갈 길을 어찌 서방(西方)에서 찾으려 하느냐.

서방님은 날이 저물기 전에 집으로 돌아왔다. 은행나무 아래에 서서 달뜬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내다보니 불화 한 점을 완성하기 직전처럼 그의 눈이 빛났다. 방으로 들어서자마자 그는 말을 쏟았다. 서방에 말입니다. 그림의 땅이 있습니다.

나는 그에게 물을 한 잔 건넸다. 그림의 땅이라니, 무슨 말씀입니까.

그러니까, 천 년 전의 그림도 목숨처럼 귀히 여기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 있다고 해요. 오늘 내가 만난 사람의 고향이, 예서 까마득히 멀기는 하나 바로 그렇다고 합니다. 내가 그린 그림들을 갖고 싶어 해서, 그래라 했습니다. 그림 뒷면에 천을 바르고 잘 꾸며서 마을 사람들에게 보인다 합니다. 그리고 오래오래 잘 보관 할 것이라 하더군요. 그런 마을에서 사는 사람들이 참으로 부럽습니다.

나는 새벽까지 잠들지 못했다. 곁에서 몸을 뒤척이며 한숨을 쉬는 서방님 때문이었다. 날이 밝을 무렵에야 잠이 든 그의 얼굴을 나는 오래오래 들여다보았다.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너는 꿈을 꾸는 건지, 서방님의 감은 눈이 자주 흔들렸다. 이미 그의 그림은 이 방 벽에 걸렸고 내 치마에 물들었으며 몸과 마음에 다 새겨졌다. 그의 머리맡에 놓여있는 낡은 바랑은 기름먹과 돈으로 묵직했다. 까마득한 그림의 땅으로 가는 길의 노자같이 느껴졌다.

여기까지 기억을 되새기다가, 나는 결국 묘덕 앞에서 굵은 눈물을 훔쳤다. 스님을 뵙고 나서 서방님은 집으로 오지 않았습니다. 지금 어디에 계신지 도저히 모르겠습니다.

묘덕은 한층 더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눈물은 거두어라. 네 서방은 지금쯤 붓을 들고 흥덕사 대웅전에 들었을 거다.

아아, 나는 안도의 한숨과 함께 저절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묘덕이 말을 이었다.

네 고향집이고 위대한 영웅을 모신 방이다. 그곳의 영웅이 싸운 적도 없고 이긴 적도 없거늘, 어째서 위대한지 네가 정녕 모르느냐. 네 서방이 벽화를 완성할 때까지 만날 생각은 하지 말거라. 스스로 다 떨치고 나올 때까지 돌아가서 기다려라.

나는 눈물을 닦고 일어서며 말했다. 기다리고만 있지 않겠습니다. 흥덕사로 가겠습니다. 가서 그를 찾아서 다시 오겠습니다. 무엇보다도 제 서방님이니까요. 그리고 나는 묘덕께 진심으로 큰 절을 올렸다.

글자를 가르칠 때처럼 묘덕이 내게 무릎걸음으로 다가오시더니 웅얼거렸다. 아가, 너는 네 서방이 공작 꼬리 깃에 혼이 다 나가도록 무얼 했느냐? 안사람이 되어 무얼 하고 있었더냐.

다시 묘덕 앞에서 눈물을 쏟기 싫었다. 해서 나는 얼른 돌아섰다. 어머니, 어머니. 속으로만 그리 아뢰고 나는 흥덕사로 향했다.

 

흥덕사가 묘덕의 암자에서 그리 머지않은 줄 알았다. 그런데 얼마나 더 산길에서 발품을 팔아야 할지, 나는 가늠할 수 없었다. 진즉 뱃속이 텅 비었고 입술에서 입천장까지 갈증으로 타들어가는 것을 느꼈지만, 서방님을 그리며 걷고 또 걸었다. 허기로 지쳐서 온몸의 감각이 무뎌졌을 때, 나는 목탁 소리를 들었다. 그것은 바람을 일으키며 향내처럼 퍼졌다.

발밑의 풀이 엎드렸고 곁에 선 나무가 가지를 추슬렀다. 소리는 땀으로 젖은 내 등을 가볍게 두드리다가 부르튼 발을 어루만졌고, 동시에 이마를 쓸어주었다. 그것은 아뜩해지는 정신으로부터 내가 영영 동떨어져 나오지 않게 했다. 마치 무수한 점으로 원을 이루듯 소리의 분절(分節)은 연속되면서 둥그렇게 산중(山中)을 채웠다. 나는 시간을 잊은 상태로 목탁소리에 의식을 맡긴 채 쉼 없이 걸음을 옮겼다.

마침내 눈앞에 설원 같은 밭이 펼쳐졌다. 구름과 구름이 몸을 뭉치며 기둥의 형상으로 일어서기 시작했고, 그것들 사이로 목적지였던 흥덕사가 보였다. 희고 차가운 구름 일주문을, 나는 꿈결처럼 통과했다. 그러자 곧 석찬이 보였다. 작은 스님!

석찬은 나를 보자마자 달아날듯 뒷걸음질 쳤다. 내가 다시 외쳤다. 작은 스님, 서방님은 지금 어디 계십니까.

내가 제 앞에 닿자, 석찬이 풀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하는 대답이 이랬다, 저 때문입니다.

나는 불안을 감추지 못하며 급히 되물었다. 작은 스님, 석찬아! 서방님이 지금 어디에 있는 겁니까.

석찬은 몸을 떨었고, 문 열린 대웅전을 가리키며 더듬었다. 큰스님께서 절대 문을 열지 말라고 하셨는데. 화공께서 벽화를 다 그리실 때까지, 아무도 대웅전을 들여다봐서도 아니 된다고 하셨는데.

나는 어린 석찬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제발 자세히, 차분히 말씀을 해 보세요 작은 스님.

달도 없는 밤에 공작(孔雀)을 닮은 부인이 석찬에게 다가왔었다. 화공을 잠시 보게 해주시오.

석찬이 단호히 답했다. 대웅전 벽화를 그리고 있습니다. 완성할 때까지 기다리셔야 합니다.

공작부인이 다시 말했다. 나는 곧 파리로 출발합니다. 이것을 화공이 조금만 드셔도 기운이 배가 될 것이오. 저렇게 혼자 밤낮으로 그리다가는, 에구 쓰러지실라.

석찬은 공작부인의 손바닥 위에 놓인 것의 정체가 궁금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녀가 웃으며 답했다. 무엇에 비할까요, 산삼의 효능을 가졌다고 할까. 옳거니, 작은 스님이 먼저 조금 맛보면 되겠소. 공작부인은 은빛 포장을 풀더니 속에 든 살색 덩이를 꺼냈다. 그리고 그것을 긴 손톱으로 한 조각 잘라 석찬의 입에 넣어주었다. 자, 맛이 어떻소?

석찬의 입 속에 맛보다 향이 먼저 퍼졌다. 순한 짐승이 뛰노는 목장이 펼쳐졌고 꿈에 그리던 엄마가 거기 서있었다. 이것에서 엄마 냄새가 납니다.

공작부인이 다시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이것은 덩이째 작은 스님에게 주겠소. 아무래도 화공껜 새것을 드려야겠지. 자, 문을 열어보시오. 작은 스님은 화공의 안부가 궁금하지도 않소?

석찬은 그 향긋하고 부드러운 살덩이를 받아들었고, 화공을 불렀다. 몇 차례 불러도 그로부터 대답이 없자 걱정이 되었고, 와락 겁이 났다. 공작부인의 말대로 그저 그가 잘 있는지 확인만 하겠노라 마음먹었다. 대웅전 문고리를 살며시 잡고 천천히 당겼다. 보름달 같은 석찬의 얼굴이 어둠 속을 비추었다.

화공은 푸른 옷을 입었고, 입에 붓을 물고 있었다. 그는 곧 달빛에 눈이 부신 듯 상을 찡그리며 일어섰다. 그리고 파랑새처럼 가볍고 빠르게 대웅전을 빠져나갔다. 화공이 떨어뜨린 붓을 주워들고 석찬이 황급히 뒤를 쫓았지만, 그가 사라진 쪽은 칠흑 같은 어둠 속이었다. 대웅전 앞에 서있던 공작부인도 온데간데없었다.

나는 말을 마친 석찬 앞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고향집의 위대한 영웅을 모신 방을 처음 들여다봤다. 안은 캄캄했고 서방님이 그 벽에 그리고자 했던 그림의 시작이 무엇이었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서방님은 불화를 그리면서 왜 정작 부처님은 그리시지 않는지 궁금해요. 내가 그리 물으면 그가 이렇게 답했다.

나는 영원한 그림을 그리고 싶은데 사람의 힘으로 도저히 그릴 수 없는 것 같습니다. 내가 그린 것은 비바람의 시기로 지워졌거나 불장난에 사라진 것도 있어요. 사람이 영원을 그릴 수 없는데, 내가 어떻게 감히 부처를 그릴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다시 서방님을 되새기며 서 있다가, 나는 석찬에게 말했다.

파리로 가신 서방님을 내가 글자로 그리겠습니다. 내 작은 이야기를 큰 스님의 말씀처럼 부디 쇠 글자로 만들어서 조판해 주어요. 그리고 오래오래 널리 세간에 퍼뜨려야겠습니다. 나는 그를, 다시 찾고야 말겠습니다.

흥덕사 욕간에서 나는 치마저고리를 벗었다. 그리고 기름먹으로 범벅이 되어있는 몸을 깨끗이 씻어냈다. 화공의 푸른 옷으로 갈아입고, 나는 대웅전 앞에 다시 섰다. 석찬은 화공이 떨어뜨리고 간 붓을 내 손에 쥐어주었다. 나는 이제 숨 막히는 침묵 속으로 성큼 들어섰다.

등 뒤에서 천천히 문이 닫혔다. 내가 글자본을 다 완성할 때까지, 석찬은 물론 묘덕도 대웅전 문을 열지 않을 것이다. 앞서간 서방님처럼 나도 새가 되어 날아가지 않을까 두렵기는 모두가 마찬가지일 테다. 이제 저 문을 열 수 있는 사람은 지극히 그를 찾고 싶은, 나 자신뿐이다.

 

소설 수상소감 / 이보라

“광야에서 벼락을 맞겠습니다”

파르테논 신전에서 그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스무 세 살이었다. 우리는 고향이 다른 여행자의 모습이었지만, 한눈에 서로를 알아차렸고 사랑에 빠졌다. 그의 입술이 내 것에 닿는 순간, 아테나(Athena)가 아이기스(aegis)를 흔들며 노여워했다. 거기에 붙어, 연신 이단자처럼 흔들리는 메두사(Medusa)의 머리가 더 섬뜩했다. 우리는 돌이 되기 전에 도망쳐야 했다. 그는 미궁에 몸을 던졌고, 나는 그만 정신을 잃었다.

꿈속에서 그는 미궁을 끝없이 헤매고 있었다. 길이 되어줄 수 있는 아리아드네의 실타래를, 그가 내게 선물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미궁은 그에게 출구 없는 미로와 같았다. 나는 실 끝을 잡고 서서 용기 내어 아테나를 불렀다. 그녀는 순결하고 동정심이 많은 신이니까 노여움을 거두고 우리를 도와줄 것 같았다. 그러나 신은 침묵했다.

아무데도 없을지 모른다고, 장님이 내게 다가오며 말했다. “앞이 캄캄 할 텐데 어떻게 알죠?” 내가 물었다. “캄캄해서 어둠을 볼 수 있지, 어둠에 눈이 익으면 바늘구멍을 통해 들어오는 빗살도 볼 수 있고.” 그가 대답했다. 나는 장님의 지팡이에 매달렸고, 있지만 없는 것과 같은 두 눈을 응시하며 애타게 다시 물었다.

“지금 그가 보이나요? 또 아름다운 여신은 어디에 있죠?” 장님은 나를 뿌리쳤고 지팡이로 허공을 가리키며 중얼거렸다. “천둥소리였나, 비가 올 것 같군.” 하늘에 먹구름이 몰려들고 있었다. “예사롭지 않아, 어서 우리가 피해야 할 것은 비보다 벼락일지 몰라.” 장님이 다급하게 말했다. 나는 한 걸음 물러섰고, 장님은 덧붙였다. “찾고 싶은 대상은 잃어버린 셈 쳐. 그래야 영원히 찾을 수 있어.”

나는 고개를 저었다. “광야에서 벼락을 맞겠습니다.” 장님이 외쳤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누구나 하나 뿐인 목숨이고 너는 연약할 뿐 죄 많아 보이지 않는다.” 나는 대답했다. “지혜의 여신이 계신 곳에서 사랑만 구하느라 한없이 어리석었습니다.” 그러자 곧 벼락(불교 신춘문예 당선)이 쳤다. 그것은 이 모든 꿈을 깨우는 것이기도 하고, 여전히 꿈꿀 수 있게 하는 것이기도 하다. 나는 장님과 가깝지도 않고 멀지도 않은 사이로 지내며, 광야에 속절없이 아리아드네의 실타래를 풀고 있다. 그리고 먹구름 아래서 기도한다.

 소설 심사평 / 한승원 소설가

신화 속으로 날아가는 ‘새 혹은 달’

소설은 지상(至上)의 천강에 비치는 달빛처럼 아름답고 진실 된 삶의 모양새를 한 개의 비유의 덩어리로 뭉뚱그려 독자에게 전해주는 화두 같은 문학형태이다. 때문에 읽는 동안 내내 달콤하고 재미있어야 하며, 또 읽고 난 다음에는 감동의 여운이 오래 남아 있어야 한다. 그런 기준으로 음모 작품들을 읽었다.

‘찔레꽃 피고 지고’ ‘터’ ‘길은 갈라져도 다시 모인다’ ‘파리로 가신 서방님’ ‘수유리 장미원’ ‘고양이를 밟다’ ‘앉은뱅이가 일으켜 세운 세상’ 등 7편을 본심에 올리고 깊이 읽었다.

먼저, 문장이 섬세하지 않고 이야기 전개에 무리가 있다는 점에서 ‘길은 갈라져도 다시 모인다’, ‘터’, ‘찔레꽃 피고 지고’ 등 세 편이 제외되었다. 인간들의 배신으로 인해 고양이들에게 정을 주고 살아온 여인과 나의 갈등대립을 그린 ‘고양이를 밟다’는 극단적이고, 지루하고 작위적이다. ‘앉은뱅이가 일으켜 세운 세상’는 밀도 있는 문장을 쓰고 있고, 분열된 의식을 잘 그려내고 있지만, 읽는 동안 내내 재미가 없고, 끝에 가서 감동을 주지 못한다. 문장들을 의식적으로 비비꼬는 버릇도 걸렸다.

‘수유리 장미원’은 시(詩)처럼 살다가 간 아버지가 장미원에서 쓰러져 죽은 이야기를 딸이 추적하는 이야기인데, 문장이 유창하다. 장례를 치르는 동안에 과거사를 끼워 넣는 수법이 매끄럽고 아름답고 슬프다. 이름만 남고 사라져 없어지는 장미원과 아버지의 죽음이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다. ‘파리로 가신 서방님’은 분위기가 신화적이고 환상적이다. 절 마당에 버려진 나를 데려다 키운 묘덕스님과 화공과 공작부인과 어린 석찬스님과 나의 관계가 매우 자연스럽게 얽히어 있다. 벽화를 그리던 화공이 공작부인과 더불어 사라진 것, 내가 그 벽화를 그리려고 나서는 것을 환상적으로 처리하고 있는데 아주 아름답다. 나름대로의 형상화에 성공하고 있는 ‘수유리 장미원’과 ‘파리로 가신 서방님’ 두 편을 놓고 고민하다가 신화적이고 환상적인 상상력을 아름답고 절실하게 표현한 후자를 선택했다. 당선한 작가에게 축하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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