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편각슈 여공스님 시집 ‘앉으라 고요’ 출간

 앉으라 고요

석여공 지음고요숲

민간인 통제선 안에

‘토굴’ 묘적사 세우고 수행

자연과 벗하며

기와편 조각하며 쓴 시

경기도 김포시 월곶면 민통선 안에 위치한 ‘토굴’ 묘적사에서 기와편을 갈아 작품을 만드는 와편각슈 여공스님. 한문으로는 와편각수(瓦片刻手)로 쓰지만 옛 조각가들은 ‘수(手)’를 ‘슈’로 발음해 스스로 ‘와편각슈’로 부르고 있다.

20여년동안 기와편에서 부처님을 조각하고 선사들의 오도송도 조각해 내던 스님이 이번에는 시집 <앉으라 고요>(고요 숲)를 출간했다. 여공스님은 작은 토굴 묘적사를 지어 이곳을 찾는 모든 신도들이 신분증을 제시하는 번거로움을 주기도 한다. 그런 스님이 와편조각과 시작(詩作)으로 몇 년째 정진하고 있다.

스님의 시집 <앉으라 고요>에선 침묵하는 수행자들이 차와 벗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우러나오는 선다일여(禪茶一如)의 맛을 우려낸다.

“봄바람을 다관에 우려먹다 / 창문 열어 세상을 바라보았네 / 하늘 구름 봄빛을 희롱하는데 / 철당간에 꽃 피면 알리 / 새들 날며 마른 혀 적시는 마음” (‘철당간에 피는 꽃’ 전문)

여공스님은 봄바람을 다관에 우려먹기도 하고 철당간에 꽃도 피운다. 날아가는 새들이 혀를 적시는 마음도 이해한다. 모두 다 참선수행을 통한 언어의 유희(遊戱)가 언어를 넘나드는 표현이다. 스님의 차(茶) 사랑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자글자글 게 눈 끓듯 하는 찻물을 식혀 / 다관에 넣고 봄날을 우린다 / 봄날을 우리면 무슨 향이 날까 / 말자자면 봄날은 저절로 잘 우려진 차맛이다.” (‘봄에게서’ 중에서)

차의 재료는 봄이 되기도 하고 그 봄날은 저절로 우려져 차가 되기도 한다. 매화꽃 피는 봄에게서 우전 차의 연한 맛이 나기도 한다. 시공을 넘나드는 서정성 깊은 시적언어를 시인 여공스님은 퍼 올리고 있다.

여공스님은 꽃을 의인화하기도 한다. 특히 여인에 비유한 꽃은 살아 움직이는 활발발(活潑潑)함이 꿈틀거린다. 어쩌면 관능적인 여성처름 느껴질 만큼 동백을 묘사한 스님의 시는 살아 있다.

“누가 첫 입술로 저 동백에 입맞춤 했나 / 누가 저 동백 못잊게 해서 / 들어시라고, 성큼 꽃 속으로 동백길 가자고 / 붉은 몸 열어 만지작거리게 했나 / 저 동백 누가 훔쳐 달아나 버려서 / 혼자라도 그리운가 아득히 / 동백을 보면 언제나 춘정은 몸살지게 살아 / 나 아직 쿵쿵 뛰는 가슴이어서 / 그대의 저 붉은 귀에다 소식 전하면 / 그 길에 누워서 죽어버려도 좋겠네” (‘동백’ 전문)

여공스님은 자신의 공간을 ‘유페된 공간’이라고 했다.

“민통선 안이기도 하고 주변 사람들과도 왕래하지 않아요. 종교가 달라서인지 저를 이단 내지 사탄으로 보는 것 같아요. 하지만 저는 이런 공간을 좋아합니다. 저에게는 기와편에 보이는 깨달음의 문양이 보이고, 그 세계를 표현하고자 하는 언어를 가지고 있으니까요.”

스스로를 밀폐시켜 극한의 경지에서 시를 쓰고 기와편을 갈아 깨달음을 구하는 시인이자 와편각슈 여공스님. 조금은 보편적이지 않는 스님의 세계는 자유와 닿아 있고, 깨달음을 구하고자 하는 처절한 수행자의 몸부림을 닮아 있다.

[불교신문2937호/2013년8월1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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