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파계사와 화엄사(下)

숙빈최씨의 불심, 연잉군(영조) 생산으로 결실

영원스님 기도로 왕자 얻자 파계사 원당 지정

숙빈 최씨가 숙종의 총애를 받았던 또 하나의 이유는 그녀가‘아들을 잘 낳는 후궁’이었기 때문이었다. 전술했듯이 숙빈은 연달아 아들 셋을 생산했다. 두 명의 왕비로부터 자식을 하나도 얻지 못한 숙종에게 첫아들을 선사한 여인이 장희빈이었고, 곧이어 세 아들을 연달아 선사해준 여인이 숙빈이었으니 왕실 입장에서는 훌륭하디 훌륭한 여인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숙종이 숙빈에게 끌릴수록 장희빈의 시샘과 구박은 눈덩이처럼 커져만 갔다. 장희빈이나 숙빈 모두 한미한 집안 출신이었기 때문에, 이들이 믿을 구석은 숙종의 마음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마음이 최 무수리에게 점점 기울어가자, 장희빈은 다급하고 초초해지기 시작했다.

숙빈 최씨가 임신했다는 소식을 듣자 장희빈의 분노는 거의 하늘을 찌를 지경이었다. 당시 희빈 장씨의 구박은 여러 사료에 자세하게 나와 있는데, 임신 중인 숙빈을 끌고가 매질을 한 것은 매우 유명한 사건이다. 또 〈수문록〉에는 숙종의 꿈에 신룡(神龍)이 나타난 이야기가 전해진다. 꿈속의 신룡이 숙종에게 ‘전하, 저를 속히 살려주십시오라고 애원했다’고 했고, 이를 이상하게 여긴 숙종은 급히 장희빈의 침실로 찾아갔다. 별달리 수상한 점을 찾지 못한 숙종은 담장 밑에 큰 독이 엎어져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엎어진 독을 바로 세우게 하자, 그 속에는 숙빈 최씨가 결박을 당한 채로 들어가 있었다고 한다. 이런 야사들이 조선후기 유학자들의 문집에 실릴 정도였으니, 장희빈과 숙빈 사이의 암투가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짐작케 한다.

그런데 임신 중에 받은 스트레스가 문제였는지, 온갖 구박을 받으며 태어난 숙빈의 첫 아들이 생후 며칠 만에 죽고 말았다. 아들을 잃고 난 후 숙빈은 전국 방방곡곡에 기도처를 마련했다. 아이를 잃은 여자의 절절한 마음에다 왕의 애정을 독차지 하는 후궁의 영향력이 무수한 기도처 설치로 이어진 것이다.

숙빈의 정성에 감응이라도 하듯 이듬해에 그토록 바라던 아들, 연잉군이 태어났다. 연잉군이 탄생하자 숙빈은 자신의 기도처였던 화엄사를 대대적으로 중창함으로써 불은(佛恩)에 보답하고자 했다. 숙빈 최씨의 시주로 지어진 건물이 바로 국보 제67호 각황전이다. 경복궁 근정전보다도 더 큰 건물이 지리산 중턱에 세워진 것은 숙빈 최씨의 절대적인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숙빈 최씨를 이야기 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사찰은 팔공산 파계사이다. 〈파계사중수기〉 등에 따르면, 숙종은 어느 날 한 스님이 대전(大殿)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었다. 다음날 궁궐의 내관들을 저자거리로 보내 수소문한 끝에 그 스님이 파계사의 승려 영원(靈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숙종은 영원스님에게 산중의 정결한 곳에서 왕자 탄생을 발원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에 영원스님은 농산스님과 함께 치성에 들어갔다. 100일 기도가 끝나는 날 숙빈의 꿈에 농산스님이 현몽을 했다. 이듬해 연잉군이 태어나자 숙종은 영원에게‘현응(玄應)’이라는 호를 하사하는 한편 소원을 말해보라고 했다. 그러자 영원은 “파계사에 원당을 받들어 만세토록 국가의 은혜를 잊지 않게 해달라”고 답했다. 이후 파계사는 왕실원당으로 지정되었고, 그 인연으로 1695년(숙종 21) 왕실의 지원 하에 대대적인 중건불사를 하게 되었다.

후일 왕위에 오른 영조는 자신의 탄생설화가 담겨있는 파계사를 매우 소중하게 여겼다. 영조는 이곳을 정성왕후의 원당으로 지정하였으며, 어의궁에 소속시켜 왕실의 보호를 꾸준히 받을 수 있도록 하였다. 파계사 기영각에는 조선말까지 선조, 덕종, 숙종, 영조의 어패(御牌)가 모셔져 있었다. 또한 영조의 글씨를 음각한 자응전 편액은 파계사의 부속암자인 성전암에 걸려있다.

[불교신문2931호/2013년7월2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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