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사 여름수련회 현장
세계문화유산인 팔만대장경을 보유하고 있는 해인총림 해인사는 으레 법보종찰(法寶宗刹)로 불린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간직한 최고의 가람은, 치열한 수행의 상징과 같은 곳이기도 하다. 성철 자운 혜암 지관스님 등 선교율(禪敎律) 각 방면에서 종사를 배출하며 한국불교의 정신을 계승했다.
특히 조계종 전 종정 성철스님의 용맹정진은 세간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올해로 30회를 맞은 해인사 여름수련회에선 이러한 선지식들의 서슬파란 구도행을 체험할 수 있다. 마음 편히 절에 와서 쉬었다 가는 ‘휴식형’ 템플스테이가 유행이라지만, 여전히 치열한 수행이라는 기본을 지킨다. 깨달음이 그립고 납자를 닮고 싶은 사람들이 한여름 경내에 모여 말 그대로 총림(叢林)을 이뤘다.
해인사는 매년 여름 초중고생과 성인을 대상으로 5~6차례의 수련회를 진행한다. 3차 일반부 수련회 기간인 지난 6일 사찰을 찾았다. 남부지방의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날이었고, 섭씨 36도의 열기에 가슴이 턱 막힌다. 뜨거운 오후나절 대중방이자 설법공간인 보경당에서 40여명의 수련생들이 1080배에 열중하고 있다. 앉아만 있어도 고달픈 더위지만, 그들은 더위를 온몸으로 짊어지며 고행을 자청했다.
1080배와 함께 3보1배 정진 역시 육체의 극한을 느끼게 해준다. 일주문에서 팔만대장경을 봉안한 장경판전까지, 허리와 무릎으로 걷는 길은 느리고 고되다. 다만, 비 오듯 쏟아지는 땀과 함께 세상살이의 고충과 애환도 씻겨 내려간다. 새벽공기를 들이마시며 성철스님 사리탑 주변에 빙 둘러앉아 몰입하는 참선은 청량제다.
해인사 여름수련회는 20대부터 60대까지 연령대가 다양하다는 것이 특징이다. 호되고 빡빡한 일정에 짐짓 기피할 것 같지만, 외려 재참가가 유난히 많은 수련회이기도 하다. 젊은 인터넷 쇼핑몰 운영자인 추연지 씨는 중학생 때 와보고 이번이 두 번째다. 즐거웠던 추억은 아니다. “그때는 집결장소에 1분만 지각해도 이유를 막론하고 무조건 108배를 해야 했다”며 혀를 내둘렀다. 그럼에도 ‘재입소’를 마음먹은 까닭은 수련회의 기억을 능가할 만큼 밥벌이의 어려움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그녀는 “살아갈 힘을 얻기 위해 다시 왔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성철스님이 주석하던 백련암을 참배하면서 소중한 지혜를 얻어간다. “평소 ‘남의 탓’을 입에 달고 사는 성격이었는데, ‘모든 죽음은 타살이 아닌 자살’이라는 설법을 듣고 나를 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설명이다. 타인에 대한 배려는 곧 나의 행복으로 돌아온다는 교훈을 깨친 것이다.
중고생 학원을 운영하는 이소영(58) 씨는 지도법사로 참여한 학인 스님들의 진정성에 감동했다. 프로그램 중엔 늘 매섭고 엄격했지만 누구보다 인간적이었다. ‘내가 곧 부처’라는 사실을 일깨우기 위해 수련생들에게 삼배의 예를 올리는 것을 보고 눈물이 맺혔다. “몸도 힘들고 단체생활 적응도 힘들었지만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는 여유를 얻었다”는 전언이다.
부산 금정중학교에서 교편을 잡다 퇴직한 이종군(68) 씨는 해인사에서의 청년시절을 반추할 수 있었다. 1971년 12월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 부산지부 수련회에 참가한 이후 무려 42년 만이다. “해인사의 수행가풍에서 인생의 황혼을 바람직하게 보내는 방법을 알 수 있었다”는 소감이다. 해인사 홍보국장 종현스님은 “청정하고 투철한 스님들의 일상을 그대로 따라하며 자기 자신을 이기는 방법을 가르치자는 것이 해인사 수련회의 원칙”이라며 “늘 깨어있는 삶을 바라는 사람들이 많아 여전히 호응이 좋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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