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간화선이다

대혜종고 원저여천무비 역해민족사 펴냄

 

“‘간화선 원형’ 바로 세우는 지침서 됐으면 한다”

<서장>을 강설한 범어사 한주 무비스님은 “간화선법을 정상궤도에 올려놓기 위해서는 (수좌들이) 인생을 다 걸고 참선수행을 통한 깨달음을 가치에 두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불교신문 자료사진

강원시절부터 걸망에 지녔던

‘간화선 제1지침서’로

바른 지혜 얻을 수 있도록 제시

 

“부귀공명을 멀리하고

생명을 걸고 화두 드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삼아야

화두 타파 할 수 있어”

서장(書狀) 강설한 ‘이것이 간화선이다’ 출간한 무비스님

중국 송대(宋代)의 대혜종고 선사가 저술한 <서장>(書狀)은 ‘간화선 제1 지침서’로 불린다. 대해선사가 간화선을 주창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간화선의 원형으로 불리는 <서장>은 그동안 번역본 몇 권이 출간되긴 했지만 강설이 이루어져 출간된 적은 없었다. 조계종 교육원장과 조계종 승가대학장을 역임한 ‘한국불교의 대강백’인 무비스님(범어사 한주)이 서장을 강설한 <이것이 간화선이다>를 출간했다. 이번 저술은 무비스님이 젊은시절 출가해 학인시절부터 관심을 가져온 서장에 대한 강설로 불교신문에 2011년말부터 2013년 초까지 연재된 원고를 보완해 낸 저작이다.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지난 8일 부산 범어사 화엄전을 찾아 무비스님에게 <이것이 간화선이다>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서장>을 강설한 <이것이 간화선이다>를 출간한 계기는.

= 요즘 간화선 바람이 불고 있다. 누구나 간화선을 말하지만 간화선의 원형을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또 아무렇게나 짐작하는대로 아전인수 격으로 간화선을 해석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이왕 간화선이 소개되고 전통조계종에서 수행 제1방법으로 여기고 ‘간화선 제1지침서를 강원(승가대학)에서 교재로 사용하고 있는 만큼 화두의 원형을 밟아 올라가면 대혜스님이 간화선을 주창했음을 알게 된다. <이것이 간화선이다>는 서장(書狀)을 강설한 책으로 제목이 말해 주듯이 간화선의 원형을 밝히기 위해 저술했다.

- 서장은 아주 간명한 편지글을 모은 것으로 아는데.

= 간화선을 세운 분이 대혜스님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스님의 편지를 모아 일종의 ‘교과서’로 묶어 세상에 널리 알려 퍼뜨렸다.

- 그렇다면 서장과 간화선과의 관계는 어떻게 이해하면 되는지.

= 간화선이라고 하면 서장에 근거해야 한다. 서장에 근거하지 않는 간화선은 틀린 것이다. 서장이 간화선의 원전으로 보면 된다. 서장을 좀 더 많이 알리고 원형이 어떻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간화선은 무엇인가. 화두는 무엇인가. 화두를 드는 정신은 어떠해야 하는가가 서장에 잘 설명돼 있다. 특히 얼마나 열정적으로 화두를 들어야 오도(悟道, 깨달음을 얻는 경지)할 수 있는지가 서장에 잘 정의돼 있다.

- 서장은 간화선을 하는 방법에 대해서만 알려주고 있는가.

= 대혜스님은 팔만대장경을 소상하게 알고, 즉 대승불교를 통달하고 선(禪)에 대한 이치를 알고 정리해 준다. 선의 도리와 대승불교의 고준(高峻)한 이치를 알게 해 준다.

- 스님도 <서장>에 대한 애정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들었다.

= 어려서 출가해 많은 스승들을 친견했다. 멀리 동산스님부터 효봉 성철 탄허 관응 운허 전강 춘성 범룡 향곡 구산스님 등 선과 교를 두루 겸비한 당대의 선지식들을 친견하며 한 두 철 공부했다. 강원 시절부터 늘 걸망에는 3권의 책을 넣고 다녔는데 <서장> <선요> <임제록>이었다. 특별이 <서장>을 좋아하는 이유는 간화선 이론을 소상히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선불교의 높은 이치를 대승불교와 연계해 설명하며 불교의 높은 이치와 지견을 최 상승으로 표현한다.

- 일반적으로 선을 이야기할 때는 할(喝)과 방(방)을 격외선을 이르지 않는가.

= 그렇다. 하지만 <서장>에서는 격외의 선인 할이나 주장자를 휘두르는 게 아니고 사람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한다. 선법문 하면 주장자를 굴리거나 높이 들며 (이해하기 어렵게) 표현하는데 <서장>의 입장에서 보면 어줍잖게 보인다. 대혜스님은 설득한다. 이론적으로 이해시켜 궁극의 불교 지견과 지혜에 이르게 해 준다. 그러면서 화두를 권장한다.

- 화두를 어떻게 권장하는지.

= 요즘 사람들은 심심풀이로 화두를 드는 것 같은데 <서장>에서는 ‘생명을 걸고 화두를 들라’고 한다. <서장>에 근거해 간화선 수행을 한다면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우선 가치관을 확립해야 한다. 그 가치관은 화두를 타파해 깨달음을 얻는 것을 삶의 최고의 가치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화두가 잡힌다. 그러니 부귀공명과 희로애락에 연연해서는 안된다.

- 현 시대에 경책을 하는 것 같기도 하다.

= (웃음) 그래서 이 책을 내는 계기이기도 하다. 이 시대를 꼬집기도 하는 것이다. 간화선의 원본인 <서장>을 거울 삼아 간화선을 바로 세우는데 (책을 내는) 뜻이 있다.

- ‘이것이 아니면 안된다’는 절실함의 가치관을 가치관을 세우지 않으면 간화선을 할 수 없다는 말인가.

= 그렇다. 간화선이 호락호락하지 않다. 요즘도 매 철마다 1만명이 넘는 재가불자들과 3000여명에 이르는 스님들이 간화선을 한다고 하지만 깨쳤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대혜스님은 깨달음의 라인(한계선)을 상당히 높게 잡았다. 오매일여( 寤寐一如)라는 말처럼 깨어 있든지 잠들어 있든지 일념으로 화두를 잡기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모르긴해도 한시간 중 10분만이라도 화두가 들리면 잘 들리는 게 아닐까 싶다.

- 이 책을 어떤 분들에게 권하고 싶나.

= 간화선이 유행하고 관심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그 간화선의 원형을 알기 위해서는 <서장>을 보아야 하고 바르게 이해해야 한다. <서장>은 선불교의 교전이다. 간화선 이해의 지침서이다. 간화선을 실참수행하는데 <이것이 간화선이다>를 좌우에다 두고 거울삼아 공부해 한국불교의 전통수행법을 체득하는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

 

■ 원저자 대혜종고 선사는…

간화선을 주창한 선승이다. 대혜종고(1089~1163)선사는 중국 남송말 북송초 사람이다. 16세에 동산 혜운원의 혜제(惠齊) 대사를 의지하여 출가, 17세에 구족계를 받았다. 19세에 만행을 하다가 태평주에 있는 은적암에 이르러 운봉열 선사의 어록을 한 번 보고 다 외워 운봉열 선사의 후신이라 불렸다. 담당무준(湛堂無準) 화상의 회상에서 7년간 지내면서 크게 깨쳤으며, 담당무준 선사의 유언대로 원오극근(圓悟克勤) 선사를 찾아가 대오(大悟)하고 그 법을 이었다. 시대적으로 어지러운 동란기였고, 종교계 또한 갈피를 못 잡고 혼란한 시기에 좌선을 통해 묵묵히 마음을 비춰보는 묵조선의 폐단을 타파하고 간화선을 제창하여 선종을 부흥시켰다.

 

■ 강설한 여천 무비스님은…

부산 범어사에서 여환(如幻)스님을 은사로 출가, 해인사 강원을 졸업했다. 해인사 통도사 등 여러 선원에서 안거했다. 이후 오대산 월정사에서 탄허스님을 모시고 경전을 공부한 무비스님은 탄허스님의 법맥을 이은 대강백으로 통도사.범어사 강주, 조계종 승가대학원장, 대한불교 조계종 교육원장을 역임했다.

현재 범어사 한주로 있으면서 많은 집필 활동과 아울러 전국 각지의 법회와 인터넷 카페 염화실에서 불자들을 만나고 있다.

 

 

■ ‘서장’ 강설 머리말 (요약)

세상을 선향<禪香>으로 가득 채웠으면…

조주(趙州) 선사가 말씀하였습니다.

“만약 노승으로 하여금 대중의 근기를 따라서 사람들을 교화한다면 스스로 삼승(三乘) 십이분교(十二分敎)가 있어서 그들을 교화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노승의 이 자리에는 다만 본분사(本分事)로써 사람들을 교화할 뿐이다. 만약 교화하지 못하더라도 스스로 공부하는 사람들의 근성이 우둔할 뿐 노승의 일에는 관계되지 않는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서장(書狀)>이라는 책은 대혜(大慧) 선사가 조주 선사의 이 말씀을 인용하면서 자신이 평생을 통해서 가고자 했던 본분사(本分事)로서의 교화의 길을 천명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대혜 선사가 가고자 했던 그 본분사의 길은 무엇이겠습니까. 대혜 선사가 스스로 게송을 지어 말씀하였습니다.

“연잎이 둥글둥글한 것이 마치 거울같이 둥글고,

마름 잎 모서리는 뾰쪽뾰쪽한 것이 마치 송곳과 같이 뾰쪽하네.

바람이 버드나무 솜을 흩날리니 솜털 공이 굴러가고,

비가 배꽃에 흩뿌리니 나비가 날더라.”

그리고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였습니다.

“다만, 이 말을 가지고 경전(3승 12분교)위에다 놓아두고, 다시 경문(經文)을 가지고 게송 밑에다 옮겨두면 게송이 경전이고 경전이 게송입니다. 시험 삼아 이처럼 공부를 지어가고 깨닫고 깨닫지 못한 것을 관계하지 마십시오”라고 하였습니다. 경전의 가르침과 본분사가 어찌 다른 것이겠습니까. 경전을 바로 읽은 사람에게는 경전이 곧 본분사이고 본분사가 곧 경전입니다. 또한, 본분사를 바로 안 사람에게는 본분사가 곧 경전이고 경전이 곧 본분사입니다. 즉 보통사람들의 일상사(日常事)가 곧 도인들의 격외사(格外事)이고, 도인들의 격외사가 곧 보통사람들의 일상사입니다.

<서장>의 큰 뜻은 참선 공부에서 삿된 견해를 배척해 버리고 바른 견해를 드러내는 데(斥邪解 現正見)있습니다. 참선 공부의 바른 견해는 곧 “깨달음으로써 법칙을 삼는다(以悟爲則)”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깨달음으로 법칙을 삼는 선적(禪的) 삶이란 무엇으로 표현되는가? 선의 여덟 가지 정신이 갖춰진 삶으로서 일상에 고고하고, 유현하고, 자연스럽고, 탈속하고, 간결 소박하고, 팔풍(八風)에 부동하며, 변화무쌍하고, 정적(靜的)인 삶을 말할 수 있습니다.

깨달아서 무엇을 하자는 것이겠습니까? 이러한 삶의 모습으로 자신을 감동하게 하고 타인을 감동하게 하며 살자는 것입니다. 천만 번을 깨닫고 1700 공안들을 마치 염주를 꿰듯이 꿴다 하더라도 일상생활에서 이러한 정신으로 살지 못하면 그는 선을 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천하 제일선서(第一禪書)인 이 <서장>을 공부하고 선을 체화(體化)하여 선천(禪天) 선지(禪地)에서 선춘(禪春) 선추(禪秋) 선하(禪夏) 선동(禪冬)의 삶이 되어 보다 많은 사람에게 선의 향기를 한껏 풍기어 진정으로 세상을 선향(禪香)으로 가득 채웠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금정산 범어사 화엄전(華嚴殿)에서 여천무비(如天無比) 

 [불교신문2937호/2013년8월1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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