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교도소 재소자 위한 나눔

 

지난 16일 대전교도소 취사장에서 운천스님과 자원봉사자들이 3000명 남짓한 대전교도소 수용자들을 위해 4500인분의 냉짬뽕을 조리했다.

남원 선원사 운천스님

무더위 속 4500명 분

‘애증 녹이는’ 냉짬뽕 보시

 

전국 복지시설.학교 찾아…

짜장면과 짬뽕은 중국요리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음식으로 손꼽히고 있다. 하지만 짜장면과 짬뽕을 마음대로 먹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 전국 각 교정시설 수용자들에겐 짜장면과 짬뽕은 그림의 떡과 같다. 대규모의 수용시설이다보니 짜장면과 짬뽕, 국수 등 퍼지기 쉬운 면 종류의 음식을 식단표에 편성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16일 자체 방송을 통해 점심공양으로 ‘냉짬뽕’이 제공된다는 소식을 접한 대전교도소 수용자들은 영어생활 가운데 처음으로 짬뽕을 먹을 수 있다며 설렘에 휩싸였다.

지난 16일 오전, 대전교도소 취사장 내의 체감온도는 40도를 훌쩍 뛰어 넘었다. 바깥 기온이 30도가 넘는 삼복더위인데다가 500명 분량의 대형 국솥 8기에서 쉼없이 내뿜어지는 증기까지 더해지면서 취사장은 높은 기온과 습도로 불쾌지수마저 높아졌다. 하지만 대전교도소에서 처음 접하는 짬뽕을 만드는 이날만큼은 취사장에서 근무하는 수용자들의 얼굴에도 짜증 대신 미소가 배어 나왔다.

‘짜장면 스님’으로 유명한 남원 선원사 주지 운천스님은 3000명 남짓한 대규모 인원이 먹는 점심공양을 제대로 준비하기 위해 공양 하루 전날인 15일 오후부터 교도소 취사장을 찾아 밀가루 반죽작업을 전개했다. 시간 간격을 두고 배식할 수 있는 다른 곳과 달리 교도소는 오전11시30분 각 사동과 작업공장으로 동시에 배식이 나가야 하는 시간적 제약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 16일 오전 운천스님과 3명의 자원봉사자, 67명의 취사장 근무 수용자가 한 팀이 돼 냉짬뽕을 요리했다.

냉짬뽕 육수와 김치, 단무지 등은 기성제품으로 준비한 운천스님은 이날 취사장에서 짬뽕용 면을 삶고, 새우와 오징어 등이 들어가는 양념, 고명으로 오이채를 준비했다. “11시30분부터 배식해야 하니 서둘러야 해요.” “여기서 맛보기 힘든 음식을 하니 기쁘게 하자구요.” “그래요. 서두릅시다.” 운천스님과 자원봉사자들은 재면기를 활용해 짬뽕용 면을 뽑으면서도 취사장 곳곳을 돌아다니며 면을 삶고 찬 물로 행군 뒤 1인분씩 비닐봉지에 담는 취사장 수용자들을 독려했다. 3000명 남짓한 공양인원에다가 식당홀에 모여 함께 공양하지 못하는 교도소 상황을 반영해 짬뽕용 면을 1인분씩 비닐봉지에 각각 담은 뒤 사동과 작업공장별 인원에 맞춰 대형배식통에 담았다. 사동과 작업공장에서 수용자 개개인이 각자 그릇에다가 면과 육수, 고명 등을 부은 뒤 밑반찬과 함께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넉넉하게 면을 다 뽑았다고 판단해 반죽기와 재면기를 철수했지만 20여 분이 지난 뒤, 200인분 정도가 부족하다는 이야기가 전해들은 운천스님은 곧바로 기계를 들여와 추가로 면을 뽑는 헤프닝도 발생했다. 3000명 남짓한 수용자를 위해 운천스님은 이날 4500인분 분량의 냉짬뽕을 만들었다. 11시20분께 모든 공양준비를 마친 운천스님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이날 냉짬뽕은 처음 만들어봤다고 털어놨다. 평소 짜장면과 짜장밥을 만들었지만 삼복더위에다가 시간과 공간적 제약, 대규모 공양인원 등의 제약으로 고심하다 자원봉사자의 제안으로 냉짬뽕을 처음으로 시도한 것이다.

수용자 김영철(가명)씨는 “컵라면은 개인적으로 사 먹을 수 있지만 짜장면과 짬뽕 등은 배식 메뉴에 없어 여기에서는 처음 맛보는 음식”이라며 “오늘 오전에 교도소 내 자체 방송을 통해 냉짬뽕을 배식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는 대다수가 크게 기대하고 있다”고 수용자들의 분위기를 전해줬다. 취사장을 찾은 권기훈 대전교도소장은 “삼복더위에 수용자들이 접할 수 없었던 별미를 선보여 정말 감사하다”면서 “수용자들이 건강하게 여름을 나는 데 큰 힘이 될 것 같다”며 재차 감사인사를 전했다.

운천스님의 짜장면 무료 보시는 지난 2009년 11월부터 시작됐다. 스님은 짜장면 조리법을 직접 배웠고, 재면기 등 각종 조리도구와 재료를 실은 승합차를 직접 몰며 짜장면을 찾는 곳이라면 전국 어디든지 달려갔다. 4년 남짓한 기간동안 복지관과 군부대, 유치원, 학교, 무료급식소 등 200여 회에 걸쳐 10만여 명에게 짜장면과 짜장밥을 조리해 공양했다. 한달에 많게는 15차례에 걸쳐 짜장면 공양에 나서는 운천스님은 최권상 삼경테크 대표 등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는 후원자와 자원봉사자 덕분에 가능하다고 감사인사를 전했다. 이날 대전교도소 냉짬뽕 공양에만 500만원 정도의 돈이 들어가는 등 적지 않은 비용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운천스님은 “제가 만든 짜장면을 맛본 뒤 맛있다고 말씀하시면, 힘든 게 모두 사라질 만큼 즐겁게 짜장면 보시에 나서고 있다”면서 “오는 8월말께 다시 찾아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겠다”고 약속하며 굳게 닫혔던 교소도 정문을 나섰다.

[불교신문2931호/2013년7월2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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