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지도에서 독도가 사라지고 일본 지명 다케시마가 사용되거나, 동해 대신 일본해 표기가 나타날 때면 우리 사회는 분노로 들끓는다. 해당 국가나 지도회사에 대해 오랜 역사를 지닌 지명을 무작위로 바꾸는 문제점을 지적하고 수정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전주에서도 비슷한 일이 재현되고 있다. 승암산이 은근슬쩍 치명자산으로 바뀐 것이다. 전주시 관계자들도 “언제 그렇게 됐는지 모르겠다”고 발을 빼고 있다. 또 ‘치명자 성지’라는 별도의 표기가 맞다는 공무원의 태도로 볼때, 지명과 관련된 제도적 논의도 없이 명칭을 변경한 것에 대해 전주시 관계자들도 문제인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주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지명이 바뀌기 시작한 것은 4~5년이 넘은 것으로 보인다. 도로표지에서 승암산 치명자산으로 대체되더니 전주시가 제작한 지도에서도 승암산이 사라졌다. 이런 문제에 대해 지역불교계는 어떤 대처를 하고 있는지 묻는다. 조직적으로 지명 변경 노력을 하는 가톨릭의 노력에 반해 몇 명의 문제제기 수준에 그치다보니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은 아닌가 반성해야 한다.

지명 변경과 관련해 지난 역사상 불교는 아픈 상처를 갖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경기도 광주 천진암이다. 과거 사찰이었던 천진암은 조선시대 박해를 피해 사찰로 도망 온 ‘천주인’들을 보호했다가 폐사에 이르게 됐다. 생명을 구하고자 했던 스님들은 죽임을 당했고 절은 무너졌다. 천진암 인근에 사찰이 존재했다. 그러자 가톨릭에서는 천주교 성지 성역화를 위해 절에 가는 길을 막고, 지난하게 스님을 괴롭히는 악행을 저질렀다. 결국 사찰을 몰아낸 가톨릭에서는 암자를 의미하는 암(庵)자를 菴(풀이름 암)자로 바꿔 부르며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

이 같은 일이 치명자산에서 재현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특히 지역의 여론과 표를 의식해야 하는 지방자치단체의 특성도 감안할 때 승암산과 산내 사찰, 인근 불교계가 순차적으로 위축될 수 있는 사안이다.

파사현정(破邪顯正)이라 했다. 잘못된 일이 있으면 준엄하게 꾸짖고 바른 길을 세워야 한다. 우리 사찰과 관계가 적은 곳, 지역의 작은 산 하나 지명의 문제로 치부해서는 안된다. 이런 문제들이 복합돼 일어나다보니 전주시가 종교 관광사업을 하겠다며 특정 종교에 편향된 예산을 배정하는 결과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타종교, 지자체를 탓하기 전에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불교계가, 특히 지역 사찰과 단체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먼저 반성해야 한다.

[불교신문2955호/2013년10월2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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