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재앙은 입에서 나오니…

가족 간이라도 예외 아니다”

 

“중생의 불행한 운명은

그 입에서부터 시작된다

입은 몸을 치는 도끼요

몸을 찌르는 날카로운

칼날”이라…

 

군대식 교육을 하며

공포감 주는 아버지와

폭언 일삼는 어머니에

 

3등 안에 드는 수재였던

내성적 성격의 차남은

‘모자란 자식’으로 전락

마음의 병 커지면서

‘패륜’으로 교도소행

자기 또는 배우자의 직계존속을 살해하는 것을 존속살인이라고 한다. 직계존속(直系尊屬)이란 부모.조부모.증조부모 등 직계상의 친족을 말한다. 우리나라의 존속살인 빈도는 부끄럽게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미국 영국 프랑스는 전체 살인 사건에서 존속 살인이 차지하는 비율이 1~2%인데 한국은 5%가 넘는다. 2008년 44건에서, 2011년에는 68건으로 느는 등 증가 추세다.

일찍이 부처님께서는 부모님의 은혜와 관련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버지가 없다면 태어날 수 없고, 어머니가 없다면 성장할 수 없다. 생명은 아버지로부터 받고 육체는 어머니로부터 받는다. 가령 왼쪽 등에 아버지를 업고, 오른쪽 어깨에 어머니를 업고서 수미산을 백번, 천번 돌아서 뼈가 닳아 골수가 드러난다 하더라도 부모님의 깊은 은혜는 다 갚을 수 없다.”<부모은중경>

그렇다. 깊은 바다, 너른 하늘과도 같은 부모님의 은혜를 어찌 계량할 수 있고, 갚을 수 있을까. 그러나 때때로 상황은 은혜를 원수로 둔갑시킨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부모들의 잘못도 있다.

지난 2000년 5월24일 오전7시 과천 중앙공원. 쓰레기를 수거하던 미화원이 쓰레기봉투 안에 사람의 발목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 신고했다. 출동한 경찰은 쓰레기 수거장에 있던 모든 쓰레기봉투들을 열어 하나하나 확인하기 시작했다. 어른 남자의 것으로 추정되는 왼쪽 손, 왼쪽 발, 왼쪽 대퇴부 등과 어른 여자의 것으로 보이는 오른쪽 발과 몸통, 대퇴부 등 이 발견됐다. 경찰은 남자의 손가락 지문을 감식해 그가 해병대 예비역 중령 이 아무개 씨라는 것을 알아냈다. 실종 신고는 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다. 이 씨는 열 살 어린 부인 황 아무개 씨와의 사이에 20대인 두 아들을 두고 있었다. 큰아들은 서울에서 혼자 자취를 하고 있었다.

수사진은 집 주소가 확인되자마자 피해자의 집으로 달려갔다. 집에는 피해자의 둘째 아들이 있었다. 이름 이은석, 나이는 24세였다. 서울에 있는 명문 사립대를 다니다 입대해 제대한 뒤 아직 복학하지 않은 상태였다. 부모님이 3일째 연락 없이 실종된 상황인데도 그는 걱정하거나 불안한 모습이 없었다. 목소리도 차분했다.

경찰은 일단 그를 경찰서로 데려가 조사했다. 이 씨는 부모 실종 후 3일간 신고조차 하지 않은 이유, 부친의 시신이 발견됐다는 소식을 듣고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거나 질문을 하지 않은 이유, 집안에서 발견된 혈흔이 무엇인지에 대해 납득할 만한 설명을 하지 못했다. 경찰은 횡설수설 진술을 번복하는 그에 대해 점점 강한 의심을 품기 시작했다.

조사가 시작된 지 3시간 만에 이 씨는 범행 일체를 자백했다. 망치로 부모를 따로따로 살해한 뒤 화장실로 시신을 옮겨 부엌칼과 쇠톱을 이용해 시신을 절단했다는 것이다. 비닐봉지로 겹겹이 싸고 종량제 쓰레기봉투 여러 개에 담은 뒤 쓰레기 수거장 몇 곳에 나눠서 버렸다고 실토했다. 경찰은 이 씨를 긴급 체포하고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동생이 구속된 뒤 경찰서를 찾아온 이 씨의 형은 “동생을 이해할 것 같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내뱉었다.

도대체 겉보기에는 아주 모범적인 이 가정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 씨의 아버지는 서울대 진학에 실패하고 직장 생활을 하다가 해군사관학교에 진학했다. 부친이 물려준 재산으로 유복하게 자란 어머니는 명문 여자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절제’가 몸에 배어 있던 이 씨와 ‘권력’을 꿈꿨던 황 씨, 두 사람의 부부관계는 원만하지 못했다. 극심한 부모의 불화를 목격하며 자란 두 아들은 어릴 때부터 분노와 불만이 가득했다. 감정을 표출하는 성격인 큰아들은 마음의 병이 크지 않았다. 하지만, 늘 화를 속으로만 삭이던 작은아들의 마음은 갈수록 병들었다. 집에 잘 들어오지 않던 아버지는 가끔씩 귀가할 때마다 둘째아들 이 씨에게 군대식 교육을 하며 공포감을 주었다. 어머니는 폭력적인 언사를 쏟아냈다. 이 씨의 경우 늘 반에서 3등 안에 드는 수재였다. 그런데도 ‘너처럼 모자란 자식은 필요 없다, 나가 죽어라’ ‘싹수가 노란 놈’ 등의 폭언을 들으며 자랐다.

이 대목에서 부처님께서 “모든 재앙은 입에서 나온다”고 강조한 말이 생각난다. 가족 간이라도 예외가 아니다.

“함부로 입을 놀리거나 남을 원망하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 맹렬한 불길이 집을 태워버리듯, 말을 삼가지 않으면 이것이 불길이 되어 내 몸을 태우고 말 것이다. 중생의 불행한 운명은 그 입에서부터 시작된다. 입은 몸을 치는 도끼요, 몸을 찌르는 날카로운 칼날이다.”<법구경>

언어폭력을 비롯한 부모의 학대에 시달린 이 씨는 자존감은 물론 자신감이 늘 부족했다. 친구도 없었다. 제대한 이후에는 집안에 틀어박혀 영화보기와 컴퓨터게임에만 몰두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씨는 부모가 형에게는 동생인 자기 명의로 대출까지 받아 자취방과 세간살이를 마련해주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부모의 이중적인 태도에 배신감과 분노를 느낀 그는 술을 마신 뒤 따로 따로 자는 어머니와 아버지를 차례로 살해하기에 이른다.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그는 무기징역 확정 판결을 받아 현재 교도소에 있다.

[불교신문2939호/2013년8월24일자]

소종섭 시사저널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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