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 / 누가 불자인가 (下) 인생은 자업자득

‘얼마나 위대한 종교냐’ 보다

‘얼마나 미더운 종교냐’로

종교선택하는 경향 늘어날 것

 

인간을 받들어야 하는 시대

대승불교의 기초 사부대중

공유할 삶의 지침 제시…

 

스님 개인에 대한 신뢰가

종단적 신뢰로 승화되려면

청정성과 진정성 확보해야

현실적 필요에 따른 개종(改宗)은 한편으로 자신의 종교에 대한 가치관이 확고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불교 역시 ‘기복’과 ‘수행’을 양대 기점으로 다양한 양태의 불교가 혼합돼 있어, 정체성이 불투명한 상황이다. 불자라면서 유교식 매장을 하고, 육식을 당연시하는 사람들도 보인다. 조계종 자성과 쇄신 결사추진본부가 진행하고 있는 사부대중 의식개혁은 이렇듯 제각각인 행태를 바로잡고, 보편타당한 ‘불교적 삶’을 정립하기 위한 시도다.

절에 자주 다닌다 해서, 교리에 해박하다 해서, 불교계 인맥이 두텁다 해서 참된 불자라고 말할 수는 없다는 게 기본 전제다. 결사추진본부장 도법스님은 “정견(正見)이란 나를 둘러싼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이해에서 출발한다”고 말했다. 실제적 관점에서 보면, 부처님이 설한 연기(緣起)란 다름 아닌 관계다. “자연이든 인간이든 가족이든 동료이든 살아간다는 건 관계의 연속이며 어떤 형태로라도 타자(他者)와 맞닥뜨리게 된다”며 “결국 다른 생명과의 원만한 관계가 즉각적인 자유와 안락의 지름길”이란 설명이다. 아울러 변화의 시작은 나로부터 비롯된다. 주체 지향의 본래부처와 타자 지향의 동체대비라는 개념이 얼핏 상극인 듯하지만, 궁극적으로 동일하다는 점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신구의(身口意) 삼업이란 개념에서 보듯, 생각과 말과 행동은 삶을 구성하는 근간이다. 삶을 바꾸고 싶다면 생각과 말과 행동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수행의 의미에 관해서도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는 입장. 도법스님은 “모든 신앙인들이 각자의 교회와 성당과 사찰에서 열심히 기도하고 있지만 세상은 여전히 혼탁하고 어지럽다”며 “진정 평화롭고 진실한 세상을 원한다면 바로 지금 여기서 내가 평화롭고 진실하게 살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일상 속의 ‘깨임’과 ‘맑힘’이 진정한 수행이란 지적이다.

“교도소에서 살아가는 거룩한 부처님들, 술집에서 웃음 파는 엄숙한 부처님들 오늘은 당신네의 생일이니 축하합니다. …” 조계종 종정을 지낸 성철스님의 1986년 부처님오신날 법어는 불이(不二)와 중도(中道) 사상의 진수를 담고 있다고 평가된다. ‘자기를 바로 봅시다’ 또는 ‘남을 위해 기도합시다’라는 법문도 마찬가지. 연기의 법칙에 따라 모든 존재는 서로 얽혀 있다. 내가 소중한 만큼 남들도 귀하다는 뜻이다. 그리고 타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는 나의 안정과 권익으로 돌아오게 마련이다. 도법스님은 “평화롭고 싶다면, 지금 이 순간 평화롭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곧 깨달음”이라고 말했다. 인생은 자업자득이다.

이는 숭배와 관념이 아니라 생활과 실용으로서의 불교가 부각돼야 한다는 제언이기도 하다. 종단쇄신위원회가 최근 제정한 승가청규 역시 구체적인 삶 속에서 불성(佛性)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이다. 단, 청규가 스님들만의 내규를 넘어 사부대중 전체가 공유할 수 있는 삶의 지침서로 확대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한국불교가 계승하고 있는 대승불교의 가치를, 종단 차원에서 간명한 화법으로 대중에게 친절하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가톨릭대에 다니다가 개종하고 출가한 어느 중진 스님은 “종교가 공통적으로 인류의 공동선을 추구한다지만 간혹 스님들이 타종교의 개념을 무분별하게 가져다 쓰면서 스스로 본질을 훼손하고 있다”고 술회했다. ‘부처님의 가피’ 또는 ‘불국토(佛國土)’라는 초현실적인 이상향과 초자연적인 힘에 대한 지나친 강조는, 자칫 불교를 유일신교의 아류로 전락시킬 수 있다는 걱정이다. 불자 개개인의 불교가 객관적인 불교와 합치되도록 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는 덕목을 꾸준히 생산해 정체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제안도 눈에 띈다. 정토회의 ‘빈그릇 운동’이 적절한 예다. 더불어 최근 유행하는 간헐적 단식을 불교 고유의 일일일식(一日一食) 정신과 접목하면 반향을 일으킬 수 있다.

인구센서스에 나타난 종교인구의 변동 폭을 보면, 1995년부터 2005년까지 불교는 -0.1%, 개신교는 -1.4%를 기록했다. 교회의 집요하고 공격적인 선교에도 불구하고 지난 10년 새 감소 추세를 보인 것이다. 특유의 극단적 배타주의가 일반 대중에게 염증을 불러일으켰다는 분석이다. 반면 가톨릭은 무려 74%라는 놀라운 성장을 보였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을 창립한 함세웅 신부는 2011년 본지와의 좌담회에서 가톨릭의 포교방식을 다음과 같이 전했다. “삶의 현장에서 최선을 다해 모범이 되고 감동을 준 연후에, 도움을 받은 사람이 그토록 자비롭게 살 수 있는 이유를 물으면, 그때서야 조심스럽게 신앙을 고백하라”는 것이다.

곧 교리 이전에 인간을 받들어야 종교가 발전할 수 있는 시대다. 혜민스님으로 대표되는 종교인 ‘멘토’들이 절대적 영향력을 발휘하는 까닭도 구체적인 삶의 문제에 대해 명쾌하게 해법을 제시하며,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신규탁 연세대 철학과 교수는 “앞으로는 ‘얼마나 위대한 종교냐’가 아니라 ‘얼마나 미더운 종교냐’를 기준으로 종교를 선택하는 경향이 늘어날 것”이라며 “스님 개인에 대한 신뢰가 종단적 신뢰로 승화되려면 종단이 더욱 염결한 청정성과 진정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밝혔다.

[불교신문2931호/2013년7월2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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