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째 전통 목공예 기술 잇는 고려공예 김인규.용오 父子

 

조상으로부터 물려 받은 가업을 계승하고 있는 김인규(사진 오른쪽)-용오 목공예 장인.

선대부터 실상사와 인연

목발우 비롯한 목제기 생산

화장문화 활성화로

옻칠 납골함 특허 출연 ‘시판’

예로부터 지리산을 중심으로 한 남원지역에서는 전통목기가 생산되어 전국에 판매됐다. 지리산에서 나오는 물푸레 나무를 비롯한 우수한 목재가 풍부해 이곳에는 목공예 장인들이 가업을 잇고 있다.

목발우를 비롯한 목공예품은 나무를 가공해 여러차례 옻칠을 해서 완성한다. 공정이 까다롭기는 하지만 한번 써본 사람은 1000년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빛깔에 매료된다. 음식을 담아두면 부패가 잘 되지 않는 잇점이 있어 예로부터 사찰에서는 옻칠을 한 목기를 즐겨 사용해 왔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남원 실상사를 비롯한 지리산 사찰에서 필요로 하는 목발우를 제조하던 스님들에 의해 목공예 기술이 전승되기 시작해 마을로 내려와 이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고 한다. 생산품목도 목발우를 비롯해 목제기 등 나무로 만드는 다양한 용품이 생겼고, 불교용품에서 일반 목제용품으로 확대됐다. 요즘은 중국산 제품에 밀려 한 때는 설 자리를 잃었지만 전통을 고집하는 장인들에 의해 전통 제조방식으로 생산된 목공예품은 품질이 우수해 다시 재조명되고 있다.

대전광역시 대덕구 덕암동에 위치한 고려공예(www.koryo5837.com)는 김인규(78).김용오씨(51) 부자가 공동대표로 있는 전통 목기 제작업체다. 고려공예의 1대 계승자는 김인규 옹의 부친인 고(故) 김갑진 옹(1896~1950)이다. 그는 지리산 자락의 남원시 산내면 부운리에서 살았다. 이곳은 물푸레나무 등 목기 제작에 적합한 나무가 풍부해 1900년대 초부터 목기 주산지로 이름을 높았다.

현재 고려공예는 김갑진 옹의 대를 이은 김인규 장인과 그의 아들인 김용오씨가 가업을 잇고 잇다. 지리산에서 ‘목공예 기술의 1인자’로 명성이 높았던 아버지 김갑진 옹으로부터 기술을 배운 김인규씨는 남원 실상사 안 창고에서 일제가 남기고 간 시설과 기자재들을 활용해 목발우를 비롯한 목공예 제품을 만들었다.

해방 이후 불안한 정국에서 마을 이장을 맡아 마을의 대소사를 해결했던 김갑진 옹은 이념대결이 극심했던 틈바구니에서 전쟁을 겪게 됐고 결국 빨치산에 의해 50대 중반의 나이에 타계하고 만다. 아버지 밑에서 틈틈이 기술을 익혔던 김인규 장인은 부친 별세 후 4년동안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목기제품을 생산하는데 성공해 1954년부터 자신이 만든 목기를 시장에 내다팔 수 있었다. 하지만 전주, 공주 등지로 목기를 들고 나가 팔아도 이틀에 한 벌(당시엔 10개) 팔기도 빠듯했다. 목기 한 벌이 쌀 두 되 값이었지만 여비와 제작비를 빼고 나면 남는 게 없었다. 그래서 이듬해인 1955년 목기 생산 장비들을 챙겨 삶의 터전을 대전으로 옮겼다. 그 결과 판매활로가 넓어져 한 달에 30~50벌의 목기를 팔면서 경제적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목기는 1980년대와 1990년대 등 약 20년간 잘 팔렸다. 1970년대 후반 약 5년간은 플라스틱 제기가 유행했으나 그 경박함에 싫증을 느낀 소비자들은 소득 증가와 함께 목제 제기를 구입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2000년 이후 제사를 지내는 가정이 줄고 저가 중국산 옻칠 목기가 들어오면서 내리막길에 접어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씨 부자는 원부자재 전부를 국산만 쓰고 옻칠하고 말리는 데 95일 이상 걸리는 전통 제작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숱한 어려움이 있는데도 김인규 장인은 원칙을 지키는 것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평생 목기만 만들어왔고 아직까지 이 일 말고 딴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천직인지 몰라도 지금도 작품이 훌륭하게 나온 것만 보면 마음이 뿌듯합니다. 돈은 나중 문제에요. 장인이 돈만 좇으면 작품을 만들 수 없지요. 품질이 좋지 않으면 절대 시장에 물건을 내놓지 않아요. 선불을 받고 물건을 만드는 일도 없습니다.”

고려공예는 3대째 “품질이 좋아야 한다” 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원목 선별에서 부터 칠에 이르기까지 전통이 녹아있다. 특히 칠기문화는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지만 이 업체는 국내 최고의 칠기(漆器)공예로도 유명해 ‘대한민국 최고 중의 최고’인 셈이다.

이 같은 열정과 전통으로 지난 2002년 정부로 부터 김인규 장인은 전국 최초로 전통목기(제기, 발우) 기능 전승자로 선정됐다. 전통 목공예 제품의 권위자로 인정받게 된 것이다. 여기에 더불어 고려공예는 납골함에 옻칠을 한 제품을 만들어 특허출원해 시중에 인기가 높다. 특허기술은 천연 옻 추출물에 은과 구리분말을 첨가해 만든 통나무 옻칠 납골함인데 항 곰팡이, 원적외선, 항균, 항취 등 국가기관의 품질시험을 통과해 부패하지 않는다는 평가다.

이러한 전통기술은 김인규 장인의 아들인 용오씨에게 전승되고 있다. 용오씨는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한 뒤 유능한 공장설비 엔지니어로 인정받아 대전의 중견 화학기업 공장장까지 지냈다. 그러던 그가 돌연 사표를 내고 아버지의 가업을 잇기로 했다.

“선조들이 전해 준 귀중한 가업을 잇는 게 당장은 어렵지만 의미있는 일이라 생각했어요. 더구나 아버지께서 60여년을 바쳐 일군 전통을 어떻게 끝낼 수가 있겠습니까. 제 주변에 잘 아는 스님들도 가업을 잇는 것에 힘을 보태 주셨어요.”

용오씨는 전업 후 적잖은 시련을 겪고 있다. 2008년 4월엔 작업장에 누전으로 인한 화재가 발생해 퇴직금과 적금으로 사들인 원목과 애지중지하던 목기 2000여점이 불타 버렸다. 또 고려공예사의 이름을 도용해 적잖은 피해를 입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사실조차 용오씨는 “우리 고려공예의 명성이 세상에 알려짐으로 인해 생긴 잡음으로 본다”며 자부심 있게 말한다.

용오씨는 지난해 서울 조계사에서 아버지를 위해 ‘덕암 김인규 천년의 사랑전’을 열었다. 109년 동안 3대째 이유 있는 집념으로 목발우를 비롯한 목공예 제품을 만들어 오고 있는 가업을 자축하며 불교계에도 알리기 위해서다.

“상업성을 보고 이 일을 했다면 진작 문을 닫았을 겁니다. 다만 조상님이 물려준 가업인 우리의 전통 목공예 기술을 전승하고, 부처님 전에 올리는 제기와 스님들에게 공양을 올리는 목발우를 널리 보급하는 일이기에 신심과 자부심을 가집니다.”

온 가족이 매일 새벽 부처님 전에 기도를 올리는 일로 일과를 시작하는 고려공예 작업장. 그곳에는 나무를 가공하는 힘찬 기계음 소리와 김씨 부자가 심혈을 기울여 부처님 전에 올리는 장인의 땀이 배여 있었다. 

 

고려공예가 생산하고 있는 목공예품들. 옻칠 유골함.

 

큰법당 제기

 

목발우,

 

■ 고려공예 연혁

 

1900년대초 김갑진 옹 남원에서 전통목기 제작

1950년 김갑진 옹 한국전쟁 중 작고

1954년 3월 2대 김인규씨 17세부터 2대째 가업 전수

1955년 대전으로 거주지 및 공장 이전

1987년 5월 대전시 공예품 대전 입선

1997년 9월 제27회 전국공예품 경진대회 장려상

1999년 2월 한국 공예협동조합 (표창장)

1999년 10월 제29회 전국공예품경진대회 특선

2000년 6월 제30회 대전광역시 공예품대전 동상

2000년 7월 제30회 전국 공예품경진대전 입선

2002년 12월 국가지정 전통목기(제기,발우) 기능전승자 지정 (노동부)

2003년 3월 제33회 대전광역시 공예품대전 장려상

2004년 12월 국가지정 ‘전통목기 제작’ 기능전승자의 집 선정 (노동부)

2005년 3월 유망선진기술 및 특허기술기업선정

2007년 12월 제13회 대한민국 미술대전 공예 입선

2012년 2월 중소기업중앙회 표창장

 

 

■ 전통목기 제작과정

 

건조한 나무를 절단하고 있는 김인규 장인.

1. 원목선별

목기재료인 원목은 충북 영동지역 및 강원도에서 들어오며 물푸레나무, 박달나무, 느티나무, 느릅나무, 노각나무 등이 주 재료다. 이는 다른 나무에 비해 견고하기 때문이다. 수입 원목은 사용하지 않고 국내산 100%로 하며 5∼7년 자체 야외건조장에서 자연 건조시켜 가공한다.

2. 원목절단 및 자연건조

잘 건조된 나무를 전통목기의 형태 크기로 1차로 자르는 작업을 말하며. 이러한 원자재를 초벌깍기에 알맞은 크기로 절단하여 준비한 후 45일정도 그늘에서 자연에서 건조시킨다.

3. 초벌깍기 후 다시 건조

알맞은 나무토막을 그릇형태로 깎는 작업을 초벌깍기(초갈이)라 한다. 초벌깍기한 것을 다시 45일동안 건조 상태로 둔다. 이때 건조를 시키지 않으면 나무의 수축작용으로 인해 전통목기 모양이 뒤틀릴 수 있다.

4. 재벌깍기

재벌깍기(재갈이)작업으로 완전한 그릇형태를 갖춘 모양이 완성되며 깎는 작업으로는 마지막 단계이다. 초벌깍기 후 충분히 건조된 것을 선별하여 고르지 않은 면을 형태에 맞추어 정교하게 다듬는 과정이다. 옛날에는 발로 돌리는 물레에 나무를 고정시켜 끌로 깎았다.

5. 순칠하기

재벌깍기의 과정에서 완성된 전통목기를 오랫동안 그 형태로 유지시키기 위해서 방습, 방수 작업으로 옻을 초벌칠하고 10~11회의 재벌칠을 한다.

6. 물사포질 후 음지건조

물 사포질 과정으로 한번 칠하고 하루 동안 말린 후 가는 ‘사포질’로 닦아내는 방식으로 보통 종류에 따라 9~10회 정도 반복한다. 칠 작업은 한번 칠하고 하룻동안 말린 후 가는 ‘사포질’로 닦아내는 방식으로 보통 종류에 따라 9~10회 정도 반복한다.

7. 검사 및 출하

이 과정을 끝으로 고품질의 전통목기를 검사 선별하여 하자 없는 물건을 출하한다.

[불교신문2931호/2013년7월2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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