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년째 불상 제작… 금오불상 이성건 대표

25년째 불상제작에 매진하고 있는 이성건 대표

제작과정 자체가 수행

부처님 법력 찬탄하며

스스로 부처님 삶 염원

 

옻독 올라 두 팔다리는

상처투성이지만

고아원 출신 아이

학비지원 대학도 보내

 

1000년 전통 건칠불 조성

독보적 佛母 ‘서원’

금강산 신계사 비롯

200여 사찰에 불상 봉안

부처님의 외모와 종교적 권위를 형상화한 불상(佛像)은 사찰을 이루는 기본 요소다. 불자들은 법당 안의 불상 앞에서 부처님의 법력을 찬탄하고 스스로 부처가 되는 삶을 꿈꾼다. 불상을 만드는 불모(佛母)들에겐 제작과정 자체가 수행이다. 금오불상 대표 이성건(법명 원광)씨. 부친이 일으킨 가업을 이어받아 25년째 불상 만드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

 

이성건 대표(왼쪽)가 만든 불상을 봉안한 사찰은 200여 곳에 이른다. 금강산 신계사 축성전<위 사진>을 비롯한 명부전, 나한전의 불보살상도 그의 작품이다.

쇳물을 붓고 금을 입히고 부처님의 얼굴에 눈과 입을 그리는 그의 손은, 어릴 적 어머니 손을 붙잡고 매월 사찰을 찾던 그 손이다. 옻독이 올라 두 팔과 다리는 언제나 상처투성이다. 값싼 중국산이 넘쳐나는 세태와, 힘들여 완성한 성물(聖物)을 그저 시장판 물건 따위로 취급하는 사람을 만나면 가끔 맥이 빠진다. 그러나 “내가 만든 불상이 누군가에겐 절실한 희망이 된다”는 생각에 새삼 마음을 다잡는다.

지난 17일 경기도 부천에 있는 작업실에서 이 씨를 만났다. 개금하기 전 칠하는 옻과 기타 약품 냄새가 코끝을 찌른다. 옻은 불상에 금을 입히기 전 개금할 부분에 칠해둔다. 옻을 칠한 불상은 바닷물에 넣어도 상하지 않는다는 내구력을 지녔다. 작업실은 그가 새벽 5시에 출근해 하루를 꼬박 보내는 곳이다. 그의 불상은 거의 대부분 사찰 주지 스님들의 개인의뢰로 만들어진다. 높이 3자 이상의 대불인 경우 제작기간은 6개월에서 1년 사이다.

불상제작과정은 일반적인 금속공예와 얼핏 비슷하다. 물론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예경의 대상을 만드는 일이므로, 눈 코 입의 위치, 가사의 주름 하나하나에 신경이 쓰인다. 아무리 산업화됐다지만 불상제작은 60% 이상이 수작업이다. 쇳물을 금형(金型)에 넣고 응고시키는 주물, 금을 입히는 개금, 부처님의 눈과 입을 그려 넣는 개안이 주요 공정이다. 얼핏 간단해보이지만 수인과 가사의 결을 도드라지게 하는 디테일은 사람의 세밀한 손길을 거쳐야 한다.

그는 아버지의 가업을 물려받았다. 부친 이임호 옹은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사용된 성화봉을 만들었다. 주물업계에서 손꼽히던 인물로 사찰에는 향로와 촛대를 만들어 공양했다. 아들의 기억 속 아버지는 “참 좋은 일, 훌륭한 일을 해서 주변으로부터 존경을 받는 어른”이었다. 아버지를 향한 존경심으로 이성건 씨는 10대 후반에 불교공예에 입문했다. 하지만 불행히도 작업 도중 왼손 힘줄을 다치는 사고를 당했다. 수술까지 치른 아들에게 아버지는 “너라도 넥타이 메고 볼펜 잡는 일을 하라”며 만류했다.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고 복지사로 5년간 일했다. 가업과 멀어진 아들을 아버지가 다시 불러 앉혔다. 장남의 의무란 게 녹록치 않았고, 다시 돌아온 이 씨는 25년이 지난 지금껏 그 자리에 있다.

회사명인 ‘금오(金烏)’는 쌍계총림 쌍계사 방장 고산스님이 지어준 이름이다. 불상을 본격적으로 만들어보라는 권유이기도 했다. 1988년은 한국에서 올림픽이 열린 해이자, 한중수교 직전 중국산 제품의 대대적인 공습이 시작된 해다. 향로와 촛대는 가격경쟁력을 완전히 상실했다. 요즘에야 중국산까지 비싸져 베트남산이 인기를 끌지만, 불상은 그때만 해도 국산이 대세였다.

무엇보다 불상은 만중생의 스승인 부처님 그 자체를 상징한다. 불교의 시원(始原)인 부처님을 내 손으로 모실 수 있다는 매력이 강했다. 이 씨는 지금까지 200여 곳의 사찰에 불상을 공급했다. 남해 보리암, 화성 신흥사, 대구 불광사, 불교TV 무상사, 중국의 불교회관 등등. 남북화해를 염원하며 지난 2005년 조계종이 금강산에 세운 신계사에도 그의 공력이 서려 있다. 축성전과 명부전, 나한전의 불상이 그의 작품이다.

이젠 국산 불상의 차별성이 힘을 잃은 상태다. 그리고 중국산이 부실과 날림의 대명사로 낙인찍힌 까닭은 사람의 능력이 아니라 욕심의 문제다. “중국에서 제대로 만든 불상은 기가 막힙니다. 기술적인 면에서 어쩌면 우리나라가 영영 못 따라갈 수도 있어요. 수입상들이 싼 것만 수입해오니까 제품을 믿을 수가 없는 거죠. 더 큰 문제는 싼 것을 선호하는 인식이 사찰에도 퍼지다 보니, 불상도 하나의 물건으로 여겨 최대한 깎고 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겁니다. 불상을 모시는 사람이나 불상을 만드는 사람이나 신심을 잃는 거죠.”

이 씨의 철칙은 절대 일반인에겐 불상은 주문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무리 으리으리한 궁궐 같은 집이라도 세속에는 부처님을 모실 수 없다는 신념의 산물이다. 아울러 모든 공정 전체를 그가 도맡는다. “제품을 부분별로 각자 따로 만드는 분업화는 결국 책임회피를 위한 빌미를 제공한다”는 지론에는 불모로서의 자존심이 엿보인다. 저렴하고 비슷비슷한 불상이 아닌 나만이 만들 수 있는 불상을 꿈꾸고 있는 이 씨는, 제2의 도전을 감행하고 있다. 바로 ‘종이부처님’인 건칠불(乾漆佛)이다. 1000여 년 전부터 이어져온 공법으로 대구 파계사, 영덕 장육사 등의 건칠불은 국가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이 씨는 한지를 7~8장 겹친 뒤 삼베와 모시를 섞고 옻을 발라 만든 필통과 찻상을 보여주었다. 만져보니, 가볍지만 단단한 플라스틱의 느낌이다. 건칠불은 일본에서는 크게 유행했지만 국내에선 명맥이 끊기다시피 했다. “너무 비싸서, 제작기간이 너무 길어서 아무도 하지 않고 웬만해선 팔리지 않을 작품을 완성하고 싶다”는 말에서 그의 작업실은 “사업적인 공장(工場)”이 아니라 “혼이 담긴 공방(工房)”임을 체감한다.

아무리 성스러운 불상이라도 돈을 받고 파는 일이다보니, 계산이 오가고 허물이 끼게 마련이다. 가격흥정에 마음이 상하고 도무지 입금되지 않는 돈에 화가 나기도 한다. 하지만 우울해진 속내에도 여전히 불성(佛性)은 살아 숨 쉰다. 그는 고아원 출신 아이의 학비를 꼬박꼬박 지원하다가 올해 대학을 보냈다고 한다. “제가 만드는 불상에 시주된 돈에는 부자들의 거금도 있겠지만, 팔순 노파가 시장에서 어렵게 콩나물을 팔아 만든 돈도 들어있을 겁니다. 그 할머니의 보시는 정성껏 내 힘으로 부처님을 모셔 극락왕생하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이겠죠. 지금 내가 공들여 제작하는 불상이 누군가의 절실한 희망이 될 수 있다는 생각. 그게 참 뿌듯합니다.”

■ 불상 제작의 핵심 ‘옻칠’

고비용 천연재료 사용

생칠-사포질 6회-호칠

생칠-중칠-상칠-금박

 

내구력 강화 전통기법

고난도 기술 정성 요구

예경의 대상으로 승화

 이성건 씨가 이야기하는 불상제작의 핵심은 옻칠이다. 옻은 가격이 비싼 데다 심한 가려움증을 유발하는 이른바 옻독 때문에 작업에 애를 먹는다. 일례로 옻 대신에 사용하기도 하는 화학약품인 ‘카슈’는 1kg에 8000원에서 1만원선이지만, 옻은 3.3.kg에 무려 270만원이다. 막대한 비용을 감수해야 함에도 이 씨가 옻칠을 고집하는 이유는 “외관의 미려함과 우수한 접착력” 때문이다.

천연재료만 사용하는 옻칠 개금과정은 고난도의 기술과 정성을 요구한다. 우선, 귀얄(옻을 칠하는 솔의 일종)로 생칠(옻나무에서 바로 채취한 옻)을 하고 건조 후 사포질로 불상 표면을 매끄럽게 하기를 6회 반복한다. 이어 모시를 덧댄 뒤 호칠을 하고 하루 동안 자연건조한다. 호칠이란 조상들이 전통적으로 썼던 접착제로, 찹쌀 풀과 생칠을 섞어 만든다. 이 과정이 모시 배접. 배접을 마치면 다시 생칠을 하고 하루를 말린 뒤, 황토, 찹쌀 풀, 생옻을 섞은 골회를 3회에 걸쳐 얇게 바른다. 이어 옻칠을 3번을 반복하는 중칠을 거치면 불상의 상호와 가사 부분을 세밀하게 나타낼 수 있다.

마지막으로 금박을 붙이기 위한 ‘상칠’을 끝내고 그 위에 금박을 붙이면 완성된다. 이 씨는 “옻칠 개금은 작업성이 힘들지만 광택의 지속성이 장기간 유지되므로 인위적 손상이 없는 한 반영구적이라고 할 수 있다”며 “무엇보다 불상을 영원한 예경의 대상으로 승화시키고자 한 과거 불모들의 장인정신이 서려 있다”고 말했다.

[불교신문2933호/2013년7월3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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