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 중국 섬서대, 한·중·일 학술발표회서 ‘불교와 실크로드’ 진단

 

 

한·중·일 학술발표, ‘불교문화와 실크로드’ 진단
고구려 馬具 등자는 실크로드타고 유럽에 전파
백제의 ‘숙세’, 해상실크로드로 ‘불교평등’ 유입

입축구법 13人 신라승, 세 갈래 실크로드 경유
삼국간 교류통로 확대와 실크로드 관련성 깊어

신라 금관이 실크로드의 기착점 경주의 존재를 밝혀준데 이어 고구려 마구인 등자는 실크로드를 타고 이태리까지 전파한 유물로 제시됐다. 이어 백제의 ‘숙세’ 사상은 해상실크로드를 타고 중국화 된 불교와 달리 ‘불교의 인간평등’ 사상을 동아시아에 전한 근거란 이론이 공식 제기됐다.

중국 시안에서 열린 고려대-중국 섬서사범대 공동주최 국제학술대회에서 중국과 일본의 학자들이 이를 잇따라 제기하며 실크로드 연구의 새 지평을 열었다.

중국 북경대 고고학과 진릉(陳凌) 교수는 마구(馬具) 연구에서 제일 중시되는 등자(발걸이)가 유럽의 역사를 바꾼 것은 동북아 한반도 북부지역이 발원지라면서 이는 실크로드를 타고 이태리까지 전파됐다면서 이 동력이 유럽의 문물을 바꿀 정도였다고 16일 말했다.

또 일본의 실크로드 연구자인 신카와 토키오(新川登亀男) 교수(와세다대)는 “백제의 ‘숙세(宿世)’가 인도에 육로로 들어간 구법승들이 해로를 타고 들어오는 과정에서 불교의 태생적 인간평등 사상이 동아시아로 전파되는 과정을 밝히는 근거”라고 말했다.

앞서 5세기 신라 금관에 대해 “대월지(大月氏)로 부터의 전이와 변형 및 소통로의 근거”를 제기한 북경대 위정(韦正) 교수(고고학)는 “다른 지역에서 찾기 힘든 서구 특색의 대월지 양식 보요관의 전파경로는 동한말에서 전연 정권 건립 전후 시기에 연대-요서-조선반도 북부를 거쳐 신라에 유입된 것”이라면서 신라금관이 실크로드의 경로 확인의 실체임을 새로 제기했다.

그는 방소천(方笑天) 교수(북경대)와의 공동연구 논문을 15일 발표한 그는 “마케도니아그리스왕국 인근에서 아프간 일대까지 걸쳐있던 대월시 민족이 건설한 쿠산제국(貴霜帝國)의 절정시기에 인도하류 아라비아까지 도달했지만, 조선반도 전파는 비해양 민족인 대월지가 인도 남부 동남아시아를 우회하는 해로 경로는 불가능하며 조선반도 북부를 거쳐 신라에 유입된 것”이라며 “고급 장신구 ‘접섭대(蝶躞帶, 요대) 등에서 조선반도와 대월지와의 밀접한 문화관계 형성의 근거로서 사막과 ·초원실크로드로의 지속적 소통 가능성”을 말했다.

이어 북경대 진릉(陳凌) 교수도 ‘해동지역 4∼8세기 마구(馬具) 변형 비교’를 통해 “농경 유목 수렵이 융합하는 동복3성과 한반도 북부 유역이 가장 먼저 등자가 발달해 초원실크로드를 타고 이태리까지 전파됐음이 발굴조사 결과”라면서 “5-8세기 이 지역에서 말 안장을 서로 교류한 기록이 있으며, 북위와 고구려 백제의 안장과 말굴레 형태에서 약간의 차이도 나온다”고 말하고, 이어 “동아시아 마구(안장과 등자)는 결합된 체계적 변화와 발전은 전쟁이 빈발하던 시기의 형태상 변화가 돈황 285와 290굴 벽화에 나타나고 이는 기술상의 진보를 의미한다”라고 말했다.

‘불교의 동아시아 유전(流傳) 이유’와 ‘백제-일본불교간의 밀접성’을 진단한 신카와 토키오 교수는 “불교에서 인간이 태생적으로 평등하는 근본 사상이 중국불교로 유입되지 않고 해상 실크로드를 타고 동아시아로 건너와 백제의 숙세사상을 만들고 이는 신라와 일본으로 전해졌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인도 발상 종교에서 불교의 동전(東傳)만이 선명하게 증폭된 원인과 관련, “중국(진, 한 등)측 문자자료가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며 “불교가 동쪽으로 한반도에서 일본열도로 전래돼 정착한 근원에는 인도불교의 신봉기반에서 토착・토속적인 성격이 배제된 것이 중요하다”고 분석하고, 토착·토속에 얽매이지 않은 신봉자가 뒷받침하고 있었던 불교 승려들이 불교를 전파한 점이 동아시아 유전의 중요 기반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그는 ‘불교와 유전의 밀접성’에 대해 불교의 기본 특성인 ‘중도의 깨침’과 ‘부족 합의제 모방 승단 형성’ ‘승단 속박 없는 단독 유행 수행 풍조’ ‘동쪽 방위의 중국 측 자료 방대함’ 등을 꼽았다.

이중 백제불교와 인도불교의 직접 관련성에 대해 그는 “백제 말기 7세기 중엽 백제와 일본인들이 ‘숙세(宿世)관’에 밀접하게 맞물린 점이 인도불교와의 연결고리”라고 진단하고, 백제 부여 능산리사지 출토목간 중 ‘숙세결업(宿世結業)’과 일본 세쯔 나니와궁(摂津難波宮) 출토목간에 ‘광호대재(廣乎大哉), 숙세(宿世)’를 근거로 제시했다.

고려대와 중국 섬서대가 공동주관한 국제학술대회 ‘고대 동아시아 불교문화교류와 실크로드’에서 신라의 출발기점을 확인하려는 결과물은 잇따라 발표됐다.

동아시아 중심의 교역로에서 새 패러다임 설정을 제기한 배근흥(拜根興) 교수(중국 싼시사범대)는 ‘구법순례 신라승의 노선’에 대해 경주 기점 실크로드를 탐구를 위해 나말여초의 문한학사 최언위(崔彦撝)가 지은 승려 탑비명문에 기술된 신라 구법승들에 주목할 것을 말했다.

그는 신라 구법승인 행적(行寂)‧무염‧심희(審希)‧절중(折中)‧이엄(利嚴)‧여엄(麗嚴)‧충담(忠湛)‧개청(開清)‧홍준(洪俊)‧원휘(元暉)‧경유(慶猷)‧형미(迥微)‧순지(順之) 등 13인 기록을 통해 새 실크로드 노정 설정도 주문한 그는 한-중 간의 실크로드는 험난한 노정과 구법 순례로 인해 존경과 추대에 비해 노정 연구가 부족하다면서 “한반도‧일본‧중국 3국간에 대륙 연결의 해륙 통로를 기점으로 실크로드의 영역 연구 확대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어 배 교수는 “이들 동아시아 소통로들이 점차 일반적 실크로드의 범주 내에 합쳐지면서, 실크로드의 연구 영역 광범하게 넓혀졌지만, 기존의 독일학자가 설정한 사막·초원·해상 실크로드 세 곳보다 중국의 네 개의 노선(광주 서양도 广州西洋道, 천주 남양도 泉州南洋道, 명주 동양도 明州东洋道, 등주 조일도登州朝日道)이 앞의 신라 최언위의 기록에 더 부합된다”고 밝혔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 열린 ‘실크로드와 한국불교문화’ 국제학술대회는 중국 섬서대에서 15·16일 양일간 19편의 논문이 발표됐다. 1차 고려대에서 열린 학술회의에서 한류 찾기가 중앙아시아 일원 기록 발굴에 집중됐던 반면, 2차 대회에서는 실크로드의 대상 범위 확대와 고고학적 접근의 확대 및 동아시아 교류 현장에의 접목 등이 새로 시도됐다.

섬서대 배 교수는 “구법승려들이 조선반도 서해안에서 출발하여 중국 대륙의 절강 영파 연해에 도달하여 상륙하는 것은 당말 오대 조선반도-중국 대륙간 여행 왕래의 주요 노선과 일치한다”면서 “이 노선은 당시 매우 빈번하고 활발해 해난(海難)이 발생해도, 북로인 조선반도 서해안을 따라 북상하여 요동반도 남쪽에 이르러 서쪽으로 가서, 먀오다오 군도(廟島群島)를 지나, 등주에 도달하여 상륙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당나라 가탐은 신라와 일본으로 가는 해상 노선 모두에 대해 상세히 논술한 기록을 남겼다고 밝혔다.

‘실크로드와 당대의 신라승’을 발표한 주위주(于志勇) 교수(싼시사범대)는 전통적인 서역로를 경유하여 입축구법한 신라승들에 대해 “당 왕조가 건립되기 전 6세기 초에 한반도에 백제의 승려 겸익(謙益)이 바닷길을 따라 중인도(中印度)에 가서 구법했다는 것과 신라 승려 의신(義信)이 천축국으로 가서 구법하여 흰 노새에 불경을 싣고 돌아왔다고 하는 한국측 기록은 동한(東漢) 영평(永平) 연간 축법란ㆍ섭마 등이 동쪽으로 가서 백마에 불경을 싣고 낙양에 다다른 사적을 갖다 붙여 꾸며낸 것”이라고 말했다.

또 “확실한 것은 당대 이전보다도 당대에 확립된 전통적 서역로를 통해 인도에 간 5명의 신라 구법승 기록”이라고 말하고, 문헌기록에 근거해 당대 입축구법한 신라승은 13명(본법사의 정황이 불명확해 정확히 12명)이 경유한 길은 세 갈래 실크로드 길이라 확인했다.

이중 전통적인 서역로를 경유한 승려는 모두 5명(혜초의 귀로 포함)이고, 토번니파라도를 경유한 승려는 모두 4명, 해로(해상의 실크로드)를 경유한 승려는 모두 4명(혜초가 인도로 간 노정 포함)을 제시했다. 이어 세 길 중에 토번니파라도는 당나라 정관 15년 후 새로 열린 입축 도로라고 설명됐다.

이들 신라의 입축 승려 세 갈래 길은 당대에 입축구법한 승려들이 경유 노선과 같다고 말한 배 교수는 도선의<석가방지>, 현장ㆍ변기의 <대당서역기>, 의정의 <대당서역구법고승전> <신당서>권40 <지리지> 등에서 인용한 가탐의 ‘변주에서 사이로 들어가는 길(邊州入四夷道)’, 혜초의 <왕오천축전>과 같은 당대 문헌에서 세 가지 길에 대한 기록이 선명하다고 말했다.

발표에서 그는 12명의 구법 신라승 중 구법행 도중에 죽은 사람이 3명(해로에서 두 명, 토번에서 죽은 오진)이고, 인도에서 죽은 사람이 3명(아리야발마, 혜업, 현각)으로 절반이며, 나머지 중 2명(혜륜과 현유)은 인도나 사자국에 남았고, 단지 4명(현태ㆍ혜초ㆍ무루ㆍ원표)만이 당으로 귀환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해로로 천축에 들어간 두 명의 신라승을 제외하고, 4명의 신라승(현태ㆍ현각ㆍ혜륜ㆍ현유)은 당나라의 승려를 따라 함께 천축으로 들어갔고, 11명 모두가 당에서 출발해 인도로 건너갔고, 4명이 마지막에 당으로 돌아와 홍법과 경 필사를 수행했다면서 “입축구법한 신라승과 당대의 불교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말했다. 특히 의정의 <대당서역구법고승전>에서 신라 구법승 모두를 포함하고 있으며 이들의 불교 전파에 대한 공헌은 한중 불교교류사에서 중요 부분이라 평가했다.

실크로드로서 고창(지금의 투루판)을 직접 조사한 왕신(王欣) 교수(싼시사범대)는 고창불교에 대해 “실크로드 불교문화의 전파 중 동과 서 양측으로의 전파에 중요 거점”이라면서 “불교의 중국 유입에서 중국인 전통 심리상태에 부합한 불교를 형성하고, 중국불교를 동으로 일본 한국, 남으로 베트남을 거쳐 다시 서역으로 전달하는 중국불교의 서역 전파 과정에서 고창이 적극적 작용을 발휘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실크로드 불교의 동쪽 확장과 서쪽 전파 과정에서의 영향은 양방향으로 소통이라면서, 양쪽으로 전파 통로 확보가 고대 동서문화 교류역사상에서의 위치적 독립과 중요성을 확연하게 드러냄을 강조했다.

새로 발견된 신라의 불번(佛幡) 석각(石刻)에서 실크로드를 추적한 박대재 교수(고려대 한국사)는 “중국 서쪽 투루판(吐魯番), 돈황(敦煌) 등 실크로드 지역의 불번(佛幡)문화는 장안(長安)부터 오대산을 지나 등주(登州)-황해-당은포(唐恩浦)를 경유하고 경북 상주를 거쳐 경주(金城)에 전래됐고, 신라 불번이 동류(東流)해 일본 나라(奈良) 정창원(正倉院)에 전해졌다”면서 “신라 왕경이었던 경주의 표암에 남아있는 불번 석각은 동아시아의 불번(佛幡) 문화 이해의 연결 고리로서, 표암 각석은 실크로드를 통해 고대 중국에 들어온 당번(幢幡)이 신라를 거쳐 일본으로 동전(東傳)한 사실을 확인시켜주는 유물”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특히 돈황 막고굴(莫高窟)의 오대산도(五臺山圖)의 인물상에서 당간(幢竿)에 걸린 불번을 향해 예배모습이 경주 표암(瓢巖) 각석의 불번과 유사성이 크다며, 불번의 전래 과정에 대해 “중국 북위시대부터 유행해 당 이전에 이미 고구려 백제를 거쳐 신라에 전해졌을 가능성이 크다”면서 “불번의 전래시기와 과정이 고구려 고분벽화 조사에서 추가 연구물을 낼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북경대 위정(韦正) 교수(오른쪽).

불교사상에서 접근한 석길암 교수(금강대 HK연구)는 7세기 후반 장안과 경주를 대비하면서 불교사상 교류의 연원을 재확인했다.

일단 사상적 교류와 관련, 석 교수는 장안불교의 새로운 사상적 동향에 거의 동시적으로 민감하게 경주불교가 반응했다면서, 당시 경주를 중심으로 신라불교 현장(玄奘)의 신역경론(新譯經論)과 신유식학(新唯識學, 法相唯識, 慈恩宗)이 출현이 역으로 장안에서 활동했던 법장(法藏)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사실에 주목했다.

특히 신라의 원효는 기신론설에 입각하여 현장의 신유식설과 장안에서 유행한 삼계교 사상을 수용해 독자적 화엄사상을 형성했고, 이는 거꾸로 장안의 법장에서 그 영향이 확인된다는 것이다.

석 교수는 7세기 중후반에 집중되는 장안불교-신라불교 간의 공간·시간적 밀접성은 기존의 문물교류 실태연구물로서는 충족되지 못한다면서 오히려 8세기 초중반 당에서 자치적 활동공간을 보여준 ‘신라방’ ‘신라원’의 존재에 주목해야 한다면서 그의 내력 연구가 실크로드로서의 한류전파에 중추 역할을 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고고자료를 통해 신라의 국제성을 재분석한 조윤재 교수(인제대 역사고고학과)는 이슬람과 신라의 본격적 접촉 기록에 대해 ‘9세기 확인’을 강조하며 당시의 직접 교류에서 실크로드 전 경로로의 단독 이동 보다는 ‘구간별 인적 이동’에 무게를 뒀다.

조 교수는 5∼6세기 신라 고분에서 출토되는 일부 서역산(西域産) 기물의 출현에 대해 “인적교류나 이주의 산물로 해석하기 보다는 신라가 중국의 중원과 변방에서 성립된 위진남북조(魏晉南北朝) 수당(隋唐) 등과 외교적 관계에 의한 현상”이라고 해석했다.

그는 특히 실크로드 전노선을 완주한 역사적 인물은 소수에 불과하고 대부분 거점과 거점을 연결하는 중개적 형식을 통한 동·서 문화의 교차가 대종을 이룬다면서 이를 ‘신라의 국제성’의 기반으로 이해했다.

초기 중국불교 담론 형성 과정에서 불교를 파악한 허인섭 교수(덕성여대)는 “조로아스터교의 스펜타 마이뉴(Spenta Mainyu)라는 영(靈)적 존재 개념과 아메샤 스펜타(Amesha Spentas)이란 신령스런 존재들이 중앙아시아 초원 유목지대 사람들의 샤머니즘적 영혼 관념의 신학적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인도 쿠샨제국 시대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와 경량부(經量部)에서 전개된 뿌드가라(pudgala) 논쟁이 실제로는 중앙아에서 보다 더 생생하게 유지된 샤마니즘적 영혼 개념이 불교 논사들의 논의 과정에 자극을 준 결과”라고 해석했다 이어 그는 뿌드가라 논쟁은 궁극적으로 중앙아시아 종교전통의 불교적 변용이라면서 중국 초기 불교도의 ‘신불멸론’이 바로 “경량부적 이론의 중국적 전개”라고 밝혔다.

한중일 삼국에서 공히 발견되는 아미타정토변상도(阿彌陀淨土變相圖)와 중앙아시아 조로아스터교의 극락세계의 유사성에 관해 발표한 조성금 박사(동국대, 미술사학)은 “조로아스터교는 불교가 중앙아시아에 뿌리를 내리기 이전 이미 중앙아 지역에 존재했기 때문에, 불교의 동점(東漸) 과정에 조로아스터교로부터의 영향은 상당하다”고 전제했다.

이어 “아미타정토변상도는 소그드 관장식에 묘사된 극락의 도상과 매우 유사한 요소들을 표현하고 있으며, 이는 도상이 성립되는 과정에서 차용하고 변용한 결과”라고 밝혔다.

특히 조 박사는 “아미타정토변상도상은 인도와 중국의 중간 지점인 중앙아시아지역에서 성립돼 중국에 유입되고 한국과 일본으로 전파되었을 것”이라면서 “당의 수도 장안에 경교사원은 두 곳이나 조로아스터교는 네 곳의 사원이 존재했으며 투르판지역에서 발견된 문서를 통해 조로아스터교는 이미 고창군(高昌郡) 시기에 전래된 상태”라고 밝혔다.

이를 뒷받침하는 또 다른 근거로 그는 중앙아시아 출신의 역경승이 역할과 관련, “번역 과정은 구술하는 사람과 구술을 받아 적는 사람의 2인 1조로 진행되고, 역경자는 순수 중국인이 아닌 서역 출신으로 서역의 언어로 구술하면 받아 적는 사람이 한자(漢字)나 기타 언어로 기록하는 절차로 진행됐었다”고 말했다.

고대 동아시아의 불교 연행(演行)문화에서 실크로드한류를 찾아낸 전경욱 교수(고려대 국어교육과)는 “불교가 실크로드를 통해 전래하며 불교 진언과 구음도 유입됐다”면서 “불교 구음 라리련(囉哩嗹)에서 고려속요의 여음(餘音)도 섞여 아라리 등으로 이어져, <열반경>의 ‘효류로루’가 지닌 ‘불·법·승·대법(對法)’의 화음과 주문”이라고 밝혔다.

실크로드와 오리엔탈리즘에 대해 황순일 교수(동국대)는 “초기 실크로드에 대한 관심과 돈황학에는 동양에 대한 편견이 다수 발견된다”면서 “초기 발굴자 스타인의 역할에 대해 고고학적 대발견을 한 학자이자 탐험가로 칭송하는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스타인의 행위를 돈황서고를 약탈한 파렴치한 사기꾼으로 격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스타인은 장경굴에 최초로 들어간 서구인이었지만 많은 한문 고문헌들을 눈앞에 두고서도 중요한 문헌들을 가려낼 능력이 없었고 통역자도 그랬다. 따라서 혜초의 <왕오천축국전>과 같은 경경굴의 중요한 한문 고문헌들은 한학에 능통했던 폴 펠리오의 손을 거쳐서 프랑스로 옮겨지게 됐었다”고 밝혀 돈황학의 미진함을 지적했다.

한중일 3국 학가들이 실크로드에 대한 새 연구지평을 열기 위해 2년째 한자리에 모여 학술회의 개최를 기념했다. 학술답사에 참여한 주호영 국회의원과 주시안총영사관 전재원 총영사 등이 발표자들과 싼시사범대에서 기념촬영했다.

최광식 교수(고려대,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는 기조발표에서 ‘실크로드와 한국문화’와 관련, “실크로드가 문명사적 교류에 지대한 역할을 하면서 특히 한국의 역사와 문화에서 불교의 유입에 주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최 교수는 “돈황 석굴을 대표하는 막고굴의 벽화에서 제220굴과 제335굴에 그려진 유마경변상도의 조우관을 쓴 인물은 중앙아시아 사마르칸드 압프라시아브궁전 벽화에 그려진 조우관을 쓴 인물과 마찬가지로 고대 한국인이 그 모티프가 되었을 것”이라 말하고, “돈황석굴에 보이는 벽화를 들여다보면 고구려 고분벽화와의 친연성을 엿볼 수 있으며, 벽화에 고구려인이나 신라인들이 그려져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어 향후 고려불화와 서역지역 불화와의 깊은 관련성 연구가 많다”고 말했다.

특히 ‘아미타삼존도’(국보 218호, 삼성미술과 소장)의 아미타불이 보살들을 거느리고 죽음에 임해 서방정토로 온 사람을 맞이하러 오는 내영도 형식으로 그려진 것과 관련, “다른 내영도와는 달리 관음보살이 앞으로 나와 허리를 굽혀 왕생자가 탈 금련화(金蓮花)를 내밀고 있는 모습은 러시아 에르미타주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13세기 서하의 ‘아미타삼존내영도’에 나타난 도상의 기본적인 특징이 같다”고 설명하고 “서하 만기 석굴 벽화의 주요 주제로서 많이 채택된 수월관음도가 고려불화에도 자주 보여 고려불화에도 실크로드의 영향이 크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종합토론에서 위 교수는 ‘보요’란 용어와 관련 “‘흔들리며 걷는다’는 새 개념이 한국에 생소하다”는 질의에 대해 “보요 학자들 사이에 논란이 있으나 신라 금관에 한국 순수 형성과 외국 유입 형상이란 시각이 공존하는 상황이며, 중국식 형태와 다른 신라금관이 대월지 문양을 여러 곳에서 드러내며 에서 토론을 통해 문화적 향상을 위해 넓은 시각으로 보면 해외 문화 유입으로 봐야 한다”고 말하고 금관이외 신라와 대월지간의 밀접성을 밝혀줄 새 소재로 요대(접접대)의 문양도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제학술대회를 기획` 진행하고 있는 고려대 연구교수 정산스님(경국사 주지)은 “지엄스님으로부터 화엄을 전한 의상스님께서 수학한 종남산 지장사를 비롯해 신·구 유식학을 비판하며 유식학의 체계를 다진 신라인 원측스님이 인도로 구법을 떠난 발자취가 가득한 시안에서 실크로드 연구의 새 기원을 세울 한중일 삼국 학자들의 발표가 이어질 것”이라면서 “ 연구진의 학문적 열정을 결집시킬 실크로드 국제학술대회 발표가 한중일 민간교류와 불교문화 연구를 확대하는 자극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학술대회에서 주호영 국회의원(문화체육관광위)은 “실크로드에 대한 보다 많은 새 연구 실적을 기대한다”면서 “유서 깊은 고도 시안이 한중간 문화교류에 중요한 토대를 구축해 준 것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제2회 ‘고대 동아시아 불교문화교류와 실크로드’ 국제학술대회는 중국 서안 싼시사범대학 옌타(雁塔) 캠퍼스 치샤웬(启夏苑) 호텔 2층 학술보고청에서 고려대 한국사연구소와 섬서사범대 서북민족연구중심이 공동주관해 문화체육관광부와 주안한국총영사관 후원으로 15·16일 양일간 열렸다.

지난해 1회 국제학술대회는 ‘실크로드와 한국불교문화’를 주제로 고려대 국제원격회의실에서 10월 12·13일 양일간 열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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