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상현 교수 영전에 ‘효당 최범술 문집’을 바치며

한국 근대지성사의 거장

학문적 연구토대 마련하던

님의 빈자리 너무 허허로워…

 

다솔사 3재 때 그 유고를

책으로 엮어 올리려합니다

김상현(金相鉉, 1947~2013)은 효당(曉堂) 최범술(崔凡述, 1904~1979)스님의 제자다. 그에게는 스승 효당스님의 체취가 깊게 배어 있다. 한국불교사와 한국불교사상사 탐구에 쏟은 그의 지극한 정성과 열정에서는 스승 효당의 훈향이 물씬 풍겨난다. 

효당은 특별한 시대를 특별한 행보로 헤쳐나간 거인이다. 한민족이 최초로 경험한 전면적이고도 철저한 식민지 시대와 그 종언, 장구한 문화 종교 사상적 전통들을 혐오의 시선으로 쓸어낸 자리에 계몽과 진보의 이름으로 거의 모든 유형의 외래들을 주빈으로 모시면서 전개된 ‘문화 정체성 해체와 재구성의 갈등과 혼란’, 오랜 농경제적 삶이 상공업에 주인 자리를 내주는 문명 방식의 변화, 왕정에서 민주로 전환하는 등 국가운영 방식과 체제의 패러다임적 전환, 시장과 사회 운영체계에 관한 상이한 관점과 실험들이 지구촌을 양분하며 유혈 충돌한 ‘이념의 세기’를 최후로 대리하면서 이념적 사고의 위력과 고통을 민족 상흔으로 새겨낸 이념 과잉의 시대, 그 과정에서 고착 강화된 외세 의존성이 모든 격동과 전환이 압축적으로 펼쳐진 시대가 효당이 대면한 세월이었다.

거의 모든 유형의 관행들이 패러다임 수준에서 변혁되는 와중에, 구질서와 신질서가 불화하면서도 동거하는, 경계선 충돌과 중첩의 어수선함, 해체와 구성의 격렬한 불화와 설레는 희망, 구질서는 서산에 졌으나 신질서는 아직 동트지 않은 이중의 불안? 가히 한국인들이 최초로 경험하는 문명차원의 전환 시대에 효당은 몸담고 있었다. 효당이 질주한 시대는 이러한 비상한 조건들로써 직조되어 있었고, 이 조건들은 민족사나 세계사를 통틀어 유례를 찾기 어려운 특별한 것들이었다.

효당과 다솔사(多率寺)에 수렴되고, 또 그로부터 발산해 간 시절 인연들은 그 세월만큼이나 특별하다. 그 격동의 전환시대에서 민족의 활로를 모색하고 인류의 희망을 예비하고자 했던 전통진영 진보지성들의 절절한 고민과 분투가 응축되어 있다. 불교, 한국학, 문화, 예술, 정치, 교육 등 전방위로 펼쳐진 그의 행보와 성취는 한국 근대지성사 탐구의 중차대한 자료다.

효당의 삶이 지니는 각별한 의미와 가치를 정확하게 포착하고 있었기에, 김상현은 효당의 유업을 계승하여 발전시키는 동시에 스승의 궤적을 수집하여 정리하고 있었다. 효당 연구의 학문적 토대를 마련하는 일을 자신의 한 과업으로 여겼다. 그런 그가 느닷없이 세연을 접었다. 애닯고 애닯다! 사바세계는 귀한 사람을 어찌 그리도 속절없이 앗아가는지. 그가 떠난 빈자리가 너무 허허롭다.

김상현 선생과 나는 처남과 매부 인연이다. 나는 김상현 선생을 매부로서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존경했다. 탁월한 학문적 업적 외에도, 그는 보기 드물게 깊고 야문 인간적 내공을 지녔다. 흉내 내기도 어려운 그의 반듯하고 속 깊은 덕성을 일상에서 보고 겪었기에, 나는 그를 존경했다. 진심으로 애도하는 각계의 우인들과 제자들의 마음속에도 그의 인간적 매력이 새겨져 있었다.

김상현 선생이 준비해 왔던 <효당 문집>을 고인의 영전에 올리는 것이 급하게나마 그를 기리는 일의 하나일 수 있다고 여겼다. 마침 49재 가운데 제3재를 그의 정신적 고향인 다솔사에서 모시기로 했기에, 다솔사 재에서 바칠 수 있도록 그가 남긴 원고를 책(비매품 법공양)으로 엮었다. 후일 보완된 내용으로 정식 출간되어 후학들의 연구에 기여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 그밖에도 김상현 선생이 미처 발표하지 못한 수많은 유고(遺稿)가 있다. 하나씩 정리하여 출간해 내는 것으로써 그를 기리고자 한다.

만당 김상현 선생!

다시 좋은 인연으로 만나, 못다 한 불국장엄(佛國莊嚴)의 의지와 희망을 함께 펼쳐 가십시다. 법화(法花)로 깔린 길, 호탕한 웃음으로 밟고 잘 가십시오.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나무아미타불.

불기(佛紀) 2557년 음력 7월4일(서기 2013년 8월 10일)

 

[불교신문2937호/2013년8월1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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