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함께 단청그림을 배우는 지인은 연꽃을 연꽃이라 하지 않고 태평화라고 한다. 단청에서 검정 바탕에 꽃잎을 희게 그려 넣는 꽃무늬를 태평화라 하는데, 이는 곧 연꽃을 말하며 신비감과 함께 잡귀를 ?는 벽사의 뜻이 있어 불교에서 존귀하게 여기는 꽃으로서 깨달음을 얻은 부처를 상징하고 생명의 근원을 의미하는 천상의 꽃이다.

우리는 사회적 기업에서 운영하는 노인들의 수고로 차려진 연밥을 먹고 연잎차를 마신 뒤 동궁월지(안압지) 근처에 조성된 연꽃단지를 찾았다. 막 피어나는 홍련에 하얀 손수건을 갖다 대면 붉은 물로 푹 적셔질 것만 같다. 키가 큰 꽃들 아래에 작은 꽃이 눈치를 살피듯 얼굴을 내민다. 꽃봉오리 하나가 넓은 잎의 가슴을 뚫고 우뚝 솟아있다. 넒은 잎은 찢어지는 아픔을 묵묵히 견디고 있기라도 하는 것일까. 우리는 물방울이 일렁이는 것을 오랫동안 지켜보며 연꽃이 가지고 있는 열 가지의 의미를 되새겨본다.

꿈에 연꽃을 보면 길하다고 하듯 주변사람에게 좋은 기운을 주는 사람이 되라는 견자개길(見者皆吉), 진흙탕에서 자라지만 잎과 꽃이 더러움에 물들지 않으니 주변의 잘못된 것에 물들지 말라는 이제염오(離諸染汚), 잎에 물이 닿아도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처럼 주변의 나쁜 것들을 멀리하라는 불여악구(不與惡俱), 향기가 온 연못을 가득 채우는 것처럼 향기 나는 사람이 되라는 계향충만(戒香充滿), 어떤 곳에 있어도 잎은 푸르고 꽃잎의 색이 아름답듯 늘 깨끗한 몸과 마음을 간직하라는 본체청정(本體淸淨), 잎의 모양이 둥글어 보는 이의 마음이 편안하고 행복해지듯 부드럽고 인자한 사람이 되라는 면상희이(面相喜怡), 줄기는 연하고 부드러워 강한 바람에도 잘 꺾이지 않듯 남의 입장을 이해하여 융통성 있고 유연하게 살아가라는 유연불삽(柔軟不澁), 꽃은 피고 나면 반드시 열매를 맺듯 살아가면서 선행을 많이 하여 좋은 열매를 맺으라는 개부구족(開敷具足), 활짝 핀 꽃을 바라보는 이의 마음이 맑아지듯 몸과 마음이 맑은 사람이 되라는 성숙청정(成熟淸淨), 싹이 날 때부터 다른 꽃과 달라 꽃을 피우지 않아도 연꽃인지 알 수 있는 것처럼 존경을 받는 사람이 되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생기유상(生已有想).

양심적이고 당연한 행동들이 미담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매스컴을 타는 작금의 세상이지만 그래도 연꽃처럼 살아가는 사람이 더 많지 않을까.


[불교신문2928호/2013년7월1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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