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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없는 길’ 따라 ‘일 없는 일’ 누려볼까⑧ 특화프로그램 사찰을 가다 〈3〉 예산 수덕사
  • 수덕사=김하영 기자
  • 승인 2013.12.11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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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덕사 템플스테이는 참가자 스스로를 각성시켜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동력을 만든다. 사진 위부터 백제의 미소길을 걷고 있는 외국인 참가자들.

백운·심연·감로·완월당

전각 4채나 전용공간 사용

방사 지붕부터 벽지까지

주지 스님이 직접 골라

 

백제의 미소길 따라

경허 깨달음의 길 거쳐…

경허·만공스님 禪 자취

특화프로그램으로 녹여내

 

일 없는 시간 속에서

나를 내려놓고 비우며

수행자로 발심하는 기회

 

99% 준비된 참가자들에게

1%의 진심 담아 감동 연출

서서히 젖어들게 하는 마력

   
108배 염주 만들기는 산사를 내려가서도 스스로 수행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준다.

한국불교문화사업단이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브랜드체계화 사업’은 템플스테이 운영사찰이 성공의 열쇠를 쥐고 있다. 특화된 프로그램을 개발, 발전, 유지하느냐에 성패가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템플스테이의 지형을 바꿀 ‘브랜드체계화 사업’을 위해 일선 사찰은 어떤 준비와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지 살펴본다. 또 일선 사찰의 특화프로그램 사례를 통해 브랜드 사업에 동참하고 싶은 사찰들에게 보탬이 되고자 하는 기획을 준비했다.

한국 근대불교를 대표하는 선지식인 경허스님과 만공스님이 선풍을 진작시킨 선(禪)의 종찰 수덕사. 지금도 옛 스승들의 자취가 면면히 흐르고 있는 수덕사의 템플스테이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지난 6일 찾은 수덕사의 템플스테이는 특별했다.

이는 수덕사 전체 전각 가운데 4채가 오로지 템플스테이만을 위한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에서 드러난다. 템플스테이 사무실인 백운당을 비롯해,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심연당, 그리고 방사인 감로당과 완월당이 그것이다. 특히 감로당과 완월당은 최근 조성돼 템플스테이에 대한 사중의 관심을 알 수 있다.

 

문화 예술의 향기가 물씬

수덕사 템플스테이가 특별한 점은 또 있다. 전용공간과 주변 환경이 허투루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수덕사 일주문 옆에 위치한 감로당은 주변이 그야말로 문화와 예술의 집합체다. 전 방장 원담스님의 선기가 어린 선(禪)미술관, 이응로 화백과 최초의 여류화가 나혜석 씨의 예술혼이 담긴 수덕여관, 여류시인이자 비구니계에 큰 족적을 남긴 일엽스님이 말년에 주석했던 환희대 등 근대 한국 문화와 예술의 현장에 감로당이 있다. 고즈넉한 산사의 정취와 더불어 근대문화·예술의 산실 속에서 템플스테이를 체험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수덕사다.

지난 7월 함께 문을 연 감로당과 완월당은 수덕사의 지극한 관심이 녹아 있다. 주지 지운스님이 불사의 처음부터 끝을 지켜봤고, 마당 돌이 놓일 자리, 방사 벽지까지 손수 골랐다. 감로당의 지붕이 너와집처럼 꾸며진 것도 주지 스님의 아이디어였다. ‘달을 보는 집’인 완월당 방사의 창문은 아름다운 수채화를 걸어놓은 듯하다. 게다가 그림은 계절에 따라 바뀐다. 밤에는 하늘에 걸린 달을 볼 수 있어 자체가 수묵화다.

사중의 특별한 관심과 지원은 겉모습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수덕사는 최근 새로운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을 완성했다. 브랜드체계화 사업에 발맞춰 특화 프로그램 개발을 완료한 것. 선지종찰에 맞게 템플스테이 프로그램도 선(禪)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길 없는 길’이 첫 번째 프로그램이다. 두 갈래 길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면 된다. 하나는 ‘백제의 미소길’이다. 가야사터(남연군 묘)를 시작으로 대문동 쉼터-가야산 수목원-으름재 쉼터-백제의 미소공원-퉁퉁고개 쉼터-소나무 쉼터-보원사지-서산 마애삼존불로 이어지는 길이다. 2시간 산행을 마치면 마애삼존불 앞에서 미소를 지으며 기념촬영을 하는 코스다. 또 다른 길은 ‘경허 깨달음의 길’이다. 수덕사에서 천장사까지 이어지는 길로, 경허·만공스님이 걸었고 지금도 선원 수좌들이 포행하는 코스다. 두 길 모두 수행자들이 걸었던 곳으로 선지식의 발자취를 따르며 수행자로서 발심하는 기회로 삼을 수 있다.

이 프로그램은 길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 길에 위치한 사찰과 연계한 일정이 발군이다. 백제미소의 길 산행을 마치면 보현사에서 점심공양과 회향식을 한다. 깨달음의 길은 천장사에서 경허·만공스님의 자취를 직접 목도하는 기회를 부여한다. 본사와 말사가 유기적으로 템플스테이를 진행함으로써 모두가 ‘윈-윈’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길 없는 길’은 무궁무진한 콘텐츠 확산이 가능하다. 지자체가 조성한 내포문화숲길 등 스토리가 있는 여러 갈래의 길을 계속 만들어갈 수 있다. 88개나 되는 일본 시코쿠 순례길이 수덕사 템플스테이의 미래다. 수덕사는 오는 21일 ‘경허 깨달음의 길’ 템플스테이 팸투어를 진행한다. 브랜드로서 첫 선을 보이는 자리다.

 

모두가 행복하기를 ‘서원’

   
외국인 참가자들이 활짝 웃으며 템플스테이를 즐기고 있다.

또 ‘일 없는 일’ 프로그램도 있다. 경허스님의 선시에서 착안한 브랜드다. ‘일 없는 것이 오히려 일이니 /문고리 걸고 낮잠에 드네. /깊은 산 새가 나 홀로인 줄 알았는지 /그림자에 그림자가 겹치며 창 앞을 지나가네.’ 휴식형 템플스테이다. 사찰안내, 스님과의 차담, 저녁예불 등 특별한 것은 없어 보인다. 그나마 108배 염주 만들기 등이 있지만 자율에 맡긴다. 하지만 다른 점이 있다. 바로 ‘진심’이다. 이는 수덕사 템플스테이 모든 일정에 적용되며, 수덕사만이 가진 특징 중 하나로 꼽힌다. 연수원장 능혜스님은 “템플스테이 참가자들은 이미 99%의 마음 준비를 마친 상태”라며 “우리는 1%를 채우기 위해 노력하면 된다”고 말했다. 그 1%가 진심이다. 템플스테이 참가자를 위해 전체 구성원이 합심한다. 체험 후기를 보면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말이 “경비원 거사님, 공양주 보살님, 기와불사 보살님 등에게 감사하다”는 것이다. 몸에 밴 친절함과 자상함이 인상 깊었던 참가자들이 많았다는 방증이다. 그날 참가자의 성향에 따라 공양 메뉴가 달라지고, 프로그램이 바뀌는 것은 수덕사에 있어 당연한 일이다. 번잡스럽다 하지 않고 함께 공양하며, 예불시간에 법당이 넘치면 자리를 비워주는 스님들의 모습도 진정성의 한 단면이다.

수덕사의 진심에는 최선을 다해 손님을 접대하려는 마음과 함께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서원이 내포돼 있다. 일 없는 일이 단순히 쉬는 것이 아니라 나를 내려놓고 비우는 시간이 되도록 이끌고 있다. 하지만 강제하거나 주입하지 않는다. 건네는 말 한 마디 속에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도록 하고 있다. 사찰을 안내하면서 평면적인 전각 설명이 아니라, 수덕사가 갖고 있는 스토리를 곁들여 들려준다. 산행을 하면서도 수행의 의미를 전달하는 방식이다. 108배 염주 만들기가 자율적으로 운영됨에도 대부분이 동참한다는 사실은 이같은 노력을 증명한다. 그저 쉬려고 왔는데 많은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면서도 일이 아니라는 인식을 갖게 되는 것이다. 스펀지에 물이 스며들듯 알게 모르게 젖게 만드는 마력이 수덕사 템플스테이의 힘이다. 108배를 제대로 체험한 참가자들은 집에서나 직장에서도 스스로 하는 경우가 많아 수행의 생활화까지 이끄는 긍정적 효과가 크다.

지난 10년간 템플스테이를 운영하면서 수덕사도 다른 사찰과 같이 고민이 많았다. 모든 사찰이 비슷한 프로그램을 갖고 있어 1회성 참가에 그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급함도 문제였다. 많은 것을 체험하고 보여주고 싶다는 욕심에 팍팍한 일정을 제공하다보니 실무자도 참가자도 지쳐갔다. 이를 타개하기 위한 지난한 회의가 시작됐고, 결실을 거둔 것이 앞서 두 가지 특화 프로그램이다. 행복의 씨앗을 심어주자는 템플스테이 목표를 정하자 다음 것은 의외로 쉽게 풀렸다. 수덕사의 대표 브랜드인 선(禪)과 수행을 프로그램에 삽입했고, 많은 것을 주기보다 스스로 느끼게 하기 위한 세부계획이 첨부됐다.

 

“잘 할 수 있는 한 가지만”

고민이 깊었기 때문에 한국불교문화사업단이 추진하는 브랜드체계화 사업은 수덕사에게도 중요하다. 능혜스님은 “똑같은 일정을 지양하고 모든 사람이 행복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것이 브랜드 사업의 핵심이므로 반드시 필요하다”며 “다만 브랜드에 매몰돼 기본적인 것들까지 변화의 파도에 휩싸이면 곤란하다. 세상의 행복을 위한다는 목표는 굳건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화 프로그램을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아일선 수덕사 템플스테이 팀장은 “사찰이 잘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한다”며 “사찰의 환경과 스토리, 형편 등을 감안해 정말 잘 할 수 있는 한 가지만 선택해 집중해서 개발하면 참가자들에게도 진심이 전달돼 템플스테이 발전의 기틀을 쌓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불교신문2970호/2013년12월14일자]

수덕사=김하영 기자  hykim@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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